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사실무근’이라며 즉각 반발했고, 박근혜 후보는 지난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야권이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 간 진실공방이 벌어지면서 선거 막바지 혼탁 양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선판이 또 한 번 요동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국정원 직원이 상급의 지시를 받아 문재인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무차별적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등 여론조작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사실무근’이라며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민주통합당은 ‘자신있다’는 반응이다.
만약 국정원이 불법 선거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국가기관이 정치공작에 개입했다는 점에서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허위사실로 밝혀질 경우 민주통합당은 대선을 앞두고 적잖은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文 후보 측 “국정원이 정치공작” 의혹제기
지난 11일 문재인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을 갖고 “국정원 직원이 정치활동을 벌였다는 제보를 입수했다”며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진 대변인은 “각종 포털사이트의 정치 홈페이지에 국정원 직원이 접속해 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무차별로 올리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국정원 제3차장실 심리정보국 소속 김모(여)씨가 상급자 지시를 받아 지난 수개월 동안 한 오피스텔에서 근무하면서 야권 후보 비방과 여론 조작을 일삼아 왔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은 국정원이 3차장 산하에 심리전 담당부서를 70여명이 소속된 심리정보국으로 격상시켜 국내 정치현안에 온라인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며 국정원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를 폈다.
진 대변인은 12일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의 실상’이란 제목의 현안브리핑에서 “제보에 따르면 국정원은 작년 11월부터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전 담당부서를 심리정보국으로 격상시키고 그 내에 안보 1, 2, 3팀으로 명명된 세 개의 팀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팀에서는 요원들에게 개인별로 노트북을 지급하고 매일 주요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게재할 댓글 내용을 하달해왔다”며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국정원 청사 내부에서 다수의 요원이 동시에 정치현안에 대해 댓글을 달거나 야당과 야당 주요 인사들에 대한 댓글을 정치개입, 선거개입 활동을 할 경우 IP주소 추적 등에 의해 발각될 염려가 있다”며 “국정원 청사 외부에서 하도록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오피스텔 급습... 초동대처 미흡
민주통합당은 국정원 직원이 수개월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문 후보 비방 댓글을 올리는 등 여론조작을 해왔다는 제보를 받고 지난 일주일간 김씨의 행동을 관찰하며 잠복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저녁 경찰 및 선관위 관계자와 함께 김씨의 거주지인 서울 역삼동 S오피스텔로 향했다.
김씨의 오피스텔에 들어선 관계자들은 김씨에게 “국정원 직원이냐”고 물었고, 김씨는 “아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별다른 조처 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현장조사가 끝난 뒤 국정원이 김씨가 국정원 직원이란 사실을 발표하자 선관위와 경찰은 김씨에게 다시 집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며 재조사를 시도했지만 김씨가 이를 거부, 8시간동안 실랑이한 끝에 철수했다.
문재인 후보 측 우원식 총무본부장은 “컴퓨터 데이터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증거가 인멸될 가능이 높아지기 때문에 경찰과 검찰은 현장을 빠른 시일 내에 보존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상호 공보단장도 “경찰이 수사 의지만 있다면 김씨의 IP주소를 확보, 어느 사이트에 접속했는지 확인해 국민에게 보고하면 될 일”이라며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선관위 측은 “현장에서 불법행위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거나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컴퓨터를 조사할 권한은 없다”고 전했다. 경찰 역시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를 협조 요청한 상태라며 다만, 범죄행위를 소명할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인 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신청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정치공작 말라” 반발
국정원은 “정치적 중립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국정원을 민주통합당이 근거 없이 중상모략하고 있다”며 민주통합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한편, 형사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에 의한 ‘선거공작’이라며 이번 사건에 대해 바짝 각을 세웠다. 새누리당 권영세 선대위 종합실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10년 전 대선에서 친노세력이 김대업을 앞세워서 선거공작을 자행했던 구태정치 작태를 누구나 떠올릴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제2의 김대업 사건으로 규정한다”고 반발했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문 후보 측이 이제는 28세 아가씨집 습격사건까지 벌이고 있다”면서 “컴퓨터를 그 자리에서 공개해 내용을 밝혀 국정원장이 사퇴하건 문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건 가부간에 결단을 내야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12일 오전 ‘국정원 선거개입대책특별위원회’를 설립했다. 이에 새누리당도 ‘문재인 캠프 불법사찰 인권유린 기자폭행 등 선거공작진상조사특위’를 꾸려 맞불을 놨다.
한편, 의혹이 제기된 국정원 직원 김모씨는 자신을 장시간 오피스텔에 가둬둔 혐의로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을 고발했다. 아울러 자신의 컴퓨터와 노트북을 경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경찰과 선관위가 요구한 컴퓨터 이외의 휴대전화와 이동식 저장장치에 대해서는 제출을 거부했다.
경찰은 신속한 수사를 위해 증거품을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으로 가져가 인터넷 접속기록과 댓글 작성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의 분석결과에 따라 대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여야 각 진영에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