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6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인터넷을 통해 난자매매와 대리모를 알선한 브로커와 일본인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2년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인터넷 까페를 통해 난자 제공 의사가 있는 국내 여성과 일본인 불임 부부를 거액을 받고 연결해 줬다. 이들은 일본인 불임부부로부터 건당 1,700만원을 받았다.그렇게 챙긴 수수료만1,000~1,500만원. 일반 여성들은 난자매매에 대해 꺼리지만 이곳(인터넷 까페) 여성들은 서로 자신의 난자를 ‘광고’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터넷서 자신의 ‘난자 광고’
그들은 신체조건·외모·학벌 등에 따라 150만~500만원의 ‘프리미엄’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알선한 난자 제공 건수는 249건. 약 42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광고까지 해 가면서 ‘난자 불법 매매’를 하게 된 이유는 뭘까.경찰에 따르면 그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카드빚 변제, 유학비 마련, 생활고 등. 사연은 다르지만 이들의 기본 동기는 같다. 바로 ‘돈’. “늘어나는 카드빚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라고 말하는 A여대 4학년 김모씨.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카드빚’ 400만원을 갚기 위해 ‘난자매매’에 나섰다. 김씨는 얼굴, 몸매, 학벌 모두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다. 다만 어린나이에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빚쟁이’로 살아가는 것 뿐이었다. 집으로 걸려오는 무수한 독촉전화와 압류 통지서 등에 지칠 대로 지친 김씨가 선택한 것은 ‘난자매매’다.
신용불량자보다는 차라리…
적게는 25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까지 준다니 카드빚을 갚기는 ‘식은 죽 먹기’. 당장 빚 독촉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김씨에게 난자매매는 쉬운 ‘돈벌이’였던 셈이다. 또 다른 사례. 가정주부인 최모씨는 먹고 살기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한다. 경찰에 따르면 대부분의 난자매매 여성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난자매매를 힘들게 노동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편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 돈을 목적으로 자신의 우수한 유전형질을 광고하며 난자를 파는 행위는 분명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 난자 매매’는 무섭게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여대 주변이나 학교 화장실에는 난자매매를 광고하는 전단지가 뿌려지기도. ‘점입가경’이 따로 없다. 게다가 많은 돈을 요구하며 대리모를 지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현대판 씨받이’를 자처한 셈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에서의 대리모 시세는 자연임신(직접적인 성관계를 통한 임신)의 경우 4,000만원, 인공수정의 경우 2,500만원선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아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환영’받는다.
현대판 ‘씨받이’도 자청
‘난자 불법 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출산으로 사회문제가 된 불임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불임 여성들은 ‘불임 치료’나 ‘시험관 시술’ 등에 드는 수천만원의 부담 대신 인터넷 ‘난자매매 사이트’에서 500만원 내외로 난자를 사거나 1,000만원 정도의 대리모를 구해 ‘불법 시술’을 하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M불임클리닉의 김모 원장은 “돈을 대가로 난자까지 판다는 것은 물질만능주의 풍조 속에 여성이 얼마만큼 상품화될 수 있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불임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차마 외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황우석 사단의 일원으로 알려진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이 그 대표적 인물. 현재 그는 불법 매매된 난자임을 알면서도 인공수정 시술을 해 경찰에 소환된 상태다. 이처럼 ‘불법 난자 매매’의 실체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시선도 만만찮다. 앞으로 더 파헤쳐봐야 알겠지만 당분간 ‘불법 난자 매매’ 사건 파문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 인터뷰-‘M불임클리닉’ 관계자 불임부부 배려 시스템화 필요
- 불임치료나 시술에 드는 비용은.
▲ 병원마다 다르다. 치료는 평균 300만원 이상, 시술은 많게는 몇 천 만원이 들기도 한다.
- 난자를 채취하는데 부작용은 없나.
▲ 없다. 안정만 취하면 된다. 그 이상의 후유증은 심적 고통 때문일 것이다.
- 이처럼 난자 불법 매매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 불임부부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난자와 정자를 체계적으로 기증받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려되는 부분은.
▲ ‘물질만능주의’의 결과물로 보인다. ‘돈벌이’ 수단으로 여성이 상품화될까 우려된다.그러나 돈을 대가로 한 난자거래만이 불법이다. 현행 생명윤리법상 자발적인 기증은 문제되지 않는다. 난자기증을 제도화하기 위한 복지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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