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주 로비의혹’ 사건으로 권노갑 민주당 전고문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DJ 3인방’의 행보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DJ 정부 시절 신문의 정치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권노갑, 박지원, 임동원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른바 당시 ‘정치 거물’로 불리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권노갑 민주당 전고문은 10여 개월 남은 출소일만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달 여 전 망막합병증으로 인해 서울 대치동 소재의 한 병원에서 망막 레이저 수술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지원 전문광부장관은 직접 만나본 결과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녹내장, 안압 등 안질환으로 계속 고생하고 있으며, 조만간 다시 입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동원 전국정원장은 박씨와 마찬가지로 녹내장 등 안과질환으로 고생한 바 있지만, 현재는 세종연구소에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노갑 10개월 후 출소
지난 국민의 정부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실세 권노갑(78) 민주당 전 고문. 하지만 지금은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지 3년여가 지났다.
권씨는 지난 2004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150억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당시 서울구치소에 머물다가 현재는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구속 당시 “나는 무죄”라며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권씨는 현재 무덤덤하게 10여 개월 남은 출소일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성민 비서관과 권씨의 부인 박현숙씨는 매주 금요일마다 권씨를 찾는다.
문 비서관에 따르면 수감 당시 당뇨합병 증세로 고생하던 권씨의 요즘 건강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5kg 남짓 체중이 빠졌다. 그의 수척한 모습은 최근 김흥주 로비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에 기소된 한광옥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혐의와 무관하지 않다.
한씨는 1999년 권씨에게 사무실을 마련해주기 위해 김씨와 부적절한 청탁과 돈거래를 했다는 혐의가 포착돼 검찰조사를 받았으나 불구속 기소됐다. 권씨는 서울 마포구에 50평 규모의 개인 사무실을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한씨가 권씨의 사무실을 김씨를 통해 사실상 임차한 뒤, 동교동계 소속 정치인들의 공동사무실로 쓰게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언론보도에 대해 권씨의 아내 박씨는 매우 심기가 불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남편이 수감 중이라는 이유로 마포사무실 관련 보도에 대해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기사화하는 것은 남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면서 언론의 보도에 반감을 드러냈다고 문 비서관은 전했다.
이어 문 비서관은 “이번 사건으로 권씨가 또 다시 언론의 도마에 오르면서 그를 찾는 면회객들도 다소 발길이 끊긴 듯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동안 권씨를 찾은 면회객 중에는 임채정 국회의장을 비롯, 정대철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등 현 여권의 고위인사들은 물론 민주당 한화갑 전대표 등 국민의 정부 시절 인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요즘 시기가 시기인 만큼 면회를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다.
권씨의 측근인 권모씨는 “신년 인사를 드리러 권노갑씨를 찾아뵈려고 했지만, 괜한 구설수에 오를까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며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항간에는 얼마 전 DJ가 권씨의 면회를 다녀왔다는 소문도 있다. 이에 대해 DJ 비서관인 최경환씨는 “절대 그런 일 없다”며 소문을 일축했다.
권씨가 수척해진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중순 망막 레이저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뇨합병증으로 인해 망막이 손상돼 수술을 받았다.
권씨의 수술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누네병원 홍영재 병원장이 맡았다. 홍 원장은 안질환 치료 전문 권위자로 연세대학교 의대 안과교수를 지내다 지난해 12월 4일 개인병원을 개원했다.
홍 원장은 “당뇨병을 앓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뇨병성 망막증이 생길 확률은 올라간다”며 “권씨의 경우 고령의 나이에 장기간 지병인 당뇨합병증을 앓다보니 망막 손상이 심해 수술을 하게 됐다”고 수술 경위를 설명했다.
고령의 나이에 시력 감퇴, 게다가 지병인 당뇨와 불면증도 여전히 앓고 있지만, 권씨의 독서열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런 까닭에 권씨를 찾는 면회객들은 반드시 책 2~3권을 챙겨오는 편이라고 한다.
수감 초기에는 황석영의 삼국지와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본 통일 과정을 그린 대하소설 ‘대망’을 독파했다. 2004년부터는 영어 원서를 읽기 시작해 올브라이트의 전 미 국무장관의 전기인 ‘Madam Secretary’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에게 보낸 편지집을 손에 들었다. 최근에는 빌 클린턴과 관련된 모든 원문 서적과 뉴스위크, 코리아헤럴드 등을 즐겨 본다고 한다.
권씨는 동시통역사 자격시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8월 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따르면 권씨는 ‘출소 후 동시통역사 자격시험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나 “권씨는 실제로 동시통역을 하겠다는 것이라 자신이 여전히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문 비서관은 “권씨는 동시통역뿐 아니라 번역, 회화 등 외국어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며 “출소 후 계획에 대해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뭔가 하긴 하지 않겠느냐”는 아리송한 말을 전하기도 했다.
박지원 눈 많이 호전된 듯
8·15 대통령 특별 사면·복권과 관련, 사실상 정치적으로 ‘복권’된 박지원(65) 전문광부장관.
지난해 9월 28일 대법원은 박씨에 대해 검찰 상고를 기각했다. 따라서 가석방 및 사면복권 조처 등이 아직 남아 있지만, 시간문제일 뿐 박씨의 ‘사면복권’은 기정사실로 간주되고 있는 분위기다.
박씨는 2003년 6월 대북송금 특검에 의해 직권남용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되는 비운을 겪었다. 그해 9월에는 ‘현대비자금 150억원 뇌물수수’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박씨는 이후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 혐의 등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뇌물수수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알선수재 등의 혐의가 인정돼 법정 구속됐다. 구속 이후 박씨는 순탄치 않은 수감생활을 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눈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 출장 치료를 받는 등 구속집행정지를 반복, ‘보석-구속’ 과정을 여러 번 거친 까닭이다. 수감 당시 이미 한쪽 눈을 녹내장으로 잃고 의안을 한 상태였던 박씨지만, 최근 그의 눈 상태는 예전보다 많이 호전됐다고 한다.
박씨의 한 측근에 따르면 박씨는 나머지 눈마저 녹내장 증상 악화를 우려, 현재도 계속 치료 중이다. 실제로 박씨는 지난 18일 오전 8시 30분에 세브란스 병원 망막센터에서 예약 진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 간호사는 “박씨는 3층에서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담당의사와 1:1로 진료를 받고 갔다”며 “그는 1층 중앙통로로 다니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현재 박씨의 눈 상태는 어떨까.
그를 담당하고 있는 세브란스 안과 전문(망막, 유리체, 백내장 담당) 권오웅 교수는 “박씨의 눈이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다음 주에 다시 입원하게 될 예정”이라며 “피검사 및 예전에 했던 녹내장 수술 경과를 다시 한번 자세히 검사해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박씨의 한 주변인사에 따르면 박씨는 체력관리를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 동네에서 산책 또는 속보로 걷는 정도다. 실제로 그는 수감 당시 20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도 매일 속보로 걷는 운동을 거르지 않아 ‘운동광’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또 다른 인사는 “박씨는 최근 집과 병원만을 오가는데, 병원을 가지 않는 날에도 하루에 두 번 이상 외출,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인사는 “신년 이후 박씨의 집에 안부 인사를 오는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지난 13일 열린우리당 김근택 의장도 왔다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18일 오후 8시께 박씨의 자택 여의도 소재 아파트로 향했다. 이 시각 박씨의 집은 비어있었다.
이 아파트의 경비원인 김모(69)씨는 “박씨는 적어도 오후 10시 30분은 넘어야 들어온다”며 “매일 그 시간쯤 귀가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열린우리당 김 의장이 방문한 사실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경비원 김씨는 “보통 각계 인사들이 방문하면 그렇게 오래 있는 편은 아니다”라며 “보통 20~30분 정도 머물고, 길게는 1시간 전후 정도 머물다 간다”고 말했다.
밤 10시 40분이 되자 박지원씨가 아내와 함께 나타났다. 박씨는 오리털 잠바에 면바지, 하늘색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편한 차림이었다. 아내는 털모자가 달린 파카를 입고 모자를 쓴 상태였다.
기자는 박씨 부부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후, 대화를 시도했다.
기자를 보자 이들은 당황하며 “여긴 왜 왔느냐. 할 말 없다”며 고개를 벽 쪽으로 돌렸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 ‘건강은 어떠냐’는 등의 가벼운 질문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내는 집에 들어간 후 화상인터폰을 통해 “남편은 잘 지내고 있다. 더 이상 할 말 없으니 그만 돌아가 달라”며 퉁명스럽게 말한 뒤 인터폰을 내려놓았다.
임동원 언론 접촉 피해
임동원(73) 전 국정원장은 박씨와 함께 ‘양김’(김대중-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유일한 남측 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 임씨는 치밀한 논리로 설득하는 ‘전략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세종연구소에서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씨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임씨는 2004년 11월 27일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임씨와 접촉하기 위해 기자는 지난 17일 오후 성남 시흥동에 위치한 세종연구소를 찾았다. 그러나 임씨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임씨는 자리에 없었다.
임씨의 근황에 대해서는 세종연구소 측이 철저히 함구하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임씨는 칠순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한 상태라는 것과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세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여러 번 접촉을 시도한 기자에게 “임씨는 매일 출근한다. 다만 요즘 많이 바쁘셔서 사무실에 안 계신다. 절대 언론을 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임씨의 수감 생활 및 과거 행적을 알기 위해 그의 변론을 맡았던 나천수 변호사를 찾았으나, 그 역시 해외로 유학을 가 만날 수 없었다.
임씨는 작년 2월 협심증, 심근경색, 당뇨 등 순환기 계통, 녹내장, 안압과 같은 눈 질환을 앓아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서울대 병원에 다니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임씨가 마지막으로 치료받은 날짜는 지난해 2월 25일이다.
한편 임씨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나 2004년 5월 사면복권됐다. 현재는 국정원 안기부 도청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은혜 kkeunnae@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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