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과 발바리 사건 ‘모방’
“여자가 미웠고 세상이 싫었다”
유영철과 발바리 사건 ‘모방’
“여자가 미웠고 세상이 싫었다”
  • 정은혜 
  • 입력 2006-05-22 09:00
  • 승인 2006.05.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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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식 범죄가 잇따라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울산에서는 가정주부와 성매매 여성을 상대로 마구잡이로 성폭행한 후 금품을 강탈한 조모(20)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번 사건이 주목되는 것은 범인이 검거된 후 밝힌 범행동기 때문이다. 조씨는 경찰조사에서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특히 성매매여성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마디로 유영철의 범행동기와 닮은꼴이다. 실제로 조씨를 검거한 경찰은 “조기에 검거하지 못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칫하다가는 이 사건이 유영철, 정남규사건처럼 성폭행과 연쇄살인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씨는 유영철과 발바리의 범행수법을 그대로 모방, 더욱 진화된 범행을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가정주부 및 출장마사지 성매매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적발됐다. ‘여자가 미워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 남성은 강도치상 등 전과 3범 조모(20)씨. 울산경찰청에 따르면 조씨의 비극은 편부슬하에서 자란 어려운 가정환경, 새어머니의 가출에서 비롯됐다. 조씨는 새엄마의 가출이후 ‘여자에게 배신당했다’는 망상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모든 여성들에게 증오심을 품게 되었고 새엄마 또래의 여성에게는 참을 수 없는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보였다고 한다.

새엄마 가출 이후 ‘여성 증오’

경찰에 따르면 사건의 뿌리는 6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학교 2년생이던 조씨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못 받고 자라와 어두운 인상에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친어머니는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와 이혼해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이후 아버지와 재혼해 함께 살게 된 새어머니는 조씨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실제로 조씨의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다 간암으로 죽자 새어머니는 초상을 치른 후 바로 가출했다고 한다.

수년 여를 동고동락해왔지만 새어머니에게 조씨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버림받은 조씨는 결국 삼촌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얹혀살게 된다. 이에 대한 충격으로 조씨는 다니던 학교까지 그만두고 밖으로 나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놀이터, 공원 등지를 떠돌며 본드를 흡입했다고 한다. 이때가 고등학교 1학년. 예민하고 불안정한 사춘기 시절을 보낸 그는 사리판단 능력이 부족했을 터였다. 게다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하고한 날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사는 아버지를 보며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조씨의 결심은 갈수록 심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조씨는 본드를 흡입할 때만큼은 묵은 체증과 함께 쌓였던 스트레스까지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본드 흡입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집과 학교에 대한 걱정,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을 잊었다. 하지만 이런 환각상태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새엄마에 대한 분노’였다. 경찰조사 결과 조씨는 “본드를 흡입할 때면 새엄마에 대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며 “‘새어머니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 이후 줄곧 여자들을 미워해왔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여자는 돈만 뺏어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인 조씨의 분노는 이내 범행으로 이어졌다. 본드 흡입 후 환각상태에 빠진 채로 그는 새엄마와 비슷한 연배인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주부만을 골라 성폭행하기에 이르렀다. 170cm정도에 보통 체격인 조씨는 편한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장소는 다세대 주택 및 원룸촌. 조씨는 베란다 창문을 통해 침입해 잠을 자던 가정주부 박모(35)씨의 목에 사무용 커터칼을 대며 위협, 금품을 갈취하고 성폭행했다.

조씨는 처음엔 주부 등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가 대상을 스스로 ‘사회적 암적 존재’로 여긴 성매매여성으로 옮겨 범죄를 합리화했다. 이는 발바리의 범행수법을 그대로 답습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씨는 “언론에 알려졌던 발바리의 그것을 따라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출장마사지 여성을 모텔로 불러 마사지를 받고 성관계 후 같은 방법으로 위협해 현금을 갈취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씨는 심한 음담패설 및 욕설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조씨는 출장마사지 여성들에게 ‘입으로 성기를 빨라’고 말하는 등 온갖 변태적인 성행위를 요구했다. 여성들이 조씨의 명령대로 하면 이내 돌변, ‘너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등 위협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며 조씨의 이중적 행각에 혀를 내둘렀다. 특이한 점은 나이가 어린 출장마사지 여성이 올 경우는 성폭행은 전혀 하지 않고 돈만 빼앗고 돌려보냈다는 것.

이는 조씨의 원한 대상이 대부분 나이가 좀 든 ‘새어머니뻘’ 여성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씨는 경찰조사에서 “범행 직후 새엄마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는 것 같아 만족감을 느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지난 2005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조씨의 강도 및 강간 행각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5건. 그들에게 뜯어낸 돈은 고작 60여만원 상당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매매여성들의 특성상 신고하지 않은 사례를 합하면 그 피해자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조씨의 범행동기와 범행대상은 유영철을, 범행수법은 발바리를 모방하며 완벽한 범행을 꿈꿨다”면서 “만약 그가 빠른 시일 내에 검거되지 않았더라면 ‘제2의 유영철’, ‘울산발바리’가 됐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조씨는 “새엄마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여성이 미워서, 세상이 싫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운운하면서도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피해자에게 죄송하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원한관계든, 사회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증오범죄’이든 간에 피해여성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 따라서 그에 대한 법의 엄중한 처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여경기동수사대 수사 뒷얘기불법 출장마사지 업소 대량적발 ‘일석이조’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계자는 “출장마사지 여성들이 동일 수법의 강도 피해를 당했음에도 연합조직의 압력으로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피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울산권 출장마사지 조직을 일제히 단속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A’출장마사지를 주축으로 한 총책, 업주, 전단책 등 성매매알선 관련자 11명을 검거하는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울산경찰청 여기대 유재호 경사는 “이번에 적발된 출장마사지 조직은 2005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선정적인 여성의 사진을 인쇄한 전단지 수만 매를 시내 전역에 배포해 왔다”며 “전단지에 기재된 대포폰 전화번호로 연락이 오면 모텔 등에서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하여 부당이득을 취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성매매여성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피했다”며 “전화로만 영업을 하는 것이 특징이고, 알선료를 여성들의 통장에서 현금카드로 직접 인출해 가는 방법을 사용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경찰은 조씨를 상대로 동일 수법의 미제사건에 대한 관련여부 및 여죄를 계속 파악 중이며, 출장 마사지 관련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더욱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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