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인터넷 범죄사이트를 이용, 변심한 애인의 아내를 청부살해한 30대 여성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어온 ‘자살카페’나 ‘해결사카페’ 등 인터넷 범죄사이트를 이용한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법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돼 주목을 끈다. 청부를 받고 여성을 직접 살해한 인터넷 카페 운영자는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된 김모(32)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김씨의 상고를 기각,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재판부 판결문을 토대로 사건의 앞뒤를 따라가 본다.
재판부 판결문에 따르면, 이 ‘충격적인’ 사건의 골자는 전직 교사였던 김씨가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자 앙심을 품고 애인의 아내를 청부살해했다는 것. 김씨는 변심한 애인의 아내만 없으면 애인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으로 생각해 이 같은 ‘무서운’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양다리’ 애인에게 차여 앙심
사건의 발단은 지금으로부터 6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김씨는 대학 동창 지모(32)씨와 만나 교제를 했다. 대학교서부터 알던 사이라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이렇게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혼담이 오갔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한지 2년이 채 못 되던 어느 날. 김씨는 지씨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헤어지자’는 통보였다. 김씨는 지씨를 붙잡고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지씨의 마음은 다른 여성에게 꽂혔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지씨는 김씨와 교제하면서 몰래 장모(29)씨와도 결혼을 약속하고 교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양다리 연애’였던 것이다. 파혼 당한 김씨는 심한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여 사직했다. 이후 그는 지씨와 장씨 주변을 맴돌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김씨는 장씨의 인터넷 미니홈피를 찾아내 심한 욕설과 인신공격성 글을 남겼다. 또한 이메일을 통해 “지씨는 내 남자”라며 헤어질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장씨는 김씨를 불러내 지씨와 ‘삼자대면’하기에 이른다. 장씨는 김씨에게 “아무리 매달려도 소용없다”며 “우리는 곧 결혼할 것이니 그만 포기하라”는 충격적인 말을 건넸다. 이후 장씨와 지씨가 사실상 동거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그만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속칭 ‘해결사 카페’사이트에 접속, 청부업자 현모씨에게 장씨의 살해를 의뢰한 것.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성남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김씨가 지씨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장씨에게 모두 퍼부었다”며 “김씨는 장씨만 죽으면 지씨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인터넷 통해 청부살해 의뢰
900만원의 사례금을 약속한 김씨는 일단 착수금 300만원을 현씨에게 건넸다. 이어 김씨는 장씨의 인적사항과 주소,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며 수시로 상황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나머지 600만원은 사건이 종결되면 준다는 약속 하에 김씨는 사건의 추이를 지켜봤다. 현씨는 장씨를 미행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김씨에게 보고했다. 수일간의 미행 끝에 현씨는 주차장에서 차에 올라타려던 장씨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하기에 이른다. 현씨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용의주도하게 행동했지만, 잔인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한 살해 수법은 용의자가 분명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다. 경찰은 “살해수법으로 보아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장씨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김씨와 장씨가 지씨를 사이에 두고 심하게 싸운 사실을 알고,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수사 초기 김씨가 직접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으나, 이후 김씨가 현씨의 인터넷 청부카페에 접속한 사실을 밝혀냈다”면서 “둘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과 돈을 입금한 사실을 확보, 김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현모씨가 개설해 운영하던 속칭 ‘해결사 카페’사이트에 접속해 900만원의 사례금을 줄 테니 피해자를 살해해 달라고 의뢰하고, 살인교사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범행에 사용한 노트북 컴퓨터의 관련 자료를 모두 삭제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며 “범행의 동기와 결과 등 제반사정을 종합할 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양형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청부업자 전과 수두룩… ‘무기징역’
한편, 김씨의 청부살해 의뢰를 받고 살인을 저지른 현씨에 대해 법원은 “살해 방법이 잔인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속칭 해결사 카페를 개설하고 불특정인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살인을 행한 행위는 일반시민의 안전을 해치는 사회적 위험성이 매우 큰 행위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회에서 무기한 격리시키는 형을 선고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형량을 유지했다. 현씨는 동거하던 여성이 자신의 동생과 불륜관계를 맺고 도망가자 여성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사건 외에도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또 다른 3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가 인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심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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