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이 마지막 남은 기회를 잡기 위해 절치부심중이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등은 이번 여름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통합’ 절차와 대상을 논의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미 ‘대통합’은 물건너 갔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제각기 약진을 선택함에 따라 세력 분화는 더욱 극심해 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열린우리당을 비롯, 범여권에선 ‘대통합’이 불발됐을 때를 상정한 또 다른 ‘대안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2002년 ‘노·정’ 단일화를 재현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로 불리는 김원기 전의장까지 나섰다.
범여권, 특히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그룹들의 마음이 그만큼 급하다는 증거다.
지난 22일, 열린우리당 탈당파인 문희상 김근태 정동영 전열린우리당 의장(문·근·영 3인방)과 정대철 전 우리당 고문은 김 전의장과 만나 ‘대통합’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의장은 “대통합이 2007년의 시대정신이며 지상과제”라며 “시간이 촉박한 만큼 7월 대통합 신당을 목표로 적극적인 노력을 펼칠 것”이라고 말
했다. 노 대통령이 “대세를 따르겠다”고 한 만큼 김 전의장의 합류는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더욱이 그는 “참여정부 탄생에 앞장섰던 입장에서 분당의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며 민주당을 향해 강도 높은 구애를 보냈다. 이에 앞서 하루 전날에는 김대중 전대통령(DJ)을 만나 같은 뜻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탈당파 위기의식 고조
열린우리당 탈당그룹이 자존심을 접고 민주당에 ‘애정 공세’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칫하면 이도 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상천 대표의 민주당과 김한길 대표의 통합신당은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 협상회의’ 구성을 제안하면서도 ‘열린우리당 배제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개별적인 합류는 가능하지만 열린우리당과 당대당 협상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열린우리당으로선 사실상 ‘항복선언’을 요구받은 셈이다.
정세균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양 당이 대통령 선거보다 차기 총선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며 발끈했다. 6자 회담을 제의했음에도 소통합을 추구하는 양 당이 끝내 거부할 경우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현재 당 지도부로선 뾰족한 방도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제3지대에 신당이 마련될 경우 임시전당대회를 통해 당을 해체하자는 복안이지만 아직 신당의 청사진도 제대로 나온 게 없다.
당 지도부의 의중과 달리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한 당 사수파는 일단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 김두관 전최고위원 등 친노 성향의 대선 주자들은 최근 들어 앞다퉈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문·근·영’, 최종 선택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제각기 길을 가고 있는 상황에서 탈당파 의원들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김근태 전의장은 대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치며 ‘대통합’에 무게 중심을 둔 상황이었고 정 전의장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차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탈당파 내에서조차 쉽지 않았다. 탈당파 45인 그룹은 전원회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생각의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표출됐다.
정 전고문과 문학진 의원 등 강경파들은 대통합을 위해서라면 개별적으로라도 통합협상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임종석 의원 등 초재선 그룹 일부는 열린우리당 ‘배제’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른바 ‘문·근·영’ 3인방과 정 전고문, 김 전의장이 부랴부랴 5인 회동을 가진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에서 나왔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보다 총선이 중요”
하지만 5인 회동으로 대표되는 중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범여권의 ‘대통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인식이다.
민주당과 통합신당의 ‘신당’ 창당 시기가 임박했고 열린우리당 친노그룹들도 쉽사리 뛰어들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손학규 전지사는 독자세력화를 추진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 또한 나름대로의 조직을 형성해 가는 상황이다.
때문에 범여권은 크게 ▲열린우리당 사수그룹 ▲제3지대 세력(탈당파, 손 전지사측 등) ▲민주당 + 통합신당으로 3등분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대선 이후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큰 걸림돌이다”며 “정치인들 각자에게는 대선도 중요하지만 금배지도 외면하기 힘들다. 당장 대통합으로 가기에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때문에 7, 8월 여름 정국을 거치며 결국은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각개 약진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시간적으로 9월 말이나 10월 경에는 대선 주자가 선출돼야 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열린우리당 사수그룹은 일단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 한 전총리를 중심으로 결집할 것으로 보인다. 이화영 의원 등 친노 성향 의원들이 이 전 총리 지지를 선언했고 일부 여론조사에서 정 전의장을 앞서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민주당과 중도신당도 ‘신당’ 창당 이후 곧바로 대선 주자를 발굴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 김 전의장 등의 가세 여부가 변수지만 조순형 추미애 김민석 김영환 전의원 등이 대선후보로 거론된다.
열린우리당 탈당파를 중심으로 한 제3지대는 손 전지사로 힘이 모아질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높다. 탈당파 중 일부는 민주당이 주도하는 ‘신당’에 참여할 것으로 보여지지만 그 범위는 미지수다. 정 전의장이 통합민주당에 합류하지 않는다면 정 전의장과 손 전지사가 제3지대 주도권을 놓고 일합을 펼쳐야 할지도 모
른다.
‘DJ-노’ 쌍끌이전략
범여권 일각에선 이 같은 제각각식 ‘미니 경선’이 오히려 대선 정국에서 유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하나로 합치는 게 더욱 위험하다는 얘기다.
이 전총리와 손 전지사, 그리고 정 전의장등이 각자의 자리에서 대선 주자로 부상한 뒤 2002년 ‘노·정’ 후보단일화 때처럼 최종 결선을 가지면 된다는 게 범여권 관계자의 말이다.
“현실적으로 대통합은 힘들다. 하지만 대선 주자들은 저마다 ‘반한’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결국은 하나로 모일 것이다.”
최종 단일화된 후보가 선출된 뒤 DJ와 노 대통령이 동시에 힘을 실어준다면 한나라당 후보에 능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게 범여권의 또 다른 전략이다.
‘대통합’이 점차 어려워지는 가운데 막판 뒤집기를 노리는 범여권의 전략이 현실에서 효과를 발휘할지 2007 대선 정국을 바라보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범여권 내 ‘손학규 비토론’ 왜?
범여권의 대통합 작업 걸림돌 1순위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열린우리당과 탈당파, 통합민주당의 시선이 제각각이고 대선 주자들의 인식 차이도 현격하다. “공과 과를 모두 받아안겠다”고 하는 인사들도 실제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낙제점에 가깝다.
범여권 대선 주자 중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손학규 전지사에 대한 평가도 중대한 시점이 되면 중요한 지표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손 전지사를 향한 비판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최근 손 전지사를 겨냥 “손 전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은 정당정치의 후진성으로 볼 수 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손 전지사와 같이 갈 수 없다고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에서 3선 의원을 하고 장관, 도지사까지 지내 한나라당의 주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국민 명분이 약하다는 게 그의 주장.
이에 앞서 민생 모임의 천정배 의원도 “대통합에 기여하기보다 자기세력만 강화하고 있다가 무임승차하겠다는 것이냐”며 “백의종군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질타했다.
과거 손 전지사에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범여권 내부에서 ‘손학규 비토론’이 나오는 것은 대통합이 어려워졌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증이다. 조 의원이 민주당 내에서 대선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고 천 의원 또한 오래전부터 대권 도전을 꿈꿔왔다는 점에서 손 전지사의 ‘범여권 연착륙’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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