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전국이 ‘도가니’로 들끓던 지난 10월, 전주에서는 또 다른 ‘도가니 사건’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 전북 전주의 한 장애인복지시설 설립자 친인척 C(44)씨가 지적장애 여성 7명을 수년간 성폭행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이 성폭행 주장은 ‘도가니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시행된 ‘장애인 생활시설 인권 실태조사’에서 피해자들의 진술을 통해 제기됐다. 해당 시설은 전북도내의 최대 규모인데다 장애인 복지 시설 내에서 지적 장애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전주의 한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생활했던 30~40대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은 성폭력을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타인에게 명료하고 일관되게 진술하지 못한다. 이들은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지적장애인으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복잡한 상황이나 생각에 대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 진술·증거 확보 어려움
영화 ‘도가니’가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지난해 10월과 11월 ‘장애인 생활시설 인권실태’가 시행됐고 이를 통해 지적장애 여성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진술확보가 수월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실태조사 위원들은 이 시설이 어떤 일이 발생했지만 피해 당사자인 지적 장애여성들이 낯선 외부인인 이들에게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1차 조사를 통해 실태조사 위원들이 일부 장애여성들과의 상담과정에서 성폭력 피해 낌새를 눈치 챈 것이다. 이에 20일 후 추가 조사가 진행됐다.
추가 조사가 이뤄진 이후 이 시설의 사회복지사들이 장애인 여성들을 상담하면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 시설 원장은 상담내용을 근거로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들은 상담 자리에서 “자꾸 무서운 꿈을 꿔서 겁이 나 죽겠다”며 후유증을 호소했다. 한 피해여성은 “선생님에게 (성폭력 당한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협박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들은 상담을 통해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이 시설에서 특수교사로 일한 C씨를 피의자로 지목했다. C씨는 이 재단 원장과 친인척 관계로 이 시설에서 특수교사로 일하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이 시설 산하 다른 장애인생활시설의 원장으로 근무하다 이 사건이 불거지자 지난 1월 퇴직했다.
현재 피해 여성들은 지난 8월부터 전주성폭력상담소와 경찰로부터 상담과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7월과 10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이 재단 직원들이 경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고발 이후 피해여성들은 새 복지시설로 보금자리를 옮겼지만 상담과 경찰 조사는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피해여성들이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고 성폭력 피해후유증 등을 호소하고 있어서다. 또 지적장애인은 상담·조사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완화와 심리적 안정을 갖게 하고 효과적 의사소통을 위해 친근감과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데만 수 주일이 걸렸다. 피해자들의 지능이 4~5세 수준이어서 17세에서 25세 사이에 겪었던 성폭력 사실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 받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피해입증 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과 피해여성들의 ‘기억’과 ‘말’에만 의존해야한다는 점도 수사진척을 더디게 하고 있다.
경찰은 폭력상담소 등 전문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피해 현재까지 7명의 피해자 중 6명에 한해 1차 조사를 벌여 진술 조사를 마쳤다. 나머지 피해여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오빠·선생님에서 가해자로
피해자들에 따르면 C씨는 시설 내 강당, 창고, 학교 교실 등에서 몸을 더듬고 만지는 등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강간을 저질렀다. 피해여성들은 장애인시설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고교 때부터 시설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온 C씨를 ‘오빠’나 ‘선생님’으로 부르며 따랐다. 이처럼 C씨는 특수교사로 근무하기 이전부터 피해여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조사에서 피해자가 더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C씨가 오랫동안 이 시설 내에서 생활했고 학교에서 근무했던 점 까지 고려하면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실제로 지난 7월 당초 고발장의 피해여성은 6명이었지만 조사과정에서 한 명 더 늘어 현재 피해여성은 7명이다. 경찰은 C씨가 이 시설 원장으로 근무하면서도 성폭력을 저질렀는지 여부와 또 다른 가해자가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이 불거지자 전국 장애인·여성·인권단체 66곳이 대책위를 구성, 지난 3일 전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대책위는 “이 시설은 학교부터 노인요양시설까지 갖춘 대규모 시설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평생을 한 공간에 수용되어 생활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며 “전북 대규모 사회복지법인 중 한 곳인 이곳에서 지적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으로 심각한 성폭력 문제가 초래되었다는 점에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지적장애인 2~3급의 여성들로 입소 기간이 10~30년 정도다. 어릴 적부터 시설에서만 지내 바깥세상이나 성폭력 등에 무지해 성폭력이 범죄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특수한 이유들로 인해 이들 피해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서울 경기도를 제외하면 전북이 가장 많은 장애인거주시설이 운영되고 있는데 해마다 이같은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가해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와 강력 처벌이 내려져야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지속적 상담과 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이 ‘제 2의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며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자 해당 시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시설은 대책위 기자회견 이후 불거진 의혹을 적극 부인하고 나섰다. 이 시설 측은 수사기관에 적극적 수사협조를 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진위여부는 확실히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이 시설 측은 “경찰 수사 결과가 빠르게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수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라 대책을 마련할 것이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