최근 확산되고 있는 소문 이면에는 이 사장의 과거 경력도 한몫 한다. 12~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 사장은 지난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부산 지역 선대위원장을 역임했다. 기업가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셈이다. 때문에 지난 6월 말 이 사장이 철도공사 사장으로 임명됐을 당시에도 ‘보은 인사’란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터진 이 사장의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광명시 등 인접 기초자치단체들은 이 사장의 이번 발언 이면에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광명시 관계자는 “이 사장이 내년 5월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영등포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면서 “이번 발언도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선심성 공약이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실제 이 사장이 광명역을 축소하겠다고 말한 다음날인 13일 건설교통부는 “광명역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건교부측은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의 발언은 지극히 개인적 견해”라면서 “건교부는 광명역 폐지나 축소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속철도 역사를 폐지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인가권은 철도공사가 아니라 건교부에 있다”면서 “이 사장이 이 방안을 정식으로 건교부에 건의해오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사장의 이번 발언이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광명역 활성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등 현지 시민단체들도 이 사장의 이번 발언을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비대위에 따르면 철도공사는 그동안 광명시와 함께 광명역 활성화 방안을 논의해 왔다. 이같은 논의가 한창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사장이 광명역을 축소하고 영등포역을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을 불쑥 던진 것.
비대위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명시와 철도공사는 광명역 활성화 방안을 논의 중이었다”면서 “이 사장이 작심하고 이같은 말을 내뱉은 데에 의혹의 시선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 동안의 상황으로 봤을 때 이 사장의 이번 발언은 돌출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이미 영등포 등지에도 이 사장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부터 파다하게 퍼져있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철도공사측은 “(이 사장은) 취임한지 2개월밖에 안됐다”면서 필요 이상의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이번 발언으로 인해 억측과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그러나 사장님은 현재 철도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치적인 확대 해석은 자제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광명역 축소 및 폐지는 원칙적인 의견일 뿐”이라면서 “시설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구상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광명시 등 현지 주민들은 향후 이 사장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광명시 관계자는 “지난 14일 경기도 내 32개 시군의 수장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이 시장이 이같은 벌언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범시민적으로 대처할 예정”이라면서 “지역 국회의원과 함께 이 사장을 항의 방문하는 방안도 현재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비대위 관계자도 “이 사장의 이번 발언은 국가적 대의를 무시한 처사다. 4,068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광명역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라면서 “이 사장이 광명역 폐지에 나설 경우 집단 행동을 해서라도 막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철도공사측은 수익성 차원에서 광명역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철도공 관계자는 “수익성이 나지 않는 사업을 계속 지켜만 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면서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불가피하게 이를 실행시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석 suk@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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