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또 같은 혐의로 전 대기업 부회장 아들 안모(47)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전 검찰총장 아들 박모(41)씨를 수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판매업자로부터 암암리에 지속적으로 필로폰을 구매해온데다, 전과기록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행위가 다분히 ‘상습적’이라는 얘기다. 무소불위의 금권력을 바탕으로 사회의 귀와 눈을 막아버리는 고위층 자제들의 실상과 마약 상습 복용 실태를 알아본다.
모럴해저드 ‘심각’
고위층 자제들의 마약복용 행위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정·재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공인’, ‘특권층’ 들의 모럴해저드가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데 익숙해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녀온 사람들도 드물지 않다. 실제로 이번에 적발된 고위층 자제들도 모두 동종전과뿐 아니라 다른 전과도 여럿 있는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전과기록만 놓고 보면 도저히 고위층 자녀들의 모습이라고는 보기 힘든 속칭 ‘망나니’과에 속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세 명은 평소에 매우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부터 친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나이대가 비슷할 뿐 아니라 한 동네에 살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고. 이들은 특별한 장소를 정해놓고 마약을 상습복용한 것은 아니었다. 주로 집이나 공원 등지에서 필로폰을 투여해 왔다는 것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킬 때 바로 투약,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지트 정해 즐기기도
경찰은 이 사건을 두고 처음에 재벌들의 이너서클 활동 여부 등을 의심했었다고 한다. 지난 2002년 회원제 윤락 조직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정·관계 고위층 자제와 부유층만을 상대로 윤락을 알선, 필로폰 엑스터시 등 마약을 공급하는 ‘극비 조직’이 있다는 첩보를 검찰이 입수했기 때문이다. 이에 별장이나 비밀 아지트를 따로 정해놓고 그곳에서 암암리에 거래, 활동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 경찰은 “그러나 조사결과 조직 및 회원 활동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실제로 이들이 검거된 장소도 지방대 분교 캠퍼스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퀵서비스, 우편 등을 통해 마약 판매업자로부터 집으로 직접 전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0.03~2g 정도의 소량의 필로폰을 여러 번으로 나눠 공급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경찰은 “대부분 마약중독자들은 금단현상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들은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지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파멸에도 ‘무감각’
하지만 마약 등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영향을 받는 고위층 자제도 상당수라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아버지를 대신해 Y백화점 경영을 맡았던 K씨는 여배우와 마약을 상습 복용하다가 적발됐다. 그는 또 구속되는 등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했다. 그는 이후 ‘방탕한 재벌2세’라는 세인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국내 굴지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재벌2세 A씨와 중견그룹 회장 아들 B씨도 비슷한 경우다. 이들은 유흥업소에서 만취한 상태로 여종업원에게 마약을 강요, 이를 거부하자 폭행, 민망할 수준의 성폭행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사건은 소리 소문 없이 일단락됐지만 실제 정·재계 인사들에겐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연일 구설수에 오르내린다는 후문이다. 국내에서 투약, 적발된 여느 사건과는 달리 아예 마약 관광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최근 의사, 전직 국회의원 아들 등 부유층 7명은 중국으로 원정, 낮에 골프를 치고 저녁에 마약과 섹스 파티를 벌였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현지 유흥업소 여성, 함께 관광을 떠난 국내 여대생들과 질펀한 성관계까지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마약인지 몰랐다가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서서히 중독, 결국 ‘마약의 늪’에 빠져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됐다고.
그러나 경찰은 이들을 수사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일선 수사팀의 한 경찰은 “그들은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다”면서 “이래도 되냐고 호통을 쳐도 눈하나 감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이곳저곳에서 무마를 청탁하는 요청이 많아 짜증이 날 정도”라고 전하기도 했다.고위층 자제들이 연루돼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번 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 ‘막나가는’ 고위층 자제들 ‘엿봤다’
‘재벌2세’ 혹은 ‘귀족’으로 불리는 이들의 일탈행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연예인들과의 염문. 그 예로 지난 2000년 초 연예계를 뜨겁게 달궜던 일명 ‘매춘사건’을 들 수 있다. 이는 일부 부유층과 재벌2세들이 하룻밤 화대로 수천만 원을 제의하며 여성 연예인들과 은밀한 섹스파티를 벌인다는 소문으로 당시 ‘화제’가 됐던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연예가에는 여성 연예인들의 후원자 명단에 부유층이나 재벌2세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연예인과 재벌들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은 대부분 병역비리에도 연루돼 있다. 과거 검찰은 청와대를 통해 반부패국민연대로부터 병역비리 의혹 인사 명단에 포함된 재벌2세들의 내사에 착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S, H, J 그룹 등 재벌2세 10명에 대한 명단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군면제’였다고 한다. 재벌2세, 3세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까지 ‘짜고 친 고스톱’이었던 것이다. 불법, 편법을 가리지 않으면서까지 정경유착으로 부를 쌓는 재벌가의 자식들. 단적인 사례지만 재벌가의 이런 저런 행태는 현재 이 사회에서 ‘빛’보다는 ‘그림자’를 더 많이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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