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로운 것은 김정일 영결식 때 시신 운구차를 호위했던 8인방 중 군부 핵심인사 4명 모두가 경질되거나 요직에 밀려나 좌천됐다는 점이다.
김정일 사망 직전까지 군부 실세였던 이영호 총참모장은 지난 7월 숙청돼 함경북도의 한 온천에 연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군부의 한 축으로 지난 4월 인민무력부장이었던 김영춘은 좌천됐고, 북한 정보기관의 수장이었던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1부부장은 와병설이 새어나온 이후로 공식석상에서 아예 모습을 감추었다.
바로 직전 인민무력부장이었던 김정각 차수 역시 군 지휘권을 내려놓고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으로 밀려났다. 이를 두고 정부 정보소식통은 김정은 집권 이후 군부 장악과 개혁이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북한 군부 강경파 인물 중 대남 도발의 최전방에 위험인물로 간주돼 왔던 김격식은 유일하게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별들 사이에서 영전에 영전을 거듭해왔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김격식을 군부의 전면에 내세운 배경을 두고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러 분석이 무성한 가운데 예측 불허의 대남도발이 터져나올 수 있다는 불안한 경고음들이 새어나오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군부가 대대적인 숙청과 물갈이, 일선부대장들까지 충성서약을 강요한 것은 단순한 군부개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심상치 않은 징후로 파악되고 있다.
김정은 집권 1년 사이 북한군부의 실세들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듯 수뇌부의 별들이 차례대로 제거됐다. 군 수뇌부를 통째로 갈아치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일 생존 당시 정치기관이 입김조차 불어넣을 수 없었던 군부는 선군체제를 유지하는 단단한 철옹성으로 존재했었다.
그랬던 북한 군부가 지난 11개월 사이 전격적인 숙청과 별들의 강등, 군부 수장의 좌천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정은의 군부개혁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문제는 서해4군단 사령관으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발의 주도했던 김격식이 유일하게 승승장구하며 군지휘권을 거머쥐고 전면에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김정은 군부 재편 마무리 다음 수순은 도발?
김격식은 김정일 생전에 서부 최전방 부대를 관할하는 2군단장(1994~2007년)으로 13년 동안 보직했고, 지난 2007년 총참모장으로 승진했다가 2009년 2월 돌연 해임돼 서해4군단으로 떨어졌다. 그런 뒤 대청도 해전(2009년 11월),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11월)을 연달아 감행한 장본인이다.
군 당국 관계자는 “김정은이 군대 재편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김격식이 상장 계급에서 대장으로 다시 인민무력부장으로 군부 전면에 급부상한 것에 대해 배경을 파악 중”이라면서도 “분명한 사실은 지난 몇 년간의 무력도발의 주범인 그가 군부 수장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후속 도발을 경계해야 할 위협적인 신호임에는 틀림없다”고 언급했다.
리영호는 물리적인 숙청이 이뤄질 때 최룡해 총정치국장 측과 총격전으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북한 군부 수뇌부 4인방을 제거하는 과정에 김격식이 깊이 관여했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최룡해가 리영호의 제거에 필요한 증거자료를 수집했다면 김격식은 실질적인 행동단계에서 물리적인 충돌을 예상하고 병력을 통솔했다는 것이다.
당시 교전 중에 20여명의 북한 군인이 사망했다는 첩보도 있다. 리영호 숙청 직전인 3월초에 김격식은 김정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기고의 글을 노동신문에 실린 것은 군부 물갈이를 암시하는 전조로 받아들여진다.
정부 정보당국 관계자는 “김격식은 김정일 사망 직후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김정은의 군사보좌관역을 수행했고, 총격전까지 연출됐던 리영호 전 총참모장 숙청을 장성택이 기획했다면 행동부대는 김격식이 맡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은 체제 최고 실세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분신'으로 불리는 최룡해는 지난 4월 군 행정을 총괄하는 총정치국장에 임명돼 김정은 군대 재편이 마무리된 상황에서도 유임됐다.
또 한 대북전문가는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흔적을 가장 빨리 지우려 애쓰고 개혁에 착수한 대상이 바로 군부”라며 “집권 11개월만에 김정일의 군대는 김정은의 손가락만 쳐다보는 군대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는“김정일의 운구차를 호위했던 리영호, 김영춘, 우동측, 김정각 등 군부 4인방은 선군체제 유지를 위한 김정은의 후견그룹으로 지목됐던 이들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아버지의 군부 수뇌부를 제거하고 자신의 사람들로 다시 채웠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격식”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김격식을 군부 수장으로 선택한 배경에 대해선 “김정일 생전에 대남도발을 진두지휘했던 장본인이고 김정은과 함께 디도스 사이버테러, 천안함 사건, 연평기습 도발을 함께 기획해 후계 공적을 쌓는데 결정적인 기여했기 때문에 둘 사이에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때부터 두터운 신뢰 관계가 형성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격식은 예측불허 대남도발 기획자
지금 북한 군부는 수뇌부를 교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70~80대 나이의 군단장급 간부 30% 이상이 갈렸고, 40~50대 사단장급 출신들로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 10월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열린 김일성·김정일 동상 제막식에서 “당과 수령에게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군사가 다운 기질이 있고 작전전술에 능하다고 해도 우리에겐 필요없다”고 밝힌 뒤에 가파르게 진행됐다.
김정은이 직접 신군부 수뇌부와 최전방 일선에 이르기까지 충성서약을 강요하고 나선 데에는 최근 잇따른 북한군인의 월남이나 주민 식량 강탈 등 군 기강해이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김격식은 지난 3월초 북한 기관지 노동신문에 기고한 ‘적들은 우리의 타격권 안에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이명박 대통령, 김관진 국방장관, 정승조 합참의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역적패당에게 연평도 불바다와는 대비도 되지 않을 강력하고 무자비하며 섬멸적인 징벌을 안기고야 말겠다”며 대남 비방공세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면서“네놈들(이 대통령 등)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 네놈들이 서울에 있다고 해서, 미제 상전의 뒤에 숨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철추(철퇴)를 피하리라고는 생각지 말라. 우리에게는 서울이 코앞이고 우리의 총검은 이미 네놈들의 멱살을 겨누었다”고 대남 비방 공세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한 고위 탈북자는 “야전 경험이 전혀 없는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에 기용한 것을 두고 군단장급 간부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져가고 있다”며 “김격식을 인민무력부장에 임명하고 군부 전면에 내세운 의도는 북한군 내부의 불안정과 흔들리는 군심의 동요를 다잡기 위한 측면이 짙다”고 말했다.
그는“문제는 김격식인데 이 사람은 골수까지 대남도 발 무력통으로 불릴 정도로 군부 내 대표적인 강경파이고, 김정은의 눈에 들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선 어떤 식으로 다시 예측불허의 도발을 기획할지 모르는 인물”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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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