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계 대부 A씨 교도소에 마약 반입
조폭계 대부 A씨 교도소에 마약 반입
  • 윤지환 
  • 입력 2007-02-20 15:55
  • 승인 2007.02.20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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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폭로단지사건의 주인공 강병한, 교도소 비리

베일에 가려진 조폭 두목의 수감생활, 정치인들과 조폭간의 검은 커넥션, 마약 교도소 반입 사건, 88년 전대미문의 교도소 폭동 사건. 이 모든 것들을 움켜쥔 채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강병한(45)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강씨는 2001년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망언에 항의하며 독립문 앞에서 25명의 동생들과 함께 단지(斷指)해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그는 과거 공주교도소에서 OOO파 두목 A씨와 함께 복역한 적이 있다. 그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당시 A씨는 교도소 내 비리의 중심에 서 있었고, 이로 인해 교도소 내 마약 반입 사건과 공주교도소 인질난동극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범죄자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교도소가 정치인의 돈과 조폭의 폭력으로 이루어진 무법천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씨는 최근 자전적 소설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본지는 그가 공주교도소 수감 당시 있었던 사건을 기록한 원고 일부를 입수, 그의 원고가 서적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개되기에 앞서 이를 언론 최초로 공개한다.


본지가 입수한 강씨의 원고는 자신이 공주교도소에서 복역할 당시 교도소 내에 만연한 비리와 그 중심에 서 있던 A씨의 생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그는 A씨에 대해 ‘유배지의 황제’라고 불릴 정도로 교도관과 죄수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수감생활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그의 원고에는 최근 ‘권상우 협박’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태촌씨에 대해서도 언급돼 있다.

강씨는 원고를 통해 “김씨가 교도관들에게 뇌물을 주고 소내 생활에 편의를 도모했다는 이유로 다시 구속되기는 했으나 그것이 구속사유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이른바 ‘범털’이라 불리는 많은 정치인들도 교도소 내에서 교도소 보안과장에게 금전을 쥐어주고 그 대가로 각종 편의를 제공받았다”고 꼬집었다.

강씨의 이력을 보면 화려하다 못해 섬뜩하다.

그는 20여년간 조폭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80년대 초 안양교도소를 시작으로 수원 대전 원주 대구 청주 공주 마산 청송 광주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이중 안양 대구 대전 교도소는 두 번씩이나 드나들었다. 이 정도면 말 그대로 교도소를 안방 드나들듯 한 것이다.

그런 그가 그의 원고를 통해 울분을 토하며 폭로하고 있는 것은 권력의 비리도 조폭의 해악도 아닌 교도소 내의 총체적인 비리다.

그가 이처럼 교도소의 비리를 고발하고 나선 데는 자신이 직접 겪은 뼈아픈 경험 때문이다.

원고에 따르면 강씨는 88올림픽이 막 시작될 무렵, 공주교도소에서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인질난동극을 벌여 교정당국과 법무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그가 여자 죄수들이 있는 여사동으로 침입해 여교도관과 여죄수를 인질로 삼고 농성을 벌
였다는 점이다.

그가 원고를 통해 폭로한 이 사건의 전모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사실들로 가득하다.


교도소 생활
그가 밝히는 바에 따르면 인질난동극의 발단은 교도소 내에 만연한 온갖 부조리들에 있다.

그가 소내에서 가까이 지냈던 이들은 김용수와 장진석으로 장씨는 서진룸살롱 사건의 주인공이고 김씨는 청주지역을 주름잡던 건달이었다.

그는 교도소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이 두 사람과 친한 덕분에 비교적 편한 수감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도소가 ‘그들만의 세상’은 아니었다. 당시 수감자들을 장악하고 있던 인물이 바로 A씨였기 때문이다.

강씨에 따르면 A씨는 그 이름만으로도 소내의 ‘총반장’으로 군림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총반장은 ‘회장’이라는 존칭으로
불리며 교도소 안의 황제같은 존재라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A씨가 군림하던 이때 교도소는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무법천지 그 자체였다. 담배는 기본이고 매일 밤 이 방 저 방에서 술판이
벌어지는가하면 심지어 포커 화투 등 도박판까지 개장되기 일쑤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에 대해 강씨는 이렇게 말한다.

“밤에는 무법천지였다. 재소자들은 밤이 되면 각 방문을 열고 나와 사동 전체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나도 감방열쇠를 50여개씩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교도관과 A씨 묵인 하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교도소는 미결사 기결사를 가릴 것 없이 돈과 폭력이 지배한다. 교도관이 왕이라면 돈은 좌의정이고 폭력은 우의정이라 할 수 있다”며 “교도소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말에 수긍을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조폭들 감옥서 담배사업
그에 따르면 이런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편해지고 싶은 속칭 ‘범털’들은 풍족한 금전을 빌미로 직원들의 비호 속에 감옥생활이라고 생각조차 하기 힘든 특혜를 누린다.

또 이 같은 묵인 하에 조폭들은 소내에서 아예 담배 사업을 하기도 한다.

강씨는 이에 대해 “담배는 교도소 내에 반입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는 물품이다”라며 “이런 일은 교도관의 묵인 없이는 절대 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폭들은 담배를 한 보루에 10만원씩 주고 한 번에 수십 보루씩 교도소 안으로 반입했다. 담배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 조폭들은 재소자들에게 담배 한갑에 3만원씩을 받고 팔았다. 이렇게 벌어들인 이익금은 교도관들의 접대 등과 같은 각종 자금으로 쓰였다.

술과 담배가 반입되던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강씨는 이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마약이 반입되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A씨는 인질난동극의 타깃
그는 마약 때문에 인질난동극이 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A씨가 수발로 데리고 있는 윤모씨가 마약에 취해 사건을 일으킨 것이 난동극의 불씨가 됐다는 것이다.

강씨는 “나는 도박과 마약을 경멸한다”며 “곱상하게 생긴 윤씨는 마약을 자주 했었는데, 그가 마약에 취해 취사장의 커다란 기름솥 안으로 뛰어 들어 가면서 사건이 불거졌다”고 전했다.

강씨에 따르면 당시 A씨로 인해 마약이 들어오게 됐고 그로 인해 윤씨가 마약을 한다는 소문이 소내에 파다했다는 것이다.
윤씨가 기름솥에 뛰어든 것은 이런 소문으로 소내가 어수선해졌을 때였다.

강씨는 “이 사건이 터지자 A씨는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다른 사람들을 차례로 불러 사건의 진상을 캐물으며 몸을 사렸다”고 원고에 적고 있다.

이와 함께 교도소 측은 이처럼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쉬쉬하며 사건을 흐지부지 넘기기에 바빴다.

이에 더 이상 참지 못한 강씨는 뜻이 맞는 7명의 재소자와 함께 취사장을 점거한 뒤 ‘윤씨 사건의 진상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소내의 비리를 척결하라’고 교도소 당국에 요구했다. 그가 이렇게 한 목적은 A씨를 둘러싼 각종 비리를 당국에 알리고 소내에서 마약반입 등 안하무인격인 그의 불법행위를 뿌리 뽑기 위한 것이었다.

강씨가 취사장을 접수하는 바람에 식사 준비를 할 수 없었던 교도소 측은 이날 저녁식사를 대전교도소에서 긴급지원 받아야 했다.

교도소 측이 결국 강씨의 요구를 들어 주기로 하자 그는 비로소 농성을 풀었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교정 당국은 투항한 그를 즉시 붙잡아 쇠사슬에 묶어 독방에 가둬버렸던 것이다.


여죄수 사동으로 침입
그는 이때 쇠사슬에 묶인 살이 썩어 들어가는 등 끔찍한 고통을 맛보았으나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또다시 농성을 계획한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악의 근원인 A씨를 도려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은밀한 계획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그러나 그는 농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만 교도관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교도관과 강씨 사이에 추격적이 벌어지자 교도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같이 일을 꾸몄던 한모씨와 함께 도망치던 그는 다급한 나머지 지붕을 건너뛰어 여죄수들로 가득한 여사동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에 긴급 출동해 여사동을 포위한 경비 교도대는 여사동 안으로 가스탄을 마구 쏘아댔다. 여사동에는 여죄수가 낳은 3세 미만의 아이를 비롯해 젖먹이 아기까지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로 인해 여사동은 마치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처럼 변해버렸다.

여사동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가운데 그는 여죄수와 여교도관을 인질로 잡고 기자들을 불러줄 것과 교도소 정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교도대에 잡혀 두개골이 골절되도록 구타당한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강씨의 이런 노력 덕분에 이 사건은 마침내 바깥으로 알려졌고 교도소장이 경질됨과 동시에 공주교도소 내 병폐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A씨 역시 이 사건 때문에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당시 한 죄수의 어처구니없는 인질난동극으로 알려졌던 사건 속에 이같은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강씨의 이 원고 서두에는 김주환 전서울구치소장의 추천사가 함께 실려 있어 그의 글에 신빙성을 실어주고 있다.

김 전소장은 전한국교정협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한 인물이다.

김 전소장은 추천의 말에서 “내가 과장으로 임지를 돌 때 만났던 강병한은 사고뭉치였다. 거칠고 독기로 외연과 내연을 뿜어 대는 재소자들을 단숨에 휘어잡고 직원들까지 마음대로 어떻게 해 보려 하던 폭풍의 사내였다”고 강씨를 회고했다.

이어 “그런 그가 이번에 책을 냈다. 교정직렬의 은퇴자로 교도소내의 사정이 속속들이 들추어지는 것에 당혹스럽고 놀라기도 했으나 이 땅의 어두운 그림자였던 시대의 업보라 여기며 그가 쓴 넌픽션이 세상에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면서 “그리고 기도 한다. 이 땅에 어두운 폭력사가 없어지기를…”이라고 마무리 짓고 있다.



#“교도소에 조폭대부 A씨 전용 테니스장 있었다”

강병한씨는 A씨의 생활에 대해 “A씨는 교도소측의 배려로 취사장 안에 딸린 반지하 방을 개인방으로 사용했다”며 “뿐만 아니라 여사동과 독방 사동 사이에 있는 테니스장을 독점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그는 “A씨는 취사장에서 소금을 50가마씩 갖다 테니스장에 뿌리기도 했다”며 “그 테니스장은 문익환 목사가 운동을 하던 테니스장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가 다시 청주로 이감됐을 때 그곳에 A씨가 와 있었다. 이때 공주에서의 악연을 안 교도소 측은 강씨를 다시 청송으로 이감시켰다.

강씨는 “이때 A씨는 사람을 나에게 보내와 ‘이미 모든 것을 용서했으니 그곳에서 생활 잘 하라’고 말을 전했다”며 “나 역시 A씨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그저 그 또한 잘 살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윤지환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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