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스플릿 시스템 원년 … 그 명과 암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한국 프로 축구리그는 그동안 K 리그와 N 리그 등으로 엄밀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2013년 시작되는 승강제도를 위한 초석, ‘스플릿 시스템’의 도입으로 그 경계가 무너졌다.
이번 시즌 K리그는 정규리그 30라운드를 치른 뒤 순위에 따라 상위 그룹 A(1~8위)와 하위 그룹 B(9~16위)를 구성했다. 이후 두 그룹은 팀별로 14경기씩을 더해 우승팀과 강등팀을 가려냈다.
이에 서울, 수원, 전북 등 그룹 A에 속한 구단들은 우승의 영광을 좇은 반면 성남, 대전 광주, 강원 등 그룹 B 구단은 사활을 걸고 강등을 피하기 위한 혈전을 펼쳤다.
이러한 스플릿 시스템으로 유럽 축구리그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진풍경들이 K리그에서도 연출됐다. 리그 막바지에 들어서자 우승팀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누가 강등권을 탈출하게 되는가?’ 하는 화두가 던져졌다.
그 결과 FC서울이 그룹 A 1위에 등극해 우승을 차지했고 그룹 B에서는 자동 강등된 상주상무를 제외하고 광주 FC가 최하위를 기록, 2부 리그로 주저앉았다.
이로써 프로축구 K리그는 리그 구분이 마무리됐고, 기본적인 틀도 완성됐다. ‘스플릿 시스템’의 숨 막히는 위력은 정규리그와 조별리그를 통해 증명됐다.
그러나 2012 시즌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후 ‘스플릿 시스템’ 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성공적으로만 보였던 스플릿 시스템은 분명한 명과 암을 드러냈고 2013년 승강제 원년에 많은 과제를 남겼다.
흥미유발 성공, 관중몰이는 실패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 도입된 스플릿제도는 대중의 이목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스플릿 리그가 시작되기 전 지난 8월 26일 열린 정규리그 마지막 30라운드에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날 경기들은 흥행적인 측면에서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앞선 29라운드 8경기에서 총 4만 1271명, 경기당 평균 5159명이 입장한 반면 최종전이었던 30라운드에는 8경기 총 7만 3549명, 경기당 평균 9194명의 관중이 몰렸다. 2배 가까운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올 시즌 정규리그 30라운드 중 7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스플릿 제도가 흥행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규리그와 스플릿 리그가 모두 종료된 후 집계된 관객 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올해 K리그가 모은 총 관객 수는 올스타전(3만7155명)을 포함해 241만 9143명이었다. 지난해 300만 명을 돌파했던 기록에 비해 51만 여명이 줄었다. 이는 33.2%에 해당하는 수치. 구단별로 살펴봐도 16개 구단 가운데 14개 구단의 관중수가 하락했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대부분 ‘흥미가 분산되지 못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우승 또는 강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만한 경기들을 제외하곤 대중의 관심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올 시즌 치열한 우승 다툼을 벌인 FC 서울은 누적최다관객 45만 1045명을 기록했다. 평균 관중은 2만502명, 올 시즌 최다 관중 경기도 서울이 가져갔다. 반면 그 외 구단들은 대부분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물론 이 같은 문제점으로 인해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각 구단들은 자신들의 경기장에 관중몰이를 할 대안을 모색했고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그 중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을 벌인 구단은 대구와 제주가 꼽혔다. 대구는 올 시즌 16대의
자동차 경품을 내걸었다. 제주는 홈경기마다 ‘작전명 1982’ 라는 슬로건으로 선수들과 직접 호흡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선착순 1982명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선수 사인회를 지속적으로 열어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이에 대구와 제주는 각각 평균 관중 812명(12.8%)과 2040명(45.4%)이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2012년 K리그는 각각의 경기마다 흥행력을 높여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 동시에 마케팅의 극대화라는 돌파구도 찾을 수 있었던 시즌으로 평가됐다.
그들만의 리그, 지루한 싸움의 연속
스플릿 리그가 시작되면 모든 구단이 각자 목표를 향해 혈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스플릿 리그가 시작된 이후 아무런 동기부여를 찾을 수 없는 구단들이 등장했다.
팬들의 관심이 멀어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가장 적절한 예를 들 수 있는 구단은 그룹 B의 1위 인천이었다. 인천은 스플릿 리그가 시작되는 시점, 같은 그룹 최하위 강원(승점 25)과 15승점 차를 보였다. 무려 5경기 차였다.
더욱이 인천은 얻을 것 하나 없는 스플릿 리그 14경기 동안 무패행진을 달렸고, 해당 그룹 구단들과 격차를 넓혔다.
하지만 인천은 우승의 희망도 강등의 절망도 없는 애매한 위치에서 12월까지 무료한 14경기를 치르는 모습이었다. 그룹 A 최하위 경남 FC도 모두의 관심 밖에서 경기를 치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는 불과 몇 경기에 불과했던 올 시즌과 단 5라운드 스플릿 시스템으로 구성돼있는 스코틀랜드프리미어리그(SPL)를 비교해볼만한 대목이다.
스플릿, 모든 책임은 감독이?
이번 시즌 K리그는 FC 서울이 조기우승을 결정지었지만 이후에는 강등싸움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감독, 선수, 언론, 팬 모두 이전까지 한 번도 강등 경험을 하지 못한 만큼 그 관심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 관심이 K리그 감독들에게는 독이 됐다. 시즌 도중에 5개 구단의 감독 교체가 단행됐다. 최종라운드 직후에도 1명의 사령탑이 물러났다.
스플릿시스템과 강등제도 시행의 압박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로 인해 그룹 B(하위리그)에서 감독 교체가 집중됐다. 하위리그 8개 구단에서 시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감독은 상주 박항서 감독과 성남 신태용 감독 두 명에 불과했다.
이에 ‘K리그의 감독 교체현상이 유행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새어나오고 있다.
물론 감독들은 자신이 맡은 팀의 성적과 운명을 함께 한다. 성적이 좋으면 그만한 대우가 따르고, 성적이 저조하면 비난과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감독이 자신의 능력을 팀에 녹여줄 수 있게 뒷받침을 해주는 것은 분명 구단의 역할이다. ‘구단이 감독을 선택했다면 감독을 믿고 맡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 이유는 팀에 감독의 색깔을 입히고 그 실력을 발휘해내는 일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팬들 역시 이기기 위해 똑같은 플레이만 하는 구단들을 보며 만족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이것을 가장 잘 반증해주는 구단이 전북과 울산이다. 전북은 최강희 전 감독의 체제 아래 ‘닥공’(닥치고 공격)축구로 구단의 전성기를 맞았고, 울산 역시 김호곤 감독의 철퇴(한 방)축구로 아시아 챔피언에 오르며 많은 팬을 확보했다.
울산 현대 관계자 역시 “올 시즌부터 철퇴 축구 이미지는 마케팅화 시키고 있다”며 “팬들이 좋아해주는 만큼 티켓에도 철퇴 문양을 넣는 등 다각적으로 활용중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팬들이 사랑해 줄 역사와 색깔, 이야기를 가진 구단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구단이 감독의 성적만 따져 묻고 시간을 잘라 내버리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2013 스플릿 판도 예상
승강제가 가동되는 2013년도 스플릿 리그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위 리그 2개 구단(13위~14위)은 2부 리그로 강등되고, 12위 팀은 2부 리그 우승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 1부 리그 잔류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번 시즌에 비해 두 구단이나 줄어든 상황에서 더 많은 강등 팀이 나오는 만큼 거대한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구단별로 살펴보면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서울과 울산, 그리고 부진했던 수원과 성남의 재격돌이 기대된다. 전북도 이들의 경쟁에 불을 지필 전망이다.
수원과 성남은 시즌 개막 전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수원은 스테보를 제외하고 외국인 선수를 모두 갈아치웠다. 성남은 1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해 윤빛가람, 한상운, 김성준, 요반치치 등을 데려왔다.
하지만 두 구단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명가 재건의 꿈을 미뤄놓은 상태다. 이들과 서울, 울산, 전북 등이 펼치는 접전은 내년 시즌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2부 리그를 통해 프로리그에 첫 발을 디딜 고양, 충주, 아산 등 신생 구단과 1부 리그에서 강등된 광주, 상주의 대결도 흥미로운 구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수많은 화제와 문제점을 낳았던 2012 K리그. 스플릿 제도의 원년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의 시행착오는 이미 예상됐었다.
하지만 2년차를 맞는 2013 시즌에는 프로연맹이 얼마나 완벽한 대회 운영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고 있다.
아울러 이제 막 시즌을 마무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축구 팬들은 2013년, 각 구단들이 만들어 낼 ‘스플릿’ 드라마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