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말 개관한 이곳에는 원명구 관장이 30년 가까이 모은 성관련 유물들 5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유물들의 출처도 우리나라,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유럽과 미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수집된 것들이다. 유물들 중에는 언뜻 보면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도 짐작하기 어려울만큼 생소한 것들도 상당수.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망라해 내려오는 세계 곳곳의 유물들이 총집합되어 있는 만큼 웬만큼 성에 대해 안다하는 사람들도 고개를 갸우뚱할만한 희귀한 물품들이 즐비하다. 이들 중에는 낯이 붉어질 만큼 적나라한 것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박물관 여기 저기를 둘러보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어머!’, ‘이건 뭐야?’, ‘정말 신기하다’, ‘저 시대에 어떻게 저런 것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등등 갖가지 반응이 터져나온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온 이상 성 유물들을 망측해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물품들을 직접 보고 확인하면서 신기해하는 경우가 대부분. 간간이 여기 저기에서는 웃음소리도 터져나온다. 그동안 성과 관련된 것들은 음란하고 점잖지 못한 것, 지적인 것과는 상반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술자리에서나 한번씩 꺼내봄직한 ‘음담패설’처럼 항상 음지에서 맴돌았던 것이 사실이다. 또 일정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은 ‘밝히는 사람’ 혹은 ‘변태’로 매도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평소 애써 외면해야했던 물품들을 눈앞에서 보고 만지며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성에 대해 관심이 있었음에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관심을 표출하지 못했던 이들, 대놓고 성담론을 입밖에 꺼내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성’은 자연스럽다. 체면을 차리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성기구와 조각품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대학생 커플, 남근상과 춘화에 관심을 보이는 노인의 눈빛은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박물관 3층은 차나 음료를 마시며 자유롭게 성담론을 나누거나 성고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카페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강연이나 모임을 가질 수도 있다. 한켠에는 성기구 등을 진열해놓고 판매하는 섹스숍도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찾기 힘든 수백권의 성관련 서적들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4층에는 남근과 여근을 비롯한 각종 조각품들과 모조성기, 성관련 도구, 원활한 성생활을 위해 고대부터 사용되었던 각종 기구, 자위기구, 여러 가지 체위를 본떠 만든 인형들, 약품, 희귀사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개중에는 시가 1억원을 호가하는 물품들도 있는데, 유물들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청동이나 흙, 도자기, 뼈 등 재료를 달리 사용해 만들어져 있다. 최근 마광수 교수가 ‘야하디 야하자’를 모토로 내걸고 자신의 홈페이지를 개설, 많은 이들과 발칙하고 적나라한 성담론을 스스럼없이 나누고 있듯이 이곳에서 ‘음란함’은 죄가 아니다. 원 관장도 “사람들은 성과 관련된 유물들은 경시하는 습성이 있지만 성 유물도 엄연한 문화유산”이라며 “성을 더 이상 종족보존의 기능에 국한시키지 말고 제대로된 교육하에서 성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풍토가 하루빨리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터뷰 성 박물관 원명구 관장
“性유물도 엄연한 문화유산”
젊었을 때부터 성에 대한 관심이 워낙 많았다는 원명구 관장(54)은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20년 이상 여행사를 운영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단순히 성 유물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열린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개관취지는.▲ 성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가 싫었다. 성 문화를 양지로 끌어 올려 이중적인 얼굴의 한국 사회가 좀 더 열린 사회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 성 박물관을 개관하기가 쉽지는 않았을텐데.▲ 성유물들이 음란한 것으로 치부되고 터부시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성 관련 유물도 엄연한 문화유산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유물들 중에는 수억원을 호가하는 가치를 지닌 것들도 상당수다. 남근석을 마치 해괴망측한 음란물 대하듯 하는 것은 시각차이다.
- 주 방문객은.▲ 대학생 커플에서 중년부부나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남녀 비율은 반반인데, 여성 혼자 오는 경우도 상당수다. 밤에는 술을 한잔 걸치고 직장동료들끼리 단체로 관람오기도 한다.
- 반응은 어떤가.▲ 대체로 남성들은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진지한데 반해, 여성들은 의외로 무척 적극적이고 유쾌하게 관람한다. 또 평소 성에 대해 터놓고 말하지 못했던 부부가 자연스레 대화가 터지는 것을 종종 본다.
- 성의 이중성이 안고 있는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성은 더 이상 종족 유지의 기능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성과 관련되어 불거져나오는 문제들은 모두 성에 대한 교육이 음지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원조교제나 성매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사회의 성의식은 청소년에서 어른들까지 모두 엉망진창이다. 누적된 욕망을 적절하게 분출하지 못한 부작용이다. 양지로 끌어올려 제대로된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성모럴은 기대할 수 없다.
- 추진하고 있는 활동이나 이벤트는.▲ 이 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성상담 및 조언을 해드리고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성적인 고민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성관련 각종 세미나와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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