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십자, 일동제약 지분 15%…양사 합병하면 업계 1위 올라서
일동제약, 오너가 지분구조 취약…경영권 분쟁 꾸준히 이어져
[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일동제약(회장 윤원영)의 경영권 분쟁 이슈가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일동제약은 오너가의 취약한 지분구조 탓에 경영권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개인주주들과 여러 차례 갈등을 벌이며 경영권을 위협받았다. 매년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진행됐고, 경영진과 개인주주의 갈등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여기에 녹십자(회장 허일섭)가 가세했다. 최근 주식을 대량 매수하면서 2대주주로 떠오른 것이다. 따라서 대주주간의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진행될 경우 일동제약 경영권의 주인이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 돼버렸다. 특히 녹십자가 경영권을 넘어 일동제약을 인수합병(M&A)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녹십자가 환인제약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177만주(7.07%)를 146억 원에 시간외 대량매매로 매입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녹십자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주식(8.28%)을 포함해 지분율을 15.35%로 늘리며 단숨에 2대 주주로 등극했다. 이 때문에 녹십자가 일동제약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일동제약은 그동안 최대주주의 지분구조가 취약해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윤원영 회장의 지분율은 6.42%에 불과하다.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을 모두 합쳐도 27.19%에 그친다. 반면 녹십자를 비롯해 지분율이 5% 이상인 주요주주는 이호찬씨(12.57%), 안희태씨(9.94%), 피델리티(9.9%) 등 적지 않다. 특히 개인주주인 이씨와 안씨는 지분보유 목적이 ‘경영참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특히 안씨는 그동안 일동제약 경영진과 여러 차례 부딪힌 바 있다. 그는 2009년 경영참여를 선언하고 사외이사와 감사 등 총 4인의 선임을 요구했다. 이후 정기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연합을 형성해 당시 경영진과 표 대결을 벌였지만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2010년에 비상근감사 후보를 추천하는 주주제안을 정기주총에서 제안했다. 결국 27년간 일동제약 대표이사를 맡았던 이금기 회장이 퇴진해야 했다.
올해 들어서도 안씨는 이씨, 피델리티와 함께 일동제약 측이 안건으로 내놓은 ‘이사책임 경감’ 항목이 포함된 정관일부 변경 안건을 부결시키는 등 지속적으로 경영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또 지난 4월 열렸던 일동제약 주주총회 결의 내용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7일 법원은 안씨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양측의 분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회장보다 많은 지분 가진 개인주주
일동제약은 법원의 판결로 한숨을 돌렸지만 새롭게 부상한 녹십자로 인해 골치가 더 아파졌다. 녹십자는 지난 3월 녹십자생명을 현대차그룹에 매각하면서 녹십자생명이 보유하고 있던 일동제약 지분을 되샀다. 녹십자생명은 2010년부터 꾸준히 주식을 사들인 바 있다. 업계에서는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의 시선을 보냈지만 녹십자는 단순투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환인제약의 지분까지 인수하면서 2대 주주로 부상한 녹십자의 행보는 일동제약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특히 녹십자는 2010년 삼천리제약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동아제약에 밀렸고, 이후 중소제약사를 중심으로 꾸준히 인수를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인수합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녹십자는 일동제약 인수합병에 성공한다면 동아제약을 제치고 제약업계 1위로 등극할 수 있다. 지난해 녹십자와 일동제약의 매출을 합치면 1조 원을 상회하고 있어 동아제약의 매출 9000억 원을 뛰어넘는다.
또한 녹십자와 일동제약은 주력 분야가 다르다. 녹십자는 혈액과 백신 등 비화학물 의약품 매출 비중이 60% 정도다. 반면 일동제약은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 등 화학물의약품이 매출의 9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녹십자의 일동제약 인수합병은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약업계의 인수합병은 정부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지난 7일 한국정책금융공사는 여의도 본사에서 제약업계와 투자업계 관계자들을 초청해 제약업계 지원방안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책금융공사는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할 수 있는 인수합병 기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녹십자 측은 “회사 여유자금을 이용한 단순투자일 뿐”이라며 인수합병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녹십자가 일동제약 경영진과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히 두 회사 오너家는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윤원영 회장의 아들 윤웅섭 부사장과 허영섭 녹십자 창업주 아들 허은철 부사장은 고등학교 동문이다. 또한 윤원영 회장과 고 허영섭 회장의 교류도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녹십자가 개인주주와 갈등을 벌이고 있는 일동제약의 ‘백기사’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업계 1위를 노리는 녹십자가 단순투자를 목적으로 경쟁사의 지분을 15%나 보유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동제약의 경영에 관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결국 일동제약의 경영권은 5% 이상을 보유한 주요주주들의 합종연횡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이 때문에 내년 주주총회에 벌써부터 관심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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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