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사형 집행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사형제도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국내에서 사형 집행은 1997년 12월 30일 이후 9년 동안 유예돼 온 상태로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만약 올해에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국제엠네스티가 인정하는 ‘사형제 폐지국’이 된다.
일반적으로 사형은 연말에 집행돼 왔던 것이 관례지만, 올해는 ‘공포의 연말’이 없어 사형수들은 잔뜩 오그라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최근 법무부 일각에서 조만간 사형이 집행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어 다시금 사형수들을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있다.
이에 유영철을 포함한 몇몇 유명(?) 사형수들은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그 근황을 취재해 보았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집행 대기 중인 사형수는 63명이다. 이들은 서울구치소 30명, 부산구치소 9명, 대구구치소 8명, 대전구치소 7명, 광주구치소 8명 등 분산 수감돼 있고, 육군교도소에도 1명이 있다.
여기에 지난 11일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에게 항소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되면서 우리나라 사형수는 총 64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의 삶은 높은 구치소 담장에 가려져 있어 온전히 공개된 적이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가 어느 날 갑자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법무부에 따르면 64명의 사형수들은 공통된 죄목을 달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살인범이라는 점이다.
또 범행수법도 매우 ‘잔악무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범죄유형은 살인 28명, 강도살인 23명, 유괴살인 5명, 강간살인 3명, 존속살인 2명, 방화치사 2명 등이다.
취재진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몇몇 사형수들의 옥중 심경 및 수감 생활을 들여다보기 위해 많은 주변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교화활동 노력을 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임원들과 각 구치소 담당 교도관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최근 사형수들에 대해 “머지않아 사형이 집행될 것 같아 많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같다”고 전했다.
사형 집행 논란에 다시금 불을 지핀 장본인은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37)이다.
그는 2003년 9월부터 10여개월 동안 여성과 부유층 노인 등 20명을 연쇄적으로 살인했다. 특히 그는 이전 연쇄살인범들과 달리 범죄영화와 신문 스크랩 등을 통해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피냄새를 맡으며 희열을 느끼고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유영철 “자식생각하면 살고 싶다”
지난 2005년 6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 수감 이후 줄곧 독방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위원장과 장석홍 신부(서울구치소 담당)는 “유영철은 예나 지금이나 외부인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다른 사형수들에 의해 소식을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신부에 따르면 유영철은 예나 지금이나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최근 모 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유영철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죽음 앞에 거의 ‘자포자기’ 수준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장 신부는 “그러나 자식을 생각할 때만큼은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전해 들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유영철은 친하게 지내는 재소자들이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독방을 쓰고 바깥에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왕따’를 당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 교도관은 “이곳에서는 재소자들끼리 범행에 대한 등급을 나누는데, 유영철은 워낙 범행이 잔혹해 다른 재소자들도 무서워하고 적대적이다”라며 “게다가 최근 사형 집행설이 나돌자 유영철에게 더 불똥이 튀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유영철은 신문도 꼼꼼히 읽고, ‘독서광’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애정소설이나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로맨스를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영철과 ‘닮은꼴 연쇄살인범’으로 비교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남규(37)도 대표적인 사형수 가운데 한명이다.
그는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렸던 서울 서남부 일대 부녀자 살해 사건의 용의자다. 잔악무도하게 살해했던 봉천동 세 자매 피습 사건을 포함, 2년간 5명을 살해하고 8명을 중태에 빠뜨렸다.
정남규는 아직 사형이 최종 확정되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 11일 항소심서 사형선고가 마무리됨에 따라 세간에서는 그를 사실상 ‘사형수’로 취급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그는 지난해 말 서울고법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부자를 더 죽이지 못해 안타깝다”, “빨리 죽여 달라”는 등의 발언으로 사형 집행을 부채질, ‘사형집행 대상 0순위’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변론을 맡았던 박경훈 변호사는 “정남규는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라며 “말로는 죽여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실제론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남규 “솔직히 죽음 두렵다”
최근까지 정남규와 접촉했던 박 변호사에 따르면 그의 현재 심경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내가 저지른 행동에 반성이나 후회는 없다’, ‘잘못했다는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이내 안색이 변하며 “사형? 아, 무서워, 무섭고 말고”라며 고개를 내젓기도 한다는 것.
그렇다면 그의 수감생활은 어떨까.
담당 교도관에 따르면 정남규는 비교적 얌전하게 지내고 있으며 다른 재소자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원래 체구가 큰 편은 아니지만, 최근 부쩍 야위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면회는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한 두 차례 왔다갔으며, 편지 왕래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영철과 비교되는 연쇄살인범은 또 있다. 사형수 정두영(34)이다.
유영철은 교도소 수감 당시, 정두영 사건 관련 기사를 접하고 모방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현재까지 ‘판박이 살인범’으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10개월여 간 부산 일대의 고급 주택가를 돌며 9명을 살해, 8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의 범행 동기는 동거녀와 함께 살 자금 마련. 그는 강도행각으로 목표자금 10억원 중 3억원을 모았지만, 첫 범행 장소였던 주택에 재침입하다가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는 현재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이며, 건강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이른바 ‘막가파’ 사건의 주범인 최정수(33)는 납치살인극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는 ‘지존파’를 모방한 폭력조직을 만든 것으로 드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체포 당시 뉘우침 없는 태연한 모습을 보였던 그는 현재 피해자의 가족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화위원은 “그는 자작시를 쓰고, 종이건반으로 피아노를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22세에 사형을 선고받아, 올해로 11년 째 복역 중이다.
1992년 사형이 확정된 원모씨는 현재 사형수 신분으로 14년 2개월을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인이 한 종교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 한다는 이유로 해당 종교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을 사망하게 했다.
유일하게 군법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은 수감자도 있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실패에 고민하던 중 상관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게 되자 동료 사병에게 총기를 난사, 3명을 살해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군인에 대한 사형 집행은 1985년 9월 이후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1994년 재산상속을 받기 위해 부모를 죽인 사형수, 1996년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사건의 주범격인 사형수 등이 있다.
담당 구치소 관계자들은 수감돼 있는 사형수들의 근황 및 건강상태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픈 데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다른 재소자들과도 잘 어울리고 있다”는 짧은 답변만을 내놓았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사형 집행설에 대한 이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함구했다.
한편, 사형집행 논란에 대해 법무부는 “아직 사형 집행은 검토 중에 있을 뿐,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고 면밀히 검토, 올해 안에 발표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성향으로 보아, 아무래도 검토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유영철, 정남규 “빨리 죽여다오”
최근 유영철의 사형 집행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다른 60여명의 사형수들의 반응 및 심경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담당 교도관들에 따르면 2005년 6월 유영철에게 사형이 확정된 이후, 사형수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 최근 정남규도 항소심에서 사형이 선고, “이들을 빨리 사형시키라”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대다수의 사형수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유영철과 정남규가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1년만 더 버티면 사실상 사형이 폐지될 수 있는데, 그들의 개념 없는 행동으로 사형집행이 서둘러진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들을 사형집행 하기 전, 기존 사형수들부터 집행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물론 ‘사형집행은 사형선고를 받은 순서대로 한다’라는 특별한 규정은 없다. 하지만 지난 1997년 23명을 사형 집행했을 때처럼 사형선고를 받은 순서대로 집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60여명의 사형수들을 떨게 하고 있다.
일부 사형수들은 사형집행 논란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고 있지 않는 눈치다. 9년 동안 꾸준히 사형집행 논란이 있어왔지만 결국 제자리인 것처럼, 이번에도 해프닝으로 그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수십 명의 사형수들과 접촉, 그들의 교정에 힘쓰고 있는 한 교화위원은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할 때까지는 사형이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며 “어차피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금은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은혜 kkeunnae@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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