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 “터키는 지난번 브라질과 마지막까지 투표를 했었지요. 사무총장한테 중간에서 사전조율을 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중국은 북경올림픽· 광저우 아시안게임 시설을 이용하여 대회유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2015년은 대한민국이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조스장군과 CISM 사무총장의 조정역할로 터키와 중국이 포기를 결정하였었지요. 결국 대한민국 문경의 단독신청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그리고 국방부의 역할로 2011년 CISM 총회도 서울로 유치하였지요.
총감독 조스, 작전코치 Y장군, 현장감독 문경시장으로 이루어진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 문경유치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의외의 복병이 생겼었지요. 생각지도 못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의 관계였습니다.
“앞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이 확정될 때까지 어떤 국제대회도 유치하지 않겠습니다.”
2010년 말 유인촌 당시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표가 있었지요. 3번째 도전인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다른 국제대회는 양보하자는 것이었지요. 대한민국이 국제대회를 독식한다는 부정적 시각을 피하자는 논리였습니다.
“시장님 국제대회 유치를 위해서는 기획재정부로부터 국제대회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국제대회 승인을 받아야 국비지원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군인체육대회는 국제대회 승인을 받지 못하면 대회신청자체가 불가합니다. 외국 쪽에는 작업(?)을 다해 놓아 단독 신청이 가능한 상태이고 설사 다른 나라가 신청하더라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데, 국내관문이 문제입니다”
정책기획단 A팀장의 걱정이었습니다. 유인촌 장관의 엄명(?)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반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무부서인 국방부에서조차 천안함 사태 등 내부사정 때문에 매우 소극적인 입장이었지요.
당시 국방부장관 입장에서는 5년 뒤의 대회유치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걱정이었습니다. 시간은 자꾸 지나가고 국방부에서는 움짝달싹도 안하고 저 혼자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었지요.
이때 평소 개인적 친분이 있던 외교통상본부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본부장은 세계 군인체육대회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이해가 있었습니다.
“본부장님 꼭 도와주십시오. CISM 쪽에는 다 해결해 놓았습니다. 국내 관문만 통과시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제가 국무회의 끝나고 유 장관님께도 말씀 드리고 국방부 장관께도 부탁하겠습니다.”
결국 통상본부장의 가교역할로 딱 막혔던 고리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통상본부장의 도움으로 먼저 국방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국방부가 국제대회 승인 신청을 하였지요. 저도 심사위원들을 일일이 다 찾아뵈었습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끝내 반대를 했지요. 다만 적극적 반대는 안하겠다고 바뀌었지요.
통상본부장의 도움과 국방부관계자의 실무노력의 덕분으로 538억 원 규모의 국제대회 승인을 획득하였습니다.
4. 칼카바 회장과의 만남
세계군인체육연맹(CISM) 칼카바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10월 31일 요르단 암만 CISM 이사회에서 였습니다. 당시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 문경유치신청서를 접수하고 이사회에 심의를 받을 때였죠. 조스장군의 소개로 호텔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지요.
“대한민국 문경에서 개최될 수 있도록 회장님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회장은 회의진행만 합니다.”
아주 원론적인 답변만 했습니다. 냉랭했지요. 그래도 1시간 가까이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튿날 다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지요. 첫날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만약에 이사회에서 가부(可否)동수가 되면 대한민국 문경 개최에 손을 들어 드리지요”
이튿날도 칼카바 회장과 또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칼카바 회장은 세계육상연맹 아프리카 회장을 겸임하고 있어 대구에도 다녀갔고, 대한민국에 4번이나 다녀간 친한파였습니다.
셋째날도 호텔 커피숍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드디어 확답을 받았지요.
“나는 무조건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 문경개최를 지지합니다. 적극적으로 지지하겠습니다. 내일 이사회에서 발표를 잘하십시오.”
요르단 이사회에 체류하는 동안 칼카바 회장과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개인적으로 매우 친해졌습니다. 드디어 2010년 11월 3일 CISM 이사회에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발표에 앞서 큰절을 했습니다. 큰절을 할 때 참석한 CISM 이사들이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나라는 달라도 마음은 통했지요. 큰절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절의 의미는 전달되었다고 느껴졌지요. 맨 앞 줄에 앉은 칼카바 회장도 누구보다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88서울올림픽’을 개최하였고 ‘2002년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기회를 주시면 정말 성심껏 최선을 다하여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겠습니다. 상업적으로 성공시키겠습니다. 평화적으로 성공시키겠습니다. 규모면에서 성공시키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세계군인체육대회를 개최 한다면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기회를 주시면 젖먹던 힘까지 다바쳐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통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CISM 이사국 대표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었지요.
프리젠테이션이 끝나자 칼카바 회장이 가까이 와서 누구보다 따뜻하게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비록 대한민국 문경의 단독신청이었지만 단독신청의 배경에는 조스 장군의 숨은 노력이 있었고 칼카바 회장도 우군으로 도왔으며 이사회의 성공적 보고로 사실상 확정이라는 뜻에서 축하한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하였던 것이었죠.
칼카바 회장은 이제 대한민국 문경시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5월 12일 CISM 총회 확정 발표 때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2015년 세계 군인체육대회 문경개최가 확정된 이후 나중에 문경시에서 명예시민증을 수여한 바 있습니다.
5. 세계를 놀라게 한 문경시민 환영대회
“A팀장, 터키·중국 등 경쟁국을 교묘히 따돌리고 단독신청을 만들어 내고 이사회보고도 성공적으로 마쳤소. 이제 심사의 마지막 단계인 CISM평가단의 현장 평가만 남았지요. 어렵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소. 우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처럼 사회적 관심도 얻지 못했고 어느 누구로부터 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외롭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소. 인구 10만도 안 되는 중소도시에서 세계 5대 메이저 대회의 하나인 세계군인체육대회 유치를 눈앞에 두고 있소. 이제 마지막 남은 평가단 평가를 성공적으로 마련합시다.”
“2010년 2월 28일~3월 1일 까지 평가단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문경현장 방문은 3월 2일이 될 것 같습니다.”
A팀장의 보고였습니다.
“공항도착에서 현장심사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준비합시다.”
“5명의 평가단의 도착시간이 모두 다른데 어떻게 할까요?”
“한명 한명의 평가단의 도착에 맞추어 환영단을 인천공항에 보냅시다. 환영단에 저도 포함시켜 주세요.”
새벽에 도착하는 팀도 있었고 밤늦게 도착하는 단원도 있었습니다. 태극기를 갖고 문경시 환영 현수막을 갖고 공무원과 시민들이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인천공항을 다녀왔습니다. 평가단의 도착이 집중되는 2월 28일부터 저녁에는 아예 인천공항 인근의 호텔에서 1박을 하였지요. 2월 28일 저녁에 도착하는 팀을 환영하고 3월 1일 아침 일찍 도착하는 팀을 환영하기 위해서는 인천공항에서의 1박은 불가피했으니까요.
“A팀장 3월 2일 문경환영행사가 마지막 날입니다. 많은 문경시민들이 참여하여 그분들을 환영합시다”
14개 읍·면·동장님들께 부탁하여 진입도로에서 시청까지 4km 구간을 읍·면·동 별로 할당을 주었습니다. 일종의 돈네기(쿼터)식이였죠. 읍·면·동 별로 경쟁이 붙었고 교육청의 협조로 학생들도 참여하도록 협조를 구했습니다.
드디어 3월 2일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습니다. 바람도 조금 부는 편이었죠.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환영해 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3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점촌 시가지 4km 구간을 가득 메웠습니다. 아마 거동할 수 있는 시민들은 모두 다 시가지에 나온 것 같았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흥덕시장 입구에서부터 시청까지 4km의 양 구간에는 발디딜 틈 하나 없이 환영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문경 역사 이래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처음입니다. 14개 읍·면·동민들이 다 나온 것 같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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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국 ilyoseou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