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딸’ 논란 진원지 호소문 작성자·진위 여부 선결 과제A4용지 4장 분량인 ‘진승현 구명 호소문’은 크게 세 가지 내용이 주요 골격을 이루고 있다. 첫째는 진승현 사건의 전반에 대한 내용이고, 둘째는 국정원의 세칭 ‘특수사업’에 관한 내용이며, 셋째는 ‘DJ의 숨겨진 딸’에 대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특히 이 문건에는 DJ에게 숨겨진 딸이 있다는 사실과 DJ가 숨겨진 딸의 모친을 만나게 된 과정, 국정원이 DJ 딸을 경제적으로 도와주게 된 경위, 진승현씨의 돈이 국정원을 통해 딸에게 넘어간 내용, 국정원이 수행했다는 세칭 ‘특수사업’의 실체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이 문건은 DJ가 퇴임한 후인 2003년 말경 진승현씨측이 작성한 것으로 수사당국이 지난해 입수해 보관해오다 올초 SBS에 전달됐고, 최근에는 몇몇 일간지도 문건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DJ의 숨겨진 딸 이름이 실명으로 기재돼 있고, 국정원측 개입 의혹도 상황별로 비교적 자세히 적시돼 있다.문건 내용을 항목별로 구분해 정리해본다.
DJ의 숨겨진 딸 김모양 출생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DJ는 김OO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고 둘 사이에 김△△이라는 이름의 딸까지 얻게 됐다. 태어날 때부터 김△△의 존재는 철저하게 숨겨져 왔다. 그런데 김△△이 성장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일시적 정신착란을 일으키면서 문제가 생긴다. 김△△의 이런 상태가 지속되자 김OO는 병원비를 부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런데 1997년 12월, DJ가 당선되고 비슷한 시기, 김△△이 정신착란으로 인해 그동안 숨겨져 왔던 자신의 이야기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분별없이 말하게 되면서 김△△의 존재가 조금씩 밖으로 드러나게 됐다. 그러자 병원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김OO는 DJ와의 관계를 함구하는 대가로 막대한 경제적 원조를 요구했다. 이러한 김OO의 요구가 본격화된 시기가 2000년 초입으로, DJ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런 류의 스캔들로 대통령의 도덕성이 재평가 받게 된다면 국정 혼란은 물론 노벨평화상 수상 역시 불투명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때문에 국정원 측은 DJ의 아들인 김홍일 의원(새천년민주당)을 찾아가 이 일에 대해 의논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 일을 전면 무시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정원 ‘특수사업’팀의 개입
국정원에서는 김OO가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줘야만 한다고 판단했고 사안의 성격상 국정원 예산을 유용할 수 없었으므로 별도의 자금 지원책을 찾아야만 했다. 이에 엄익준 당시 국정원 제2차장은 모교 동기인 한국OO공사 사장을 통해 진승현을 정성홍 당시 국정원 경제과장에게 소개했다. 당시 진승현은 타고난 사업감각과 남다른 노력을 통해 젊은 나이에 M&A 전문회사인 MCI코리아와 현대창투 등의 창업투자회사를 비롯해 열린상호금고까지 이끌고 있는 ‘소그룹 부회장’으로서 전도유망하고 패기있는 청년 실업가였다. 이 자리에서 진승현은 자신의 돈이 국가를 위해 쓰일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며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후 진승현은 어떠한 대가도 보장받지 않은 채 3억5천만원을 정 과장을 통해 김OO에게 줬다. 도중에 엄익준 차장이 사망했으나 그 뒤를 이어 국정원 제2차장이 된 김은성이 이 사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런데 2001년 3월, 갑자기 김OO가 자살을 했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김OO의 자살에 국정원은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대처했다. 김OO의 장례식은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김승훈 신부(2003년 10월 사망)의 집전으로 이뤄졌으며 장례를 비롯한 모든 절차는 국정원에 의해 관리되고 진행됐다. 이러한 일련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김은성 차장이 임동원 국정원장과 함께 김홍일 의원을 다시 찾아가 의논하려 했지만 김 의원은 일관되게 묵살하면서 일절 관계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진승현게이트의 전말
그러던 중, 2000년 11월을 전후해 조사가 시작된 열린금고 불법대출 사건에 진승현이 연루됐다. 국정원측은 보답 차원에서 그를 구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도마저 검찰조사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고 사건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언론은 소위 ‘진승현 게이트’라 이름 붙이고 국가 중요기관이 관련된 권력적, 정치적 비리로 몰아갔다. 언론이 보여주는 것만 알고 맹신했던 많은 국민들은 사건을 감정적으로 바라보고 실체를 모른 채 그저 분노했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특수사업’이라는 모종의 프로젝트가 있었음을 눈치채게 되지만 관계자들의 철저한 비밀유지로 인해 그 내용에 대해서는 어떤 실마리도 잡지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빠른 시일 내에 국민에게 수사 성과를 보여야만 했다. 그 결과 진승현의 구명로비를 벌인 혐의로 김은성과 정성홍을 구속하여 각각 징역 1년과 징역1년 6개월을 선고받게 하고,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진승현을 불법대출과 주가조작 등으로 기소하여 징역 5년형을 선고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SBS ‘DJ 딸’ 보도 막전막후
‘음모론’ 등 또다른 의혹 양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숨겨진 가족사 논쟁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19일 SBS의 ‘DJ 숨겨진 딸’ 보도 이후 정치권과 세인들의 반응은 극명히 갈리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전직 대통령의 과거 사생활을 너무 선정적으로 보도한 게 아니냐는 동정론이 있는 반면 국가기관을 이용해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 한 위선자라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대중 죽이기 등 이른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SBS 보도가 그동안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았던 ‘DJ 딸’과 관련한 갖가지 소문을 공론화 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 동시에 국정원 개입설, 진승현 게이트 관련설 등 또다른 의혹을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개인 사생활이 먼저냐 아니면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이냐는 해묵은 논쟁도 증폭되고 있다.SBS 취재 과정에서 함구로 일관했던 DJ와 동교동, 그 핵심 측근들은 여전히 사실과 다른 보도라고 일축하고 있다. 다만 국정원 개입설 및 진승현 게이트 관련 여부는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SBS 제작진도 전직 대통령인 DJ의 어두운 과거를 파헤치는데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국정원 개입 의혹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하지만 국정원 개입 및 진승현 게이트 연루 의혹을 제기한 SBS의 보도 내용과 관련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당시 김은성 차장 등이 대통령의 사생활 관리를 위해 이른바 ‘특수사업비’ 명목으로 3억5,000만원을 받았다고 SBS가 보도했는데 국정원은 지금까지 ‘특수사업비’를 따로 관리한 사례가 없고, 그 정도 금액은 국정원 자체에서도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오히려 “국정원과 당시 핵심 권력층이 개입했다면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 진승현 게이트와 연관을 지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SBS가 ‘DJ 딸’에 초점을 맞춰 취재를 하다가 반대 여론을 감안해 물타기 차원에서 국정원 개입 의혹을 보도했을 것이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DJ에게 사생아가 있었다면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며 과거 정권때도 불거지지 않았던 ‘DJ 숨겨진 딸’ 문제가 왜 현정권에서 수면위로 부상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또 “60~70년대 당시에는 정치인의 사생활은 건드리지 않았던게 정치권의 불문율이었다고는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DJ는 3공이후에도 야당의 대권후보였다”며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대선정국에서 DJ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당시 정권이나 대권주자측이 이를 선거에 이용하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이처럼 SBS의 ‘DJ 숨겨진 딸’ 보도이후 양비론과 또다른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SBS가 이 사건을 보도하게 된 배경과 동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DJ 딸’ 문제와 관련한 갖가지 의혹과 미스터리를 풀 열쇠는 SBS 제작팀이 쥐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홍성철 anderia10@ilyoseoul.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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