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수진 기자]신춘호 농심 회장의 ‘뻔뻔한’ 경영철학이 농심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감을 무너뜨리고 있다. 식품 위생 문제뿐만 아니라 논란이 되고 있는 일감몰아주기 정황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 기업에서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고려해 관련 업체에서 손을 떼거나, 논란이 된 제품에 문제가 없어도 소비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해당 제품을 전량 회수했던 사례와 대조된다. 게다가 지난 8월에는 농심가 3세들이 소유 지분 배당금으로 농심홀딩스 추가 주식 매입에 나서는 등 지분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의 불안감 해소는 뒷전이고 돈 버는 데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잇단 비난과 논란 속에서도 농심라면과 해당 계열사의 매출액은 증가 하고 있어 농심에게 소비자는 ‘봉’일 뿐 눈치 볼 대상이 아니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논란의 신라면블랙·너구리 판매 강행, 매출↑…계열사 일감몰아주기도
“소비자들의 불안감 해소는 뒷전이고 돈 버는 데만 급급해” 비판 이어져
신 회장의 먹거리 안전 불감증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신 회장은 ‘쥐머리 새우깡’, ‘농심 애벌레 라면’, ‘신라면블랙 허위 과장 광고’ 등 잇따른 사건에도 직접적인 공식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도 지난달 농심 라면제품 스프에서 검출된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과 관련한 농심의 대응이 놀랄 일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발암 물질이 발견된 당시 농심은 “소량이라 문제가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세우며 판매를 강행했다. 이에 소비자의 비난을 샀지만 식약청의 해명을 근거로 전혀 개의치 않았다. 또한 지난해 10월엔 허위광고 논란으로 퇴출됐던 신라면블랙의 판매를 재개하면서 퇴출 전 가격보다 50원 인상해 ‘꼼수 인상’이란 비판이 일었다.
그러나 이러한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농심의 올해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각각 3.9%, 25.4% 증가했다. 이는 수익성이 우수한 라면 매출액이 전년동기대비 10.5% 증가하면서 호조세를 보여 마진율 개선이 컸던 탓이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벤조피렌 사건 이후 한 주간 면류 판매액은 사건 전 대비 15%가량 감소했지만, 대규모 언론 노출과 자극적인 이슈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려보다는 양호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식품 안전성 이슈의 특성상 판매 감소는 초기에 가장 크고 점차 회복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라면블랙 역시 국내 판매가 재개된 지난 10월 25일부터 보름간 300만개 이상 팔려 매출 30억 원을 돌파했다. 업계에서는 월 매출 60억 원 이상도 예상하고 있다.
대놓고 일감몰아주기
신 회장의 안전 불감증이 지탄받고 있는 가운데 상생 불감증 논란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현재 재계에서는 중소기업 또는 골목상권과의 상생을 위해 관련 업계에서 손을 떼거나 정부가 제재를 가하는 등 동분서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신 회장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둘째 아들 회사인 율촌화학(부회장 신동윤)에 일감몰아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골판지나 봉지 제조업은 지난해 말 정부에 의해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논란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지난달 14일 공시된 율촌화학 3분기 보고서의 주요거래내역에 따르면 율촌화학은 농심계열사와의 납품거래를 통해 약 14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3분기 매출액이 1000억 원임을 감안하면 70~80%를 농심계열사로부터 얻는 것이다.
게다가 농심은 혈연관계에 얽혀 거래를 진행하다 보니 율촌이 수십 년 동안 정해진 사양대로 포장재를 공급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나 시정요구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시장 가격보다 비싸게 포장재를 공급받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중소 골판지 제조업 대표인 P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율촌은 봉지나 박스의 사양을 3겹으로 만들 것을 2겹으로 만들거나, 두께가 10밀리(mm)이면 5밀리로 줄여 납품하는 방법으로 부당지원을 받고 있다”며 “그러나 농심은 이를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방식으로 신 회장의 부가 아들 신동윤씨에게로 증여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농심은 “율촌화학은 법인 회사로 전문 경영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회장 일가와 연결 짓는 것은 맞지 않다”며 “90%의 일감을 몰아주는 게 절대 아니다. 농심 계열사와 다른 업체들 모두 공정한 입찰 과정을 통해 일을 맡기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농심 계열사와 일반 업체와의 비율은 50대 50이다”고 말했다.
배당금으로 주식 재매입
농심의 이러한 해명과 달리 일각에서는 P씨의 주장처럼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신 회장 일가의 부만 축척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는 상장사인 농심과 율촌화학은 매출액이 곧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율촌화학의 최대주주가 농심홀딩스인 상황에서 지난 8월 신 회장의 3세들이 소유 지분 배당금으로 농심홀딩스 추가 주식을 매입해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8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신 회장의 장녀 신현주 농심기획 부사장의 두 딸인 박혜성(32)·혜정(28)씨와 막내딸인 신윤경씨의 장녀 서민정(22)씨가 각각 400~450주를 장내 매수했다. 같은 달 3일에는 신동원 농심 부회장의 장남인 상렬(21)씨가 1239주를 취득해 3세 중 0.81%로 가장 많은 지분을 확보했다. 같은 날 신 부회장의 딸인 수정(25)·수현(22)씨도 각각 416주·410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번 매입으로 3세들이 소유한 농심홀딩스의 지분은 3.48%에 달한다. 이는 농심홀딩스 최대주주인 신동원 부회장(36.88%),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19.69%)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3세들의 소유 지분은 농심홀딩스가 신규 상장할 당시인 2003년 7월 신동원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2.78%)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신상렬씨의 경우 10세 때 할아버지에게 증여받은 주식의 현재 평가액이 19억 원대에 이르며 3세들의 주식평가 금액을 합하면 100억 원에 달한다.
농심그룹은 “3세들의 농심홀딩스 추가 주식 매입은 배당금으로 재투자한 것”이라며 “2003년 신 회장이 본인 소유의 농심홀딩스 지분을 3세들 11명에게 증여한 후 매년 발생하는 배당금을 활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