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억 증여각서 진위 놓고 ‘한판승부’
32억 증여각서 진위 놓고 ‘한판승부’
  • 이수향 
  • 입력 2006-02-22 09:00
  • 승인 2006.02.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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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넘은 중견기업의 창업주가 한 여성에게 써준 각서와 관련, 골치아픈 송사에 휘말렸다. 현재 모 기업의 명예회장으로 있는 S(85)씨는 수년간 자신을 뒷바라지 해온 50대 여성과 거액의 재산 증여각서 진위를 놓고 민ㆍ형사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약 3년 6개월전 이 여성에게 써준 각서 한 장으로 인해 S회장은 그동안 쌓아온 명예가 실추되는 동시에 자그마치 32억원이라는 거금을 날릴 위기에 직면했다. 수년간이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던 이들이 ‘결별’하고 소송과 고소로 이어진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숨은 사연을 들여다 본다.
병수발로 맺어진 ‘악연’

두 사람의 잘못된 만남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령으로 인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모 기업의 명예회장으로 있는 S회장은 지난 1996년 한 국악회 행사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지역 여성단체 회장인 C(53)여인을 알게 된다. C씨는 노환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거동이 불편한 S회장의 수발을 성심껏 들어주었고, S회장은 C씨의 친절하고 싹싹한 태도와 마음씨에 감동하게 된다. C씨는 몸이 불편한 S회장을 보필하게 됐고, 건강이 좋지 않은 S회장을 직접 모시고 거의 매일 산책을 함께 다니다시피 했다.

더 나아가 S회장의 대외활동에까지 C씨가 동행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운 관계로 발전했다. 이런 두 사람을 두고 외부에서는 ‘내연관계’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자신을 보필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일까.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로 알려진 S회장은 이혼녀인 C씨에게 종종 자녀의 등록금 명목으로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순탄하게 이어졌던 둘의 관계는 금전적인 문제와 맞물리자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C씨는 S회장에게 더 많은 재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32억 증여각서 두고 법정다툼

급기야 2002년 7월 ‘일’이 터졌다. C씨가 S회장이 가진 재산의 일부를 증여받는다는 각서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S회장이 이 문제의 각서에 서명한 것이 화근이었다. 각서 내용은 서울 중구 장충동의 임야 2,589평(8,545㎡) 등 2필지를 C씨에게 무상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또 각서에는 당뇨와 노령으로 몸이 많이 불편한 S회장을 수년간 보좌해온 C씨에게 대가로 이 땅을 주고, 8월 말까지 3000㏄ 이상의 승용차를 C씨 명의로 구입해준다는 문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3년 S회장은 장충동 임야의 일부를 서울시에 넘겼고, 땅을 협의취득한 서울시는 보상금으로 S회장에게 32억원을 전달했다.

각서의 내용이 실천되지 않자 C씨가 발끈한 것은 불보듯 뻔한 일. C씨는 “각서대로 보상금 32억원과 토지의 소유권을 돌려달라”며 S회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그러나 S회장은 오히려 C씨를 사기 미수 및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를 들어 고소했다. S회장의 주장에 따르면 문제의 각서에 이름을 적고 서명을 한 것은 맞지만, 자신이 서명했을 당시 그 각서는 분명 ‘백지’였다는 것이다. S회장은 백지 각서를 자신이 예전에 C씨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자녀 등록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인 줄로 알고 서명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전혀 다른 내용의 증여각서로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서명을 받은 후 C씨가 위조했다는 것이 S회장의 주장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특히 두 사람의 다툼이 소송과 고소의 법정다툼으로 이어지면서 이들은 완전한 결별수순을 밟게 된다. 결국 C씨는 사문서위조, 사기미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각서의 진위 문제를 둘러싼 민ㆍ형사 재판부의 판단은 서로 엇갈렸다. 작년 5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는 “평소 재산관리에 대한 조언을 해 준 대가로 32억여원이나 되는 돈을 증여하겠다는 것은 경험칙에 반하고 통상과 달리 공증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등을 미뤄볼 때 각서는 ‘위조문서’라는 의심이 든다”며 C씨의 약정금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형사항소30부는 지난 14일 C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각서가 위조됐다는 S회장의 진술이 앞뒤 정황이 맞지 않고 모순점이 많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S회장이 문제의 각서에 서명한 후 땅의 재산가치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증여약속 이행을 모면하기 위해 C씨를 `허위 고소’ 했다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며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S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해당기업의 관계자는 “그런 일에 대해 들은 바도 없고 아는 바도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C씨가 S회장을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소송은 1심에서 C씨가 패소한 채 현재 항소심 계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2억 증여각서의 진위를 놓고 벌이는 팔순 재벌 회장과 50대 이혼녀의 소송분쟁에 법원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네티즌 찬반논란 ‘시선 집중’순수한 보살핌 VS 의도적 접근

이 사건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소송 자체나 각서의 진위여부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작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S회장과 C씨의 관계로, 아무런 조건없이 순수하게 이뤄진 만남이었는지의 여부다. 실제로 이 사건이 보도된 직후부터 네티즌들은 S회장과 C씨의 관계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또 네티즌 사이에서는 ‘32살 연하의 여성에게 보필받은 대가로 32억을 주는 것은 정당한가’, ‘여성은 팔순노인에게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처음부터 순수하게 접근했는가’, ‘S회장이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모 기업의 회장이 아니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에 대한 치열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는 상태다. 상당수의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재벌 회장과 32살 연하 여성의 부적절한 애정행각’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두 사람의 나이 차가 30년 이상 날 뿐 아니라, ‘자녀 학비’ 등을 명목으로 금전적인 지원이 행해졌다는 내용으로 보아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보필하고 보필받는 관계가 아니었다는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특히 몇 년에 걸쳐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가 돈 때문에 소송을 걸고 고소하는 것은 계략적인 관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는 “거동을 도와줄 때는 좋다고 도움받다가, 돈 문제가 얽히니까, 백지에 사인했다고 거짓말한다”, “수년간이나 보필을 받아놓고 막상 대가를 지불하려니 아까운 마음에 발뺌하는 것은 ‘회장님’답지 못하다”며 S회장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은 C씨가 S회장의 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꽃뱀’설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수십억원을 받기 위해 소송을 낸 C씨의 행동으로 보아 이는 의도적인 접근임이 분명하다’, ‘몇년 동안 회장님을 보필한 것이 ‘순수한’ 사랑에 의한 것이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 특히 C씨가 모 여성단체 회장인 것과 관련, ‘걸핏하면 여성의 인권 및 남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운운하는 여성단체를 이끌고 있다는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추태냐’, ‘연로한 기업회장을 순수하게 보필한 대가로 수십억원을 원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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