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
  • 정은혜 
  • 입력 2007-01-09 16:04
  • 승인 2007.01.09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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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선도단체 대표의 ‘인면수심’ 풀스토리

한 청소년 선도단체 대표가 보호위탁된 10대 소녀를 수년간 내연녀로 삼고, 정부지원금 수천만원을 빼돌리는 등 파렴치한 행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5년간 H청소년 선도회 회장을 맡아온 박모(63)씨가 그 장본인. 그는 6년여 전 성매매 업주가 선도를 해 달라며 맡긴 허모(당시 19세)양을 내연녀로 삼은 뒤, 허씨에 대한 월급 명목으로 정부의 청소년 육성 지원금 6,500만원을 가로채다가 최근 검찰에 구속됐다. 뿐만 아니라 그는 빼돌린 공금으로 자신의 선배에게 월급을 주는가 하면, 법인 소유의 자동차를 팔아 개인 사비로 유용한 것으로도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각종 매스컴 등을 통해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는 박씨. 그는 대체 어떤 식으로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행각을 벌였던 것일까. 사건의 전모를 밀착 취재했다.



검찰에 따르면 허양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지난 2001년. 서울 일대의 한 성매매 업주가 고용한 허양을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H선도회를 찾은 것이 발단이 됐다. 청소년의 탈선 및 비행 예방을 목적으로 설립된 H선도회는 당시 정부로부터 청소년 육성기금을 매년 2억여원씩 지원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업주는 허양의 학습지원 등을 이 단체에 요청했던 것이었다.
당시 박씨는 “허양의 학비 등을 지원하고 바른 길로 선도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업주를 안심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허양을 선도하겠다고 나선 박씨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자신의 딸보다도 어린 허양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박씨는 허양에게 “앞으로 너의 모든 생활을 책임지겠다”며 어르고 달랜 뒤,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갈 곳 없는 처지를 빌미로 성관계를 강요한 후, 자신의 내연녀로 삼은 것.
검찰은 “박씨는 허양과 한 번의 성관계를 가진 뒤, 이후 6년간 내연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부인도 있고 자식도 넷이나 슬하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씨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자세한 정황을 알기 위해 취재진은 지난 3일 동대문구 휘경동에 위치한 해당 선도회를 찾았다.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전화도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수년간 같은 건물을 쓰고 있고, 박씨와 태권도 선후배 관계라는 최모(53)씨는 “H선도회가 문을 닫은 것은 벌써 1년여 전”이라면서 “박씨의 파렴치 행각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최근이지만, 이 일대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라며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최씨에 따르면 당시 나돌았던 소문의 골자는 ‘선도회 사무실에 있는 한 여직원과 박씨가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
최씨는 “이 여직원이 온지 얼마 안돼서 박씨와 관계를 가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그가 허양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며 “이렇게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자 박씨는 사무실을 옮기고 종적을 감췄다”고 전했다.
이에 취재진은 박씨가 1년 전 이사한 것으로 알려진 중랑구 면목동 소재 사무실에 찾아갔지만, 그곳은 가정집이었고 우편물만 배달되는 ‘위장주소’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씨는 박씨의 평소 성격과 몇몇 파렴치한 행각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최씨는 “박씨는 자신이 ‘한국을 빛낸 100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과시하며 거드름을 피우기 일쑤였다”며 “심지어 자신의 직인이 찍힌 ‘위촉장’까지 만들어 5만원을 받고 팔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 근처에 박씨와 안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위촉장을 샀을 것”이라며 “당시 매스컴에 출연해 동네에서 유명했을 뿐 아니라, 모은 돈은 전부 선도 사업에 보태겠다고 말해 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최씨는 “박씨는 태권도 ‘공인 8단’인 것으로 세간에 알려졌는데, 국기원에 따르면 ‘공인 6단’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그의 허위 이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씨의 파렴치한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씨는 회계장부상 급여를 허위기재, 즉 장부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급여 명목의 돈을 빼내기도 했다.
검찰은 “박씨는 허양이 이 선도회에 근무하는 것처럼 꾸며서 허양의 월급 명목으로 공금을 가로챘다”며 “이 돈으로 매달 100~200만원씩 허양에게 생활비를 지급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허양의 존재여부에 대해 선도회 내부 직원들은 알고 있었을까.
수소문 끝에 만난 H선도회 관계자는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경위에 대해 이 관계자는 “여직원이 한 명 부족한데 월급은 계속 나가서 직원들이 의심이 가서 알아보니 내연녀가 있었고, 그에게 월급이 계속 나갔다”면서 “이런 식으로 수년간 수천만 원의 공금을 빼돌린 셈”이라며 혀를 찼다.
그는 박씨의 또 다른 횡령 수법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사단법인은 이사가 7명, 감사가 2명이 돼야 법인허가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H선도회의 총 인원은 8명이었다. 즉 필요한 인원이 9명인데 1명이 부족하자, 허가를 받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을 허위로 채워 넣고, 그 사람의 월급을 조작해 공금 횡령을 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박씨는 자기 선배에게 월급을 주기도 했고, 주차비가 지급된 것처럼 장부를 고쳐 1,000만원을 횡령하기도 했다”며 “심지어 법인 소유의 자동차를 판 돈 1,300만원으로 자신의 생활비와 채무변제 등에 유용하는 등 박씨의 횡령수법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H선도회가 보관하고 있던 정부지원금 중 6,500여만원을 40여 차례에 걸쳐 횡령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박씨를 지난 1일 구속기소했다.
한편 박씨는 실수로 한번 성관계를 가진 뒤 내연관계를 유지한 것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나는 허양의 은인이다’, ‘허양이 먼저 접근해 나를 유혹했다’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미성년자에게 거꾸로 당했다고 주장하는데다 청소년 선도 사업에 쓰일 국고보조금을 횡령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 구속했다”고 밝혔다.

정은혜  kkeunnae@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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