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 문경의 발전을 위해 달리는 길은 행복한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행복과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해 국회의원이 못 되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저를 오늘에 있게 한 8만 문경시민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서럽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후회스럽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 것도 문경을 더욱 더 크게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제 4장 국군체육부대 유치
· 경쟁 지역보다 6개월 늦게 출발해 국군체육부대 유치…
· 담당 공무원들 조차 불가능하다고 했고, 1%의 가능성도 없던 상황에서 100%를 만들어 낸 뚝심…
· 나이가 적은 부대장·부대원 앞에서 큰 절을 해 감동 만들어…
· 결국, 그 큰 절은 3400억 원 짜리 큰 절이 되어 돌아와…
1. 뒤늦은 출발
L팀장 : 경쟁지역보다 근 6개월 가까이 늦게 출발했지요.
▲ 신 : 그렇습니다. 제가 시장에 취임하고 20여일쯤 지난 뒤 였으니까 2006년 7월 말께에 문경시는 준비를 시작한 것이지요. 이미 그때 경쟁지역은 6개월전에 신청서를 국군체육부대에 제출했고, 현지조사와 항공촬영까지 마친 상태였습니다.
제가 시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2005년 11월 께에 서울 송파지구 택지개발 계획이 확정되면서 송파지구에 소재한 국군체육부대의 지방이전계획이 발표됐지요. 발표되자마자 경쟁지역에서는 발빠른 행보를 시작했지요. 문경시에서는 당시에는 전혀 준비를 하지 못했어요. 2006년 7월 3일 제가 시장에 취임한 후, 뒤늦게 정보를 듣고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경쟁지역에서 항공촬영까지 마치고 최종 심사단계에서 시작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정보를 듣고 한번 해보자고 했을 때 시청의 모든 간부들이 다 반대했지요.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에 체육부대 신청 건은 포기하자고 했지요. 다들 포기하자고 했고 무의미하다고 했지만,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해보자고 우겼지요.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했기에 1%의 가능성을 믿고 저 혼자 해보자고 주장했지요. 시청의 간부들, 직원 모두가 속으로 비웃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문경시가 경쟁 지역보다 특별히 접근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특별히 체육관련 인프라라던가 강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L팀장 : 호계면 견탄리 후보지의 입지가 상당히 괜찮은 지역같은데 뒤늦게 출발하면서 어떻게 그런 좋은 후보지를 물색 할 수가 있었나요.
▲ 신 : 후보지를 선택한 게 아니고 다른 대안이 없었지요. 급하게 후보지를 제시해야 되는데 시간은 없고 결국 혁신도시유치 신청을 할 때 제출했던 그 후보지를 그대로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건이 꽤나 까다로웠어요. 50만 평(165만㎡)이 넘어야 하고 부지매입이 용이했어야 했는데 뒤늦게 신청하는 입장에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겨를이 없었지요. 90% 이상이 사유지라 부지매입에 어려움이 예상되었지만 그것은 그때가서 고민할 문제이고 당시로서는 시간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보지는 누가 뭐래도 참 훌륭한 후보지입니다. 백두대간의 오정산을 배후에 두고 낙동강의 상류인 영강천이 흐르고 있어 명실상부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자리가 틀림없지요.
2. 보고서 작성
L팀장 :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보고서 작성이었겠지요. 보고서를 참 잘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던데요.
▲ 신 : 모든 심사는 서류 과정을 통과하기에 보고서를 멋지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지요. 그런데 보고서를 잘 만들려면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보고서는 잘 만들어야겠고 걱정이 많았지요. 그때 정책기획단의 A팀장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지요. 시간은 1주일, 보고서 분량은 경쟁지역보다 더 두껍게 만들어야 된다는 단서까지 붙였지요. 당시 확인해 보니 경쟁지역의 보고서 중 제일 두껍게 만든 지역이 175쪽 이었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조건 200쪽을 넘겨야 된다고 했습니다.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3일 뒤에 정책기획단에 들러서 추진현황을 물어보니 A팀장이 3일간 준비한 보고서가 A-4용지로 15쪽 이었지요. 큰일이었습니다. 보고서 분량을 늘리는 비상 수단을 강구했지요. 그것은 부록(Appendix)을 늘리는 방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책기획단의 전 직원을 다 동원하여 보고서 작성에 투입했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호계면 견탄리 후보지 현장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게 하고 지적직 공무원은 현장에 나가서 필지조사를 하게 했습니다. 나머지 직원은 문경의 역사, 문경의 관광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게 했었죠. 이렇게 업무를 분담해 1주일만에 275쪽의 훌륭한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L팀장 : 보고서의 경우 내용이 중요할텐데 분량을 왜 그렇게 강조했나요.
▲ 신 : 환경부에 근무할 때 대학에 출강을 나갔는데, 그때 학생들에게 시험도 치루고 과제물도 제출하도록 했는데 시험지는 꼼꼼히 읽어봤지만 과제물 채점은 내용보다 분량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지요. 분량이 두꺼운 경우 일단 B+는 확보 했고 내용까지 갖추면 A+을 주었어요. 반대로 내용이 아무리 충실해도 볼륨이 얇을 때는 최대가 B+이였어요. 그런데 체육부대 신청보고서의 경우 우리는 심각하게 한쪽 한쪽 준비하지만 심사위원들 입장에서 보면 전혀 심각할게 없고 느낌으로 평가 할 가능성이 짙다고 보여졌습니다.
이를테면 그분들에게는 시험지 채점이 아니라 과제물 채점에 해당한다고 생각됐지요. 물론 본문의 내용은 직접 일일이 챙기고 요약보고서는 직접 제가 정리를 했습니다. 어떻든 1주일만에 우리들의 힘으로 훌륭한 보고서를 만들었고, 인쇄소에 넘겨 5부를 프린트했고 곧바로 국군체육부대에 제출했습니다.
3. K연대장의 도움
L팀장 : 구미연대 K연대장의 도움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 신 : 어렵게 만든 보고서를 체육부대에 제출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예요. 아무리 기다려도 체육부대에서 연락도 없고 그렇다고 경쟁지역처럼 현지조사, 항공촬영에 대한 얘기도 전혀 없는 것이었어요. 당시, 체육부대장은 K장군으로 육사 30기였어요. 육사 30기이면 저와 같은 연배로 아는 친구들에게도 부탁을 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해 노력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요. 보고서를 제출하고 20일이 지났건만 한 발짝도 진척이 없었지요. 그때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50사단소속 구미 연대장이 새로 부임했고, 새로 부임한 K구미연대장이 인사차 문경시청에 들린 것이지죠. 그 날이 2006년 8월 21일이였어요. 그때 저는 K연대장에게 혹시 국군체육부대에 아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체육부대 참모장 K연대장과 동기라고 했어요. 동기일뿐만 아니라 육사생도시절 룸메이트 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때 K 연대장의 두손을 덥석 잡고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보고할 수만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지요.
“국군체육부대 문경유치를 위해 어렵게 보고서를 만들어 지난 7월말에 부대에 제출했는데 20일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간 여러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저… 다른 부탁은 안 드리고 체육부대장께 5분만 할애를 받아 보고할 수 있도록만 해 주십시오”
K연대장은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들고, 곧바로 체육부대 참모장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국군체육부대에서 전화가 왔지요. 다음날 9시까지 체육부대로 오라는 것이였어요. 그날 A팀장을 불렀지요.
“A팀장, 체육부대장께 보고 할 수 있도록 요약보고서 (5분분량) 준비해 주시오”
그리고 다음날 꿈에도 그리던 국군체육부대를 방문하여 K부대장을 만났고 K부대장 앞에서 그간 준비한 내용들을 소상히 설명했지요.
“이렇게 보고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문경시 호계면 견탄리 일원은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5분거리에 위치하고 백두대간의 중심인 오정산을 배경으로 앞으로 낙동강의 최상류인 영강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입니다. 문경은 조선시대 영남의 선비가 이곳을 지났고, 주흘산·백화산·대야산·황장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중심으로 국군체육부대 중흥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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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국 ilyoseou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