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재계는 ‘큰 고비는 넘겼다’는 반응이다. 박 당선자는 기업 옥죄기 보다는 경제위기 극복을 먼저 내세운 만큼 개혁보다는 안정 기조의 경제 정책을 펴나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당선자가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어 재계는 ‘박근혜식 재벌개혁’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박 당선자가 경제발전 기여 등을 명분으로 재벌 총수의 경제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던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치고 있어 총수들이 법의 심판을 앞둔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박 당선자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어디까지 현실화될지 금융과 재계의 관심이 뜨겁다.
‘경제민주화 공약’ 촉각
박 당선자는 대기업 집단의 장점은 살리되 잘못된 점은 반드시 바로잡겠다는 다소 온건적인 경제마인드를 갖고 있다. 박 당선자의 경제민주화는 시장에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경제적 약자를 실질적으로 돕는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앞서 재계는 박 당선자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하면서 경제민주화 카드를 뽑아들자 발칵 뒤집힌 바 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불린 김 전 수석은 2012년 초 새누리당 정강·정책 개정 때에도 경제민주화 개념의 도입을 주도했고 이번 대선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 논쟁을 먼저 일으켜 박 당선인의 정책 이슈 선점에 크게 기여했다. 김 전 수석은 재벌개혁과 관련한 자신의 안이 최종 공약에 반영이 되지 않자 박 당선인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박 당선자는 경제민주화 공약 수위를 대폭 낮춰 재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박 당선자의 인수위 구성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방향을 놓고 또다시 힘겨루기를 재개하자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전 수석이 인수위에 합류해 경제정책을 다룬다면 기존순환 출자 해소 등 강경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박 당선자는 원칙과 약속을 중요시하는데다 ‘국민 대통합’을 위해서는 자신을 뽑지 않은 진보 성향의 국민들을 포용해야 해 경제민주화 정책 공약은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에 재계는 경제민주화 공약이 정책으로 어느 수준까지 이어질지에 집중하고 있다.
대응책 마련에 부심
특히 박 당선자는 “대기업 집단의 불법행위와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대처하고 총수 일가의 부당 내부거래로 생긴 이익은 전액 환수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에 대해서는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고 사면권 행사도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박 당선인은 ‘대통령 사면권 제한’을 공약해 불법을 저지른 대기업 총수들의 ‘퇴로’를 차단한 셈이 됐다. 박 당선인은 횡령 등 기업 범죄는 반드시 징역형으로 처벌할 방침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권 말기에는 대기업들을 향한 사정의 칼끝이 날카로워져 몸을 사리고 있던 재계로서는 박 당선인의 재벌 총수 처벌강화는 달갑지 않은 공약이다.
통상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사회 통합을 위해 ‘정치범 사면’, 경제 살리기를 위해 ‘경제범 사면’, 소외계층을 위해 ‘민생사범 사면’이 관례처럼 단행됐다. 재계의 경우 과거 횡령이나 배임, 부당내부거래 등으로 재판정에 선 대기업 총수들이 집행유예와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재계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자연스레 형이 낮아지거나 사면으로 풀려날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처럼 정권교체 등 정치변형에 큰 변화가 생기면 국민화합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박 당선자의 ‘공언’으로 재계는 ‘사면 물거품’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오너가 구속 수감됐거나 검찰조사를 받는 등 소위 ‘법난’을 겪고 있는 SK·한화·LIG·태광 등 재벌 그룹은 ‘패닉’ 상태다. 더구나 재벌총수들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과 법원이 과거에 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해당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심에서 징역4년에 벌금 51억 원,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항소심서 징역 4년 6월에 벌금 10억 원을 선고받았다. LIG그룹 사건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총수 형제가 한꺼번에 기소되면서 관심을 끌었던 SK그룹에 대한 선고공판은 당초 12월 28일로 예정됐었지만 내년 1월 31일로 연기됐다.
SK그룹은 이번 태광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 의미와 파장 등을 분석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웠다. 유사한 혐의로 법정에 서는 그룹 회장에 대한 재판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태광 실형 판결을 두고 법원의 판결 경향이 ‘선처주의’에서 ‘엄벌주의’로 전환한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돼 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총수가 재판중인 한화그룹 역시 진땀을 흘리고 있다.
총수가 재판중인 기업들은 특히 인수위 구성에 주목하고 있다. 인수위 구성 직후부터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들어가는 만큼 어떤 인사가 인수위에 합류하느냐에 따라 경제정책의 성격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정치권 역시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법부가 재벌 총수들의 비리 혐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에 각 기업들은 추가 비리사실 등 범죄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분위기다. 박 당선자가 경제 비리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등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각 기업들은 ‘오너 구출하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이에 재계 안팎에서는 ‘MB 임기 내에 마무리 짓기 위한 로비가 활발하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재계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재 각 기업들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어떤 구실로든 사면 혹은 병보석 등 면죄부를 받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박 당선자의 경제범죄에 대한 강경한 입장으로 인해 총수가 재판중인 기업들은 ‘초비상’ 상태다”라고 재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관련해 한 검찰 소식통은 “사정기관이 A그룹 회장과 B그룹 회장에 대해 추가로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해외 은닉자금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사정기관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면서 “만약 사정기관이 이들의 추가 비리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면 실형을 모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