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월간조선은 정치권에 나돌던 소문들을 취재해 ‘한 거물 정치인에게 숨겨놓은 딸이 있었으며, 이 딸은 그 거물 정치인이 공직에 재직할 때인 2002년 6월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SBS가 보도한 ‘2000년 6월 생모 자살’이 ‘2002년 6월 딸 사망’으로 다르게 확인된 부분만 빼고는 ‘정 전 의원’(SBS 정대철 전 의원)’과 정 전 의원의 아버지(정일형), 어머니(이태영)가 등장하는 것까지 똑 같다.이같은 국가원수의 스캔들과 관련한 소문들은 청와대와 정치권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단골 메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소문에만 그치지 않고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곤 한다. 심지어 과거 어느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 사귀던 여성을 안가에 수시로 불렀다든가, 대통령이 야인 시절 은밀한 관계를 맺었던 여성의 오빠가 청와대로 찾아 와 소동을 벌였다는 따위의 소문이 들릴 때도 있다.
“우리 팀의 자료실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때부터 수집해 온 DJ와 YS에 관한 자료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주로 부정이나 비리, 혹은 사생활 문란으로 문제삼아 코를 걸 수 있는 내용들이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DJ의 경우 ‘돈’과 관련된 것이 많았고, YS는 ‘여자’ 문제가 대부분이었다.”1980년대초 안기부에서 국내정치를 담당하던 부서에 근무했던 전직 정보맨이 들려 준 말이다. 좀 오래 전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똑같이 야당투사 생활을 했지만 여러 측면에서 뚜렷이 구분되는 ‘양 김씨’의 특성을 잘 설명해주는 일화라고 생각했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도 DJ는 정치자금, YS는 사생활 문제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은 최근들어 여지없이 깨지고 있다. 청와대에 입성한 뒤 “한 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며 방문객들에게 칼국수만 먹였던 YS가 실제론 선거자금으로 940억원을 야당에 내려보내는 등 천문학적 액수가 담긴 뒷주머니를 찼던 사실이 발각됐다.또 서울 동교동 자택의 문패에 ‘김대중·이희호’ 이름을 나란히 새겼음을 들어 패미니스트(여성인권옹호주의자)를 자칭하던 DJ였지만 이번 ‘숨겨진 딸’ 논란으로 그런 이미지가 일순에 망가졌다.그렇지만 은밀한 사생활 얘기를 할 때 압권은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 재직 당시 정보부처에서 DJ 딸 문제를 정보보고 차원에서 올렸지만 “정보부에서 이런 거나 올리는 거야?”라며 일축해 버렸다는 관계자의 전언은 동병상련의 심정을 그대로 설명한다. 특히 사생활 중에서도 ‘숨겨진 딸’ 문제와 관련해선 역시 YS가 시달릴대로 시달렸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대통령 사생활 항상 관심
4월22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고영구 국정원장이 ‘DJ 딸의 존재가 사실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처음에 “누구? YS의 딸?”이라고 능청을 떤 것은 YS의 숨겨진 딸 이야기가 이미 일반적임을 뜻한다.거제의 부잣집 아들로 자란 YS는 정치를 하면서도 한량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무수한 일화를 남겼다. 젊은 시절부터 YS와 ‘밤의 친구’였던 한 원로 정치인은 “한창 때 둘이서 어느 유부녀에게 수작을 걸다가 그녀의 남편이 엽총을 난사하며 들이닥치는 바람에 혼비백산해 내 뺀 적도 있다”며 껄껄웃었다.그런 YS의 사생활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른 것은 1992년 민자당 대선후보 때였다. 그 해 2월 20일자 LA매일신문에 ‘김영삼씨의 숨겨진 딸 가오리,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 언론에서 동시다발적인 보도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 LA매일신문 발행인 손충무씨가 긴급구속되기도 했다.
당시 국내에선 ‘YS의 숨겨진 딸 가오리양’ 이야기가 널리 회자됐다. 나중에는 의혹이 눈둥이처럼 커져 “숨겨진 딸 뿐만 아니라 아들도 있다더라”는 내용이 일부 언론을 타고 나돌았다.아들은 모르지만 딸 소문이 ‘객관적 사실’로 굳어진 것은 YS가 임기를 끝마친 지 2년 가량이 지난 2000년 1월이다. 당시 자신을 ‘가네코 가오리’(한국명 주현희, 일명 김현희)라고 밝힌 여성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낸 것이다. 특히 가오리양의 생모인 이경선씨는 그해 미국 LA에서 ‘로스앤젤레스 선데이저널’과 인터뷰를 갖고 1960년대 초반 YS와의 만남, 가오리양의 출산, 이후 일본인에게 양녀로 입양시킨 사연 등을 적나라하게 공개하기도 했다. 또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993년 가을부터 1998년 퇴임 직후까지 김기섭 안기부 실장으로부터 모두 23억원을 받았다”고 폭로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마흔을 넘긴 ‘가오리양’은 DJ의 숨겨진 딸로 보도된 김O영씨와 마찬가지로 지금 혼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숨겨진 딸’의 원조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결혼하기 이전 첫 부인인 김호남 여사와의 사이에서 딸 재옥씨를 뒀다는 사실은 지금은 다 안다. 하지만 유신시절 그런 사실을 함부로 입에 올렸다가는 ‘유언비어 유포죄’ 내지는 ‘국가원수모독죄’에 걸려 곤욕을 치를 정도로 당시로선 비밀사항에 속했다. 당시 정권은 대통령의 단란하고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강조하기 위해 ‘영부인 육영수, 영식 박지만, 영애 박근혜·박근영’이란 로열패밀리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런 판국에 이유야 어쨌든 이혼한 전 부인에다, 공개되지 않은 딸까지 민초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었다.물론 이는 YS와 DJ의 경우와는 전혀 별개다. 대신 ‘통치자와 여성’을 엮는 스캔들에 있어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YS가 남긴 일화의 대부분이 권좌에 오르기 전의 일이었다면, ‘박통’의 것은 궁정동 안가 깊숙한 곳에서 쥐도 새로 모르게 진행된 점이 다르다.그나마 외부로 알려진 사례 가운데 대표적인 스캔들이 1970년의 ‘정인숙 사건’이다. 당시 정인숙씨가 남긴 3살 짜리 아들이 누구 아들이냐를 놓고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등 권력자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나중에 성인이 된 정성일씨가 정일권씨를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아직도 정인숙씨와 박정희·정일권씨를 둘러싼 3각 억측들이 구구하다.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를 잃고 나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궁정동 안가에서 잦은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10·26 현장에 동석했던 ‘민간인’을 보면 대강은 알 수 있다.
‘채홍사’ 존재 미확인 소문도
당시 청와대 비서실에선 박정희 대통령의 일정을 ‘큰행사’와 ‘작은행사’로 구분했는데 큰행사는 국정을 챙기는 일정이고 작은행사는 주로 밤에 남몰래 하는 일정이었다고 한다.최근 화제가 됐던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나오는 각 장면들은 대부분 왜곡됐거나 과장된 것이지만, 전반적인 줄거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게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한다.그 시절엔 중앙정보부의 과장급 간부가 ‘채홍사’ 역할을 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당시 세간에는 “대통령이 TV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연예인이 있으면 ‘저 애 한번 데려와 봐’하면 채홍사가 즉각 대령했다더라”는 식의 루머가 난무했다. 이와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그리 오래 전이 아닌데도 연예인과 국가원수를 둘러싼 갖가지 루머들을 서울 여의도의 정가, 방송가 주변에서 듣기는 어렵지 않다.
가령, 역대 어느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의 술자리에 불려갔다가 정분을 나눈 한 여자연예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국모(國母)님’이라고 불러라”고 너스레를 떨고 다녔다는 일화가 연예가 주변에서 나돈 적이 있다.또는 스캔들까지는 아니지만 대통령이 여성 각료나 참모 가운데 특정인을 편애하는 바람에 다른 여성들이 시샘하고 질투하고 있다는 식의 말들도 화젯거리로 곧잘 나돈다.지난해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솔직히 말해 DJ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한명숙 의원하고 김명자 장관, 신낙균씨 같은 사람들을 대우해주고 좋은 자리들도 주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아가 그는 DJ가 그러는 이유를 ‘이희호 여사에 대한 보상심리’로 분석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우스개를 섞어 나도는 이런 류의 말들은 참여정부 들어서도 없지 않다.
가령,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후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중용하자, 같은 법조계 출신 여성으로서 참여정부 출범에 일조했던 모씨가 크게 기분이 상해 등을 돌리고 여권에서 나가버렸다는 식이다.현정부가 출범한 해인 2003년 말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근무하던 강순덕 경위가 사석에서 동료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소문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전격 좌천된 적이 있다. 당시 강 경위가 언급한 ‘노무현 대통령의 사생활’이 대체 무슨 내용인지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렸는데, 여기에도 앞서 소개한 것과 비슷한 내용들이 ‘~카더라’ 수준으로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사생활이 정치적 음모 안돼
한편, 대통령의 스캔들과는 별개로 청와대 사람들의 여성 관련 스캔들도 곧잘 정가의 화제가 되곤한다. 최근의 예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모 비서실장과 어느 여자연예인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이 소문은 ‘동거설’까지 나오면서 상당히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퍼져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 비서실장의 부인이 직접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루머를 일축시켰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스캔들을 ‘지퍼 게이트’로 대표되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은 문화의 차이를 거론할 것도 없이 쓸데없는 일이다. 다만 이번 DJ의 숨겨진 딸 스캔들에서도 일부 제기되듯이 대통령의 사생활이 정치적 음모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부적절한 사생활이나 스캔들이 실제로 있었다면 도덕성 부분만 논란이 되고 끝나야 한다. 이를 특정집단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당사자의 전반적인 국정업적까지 훼손시키는 도구로 삼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유제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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