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도 없고 게임기도 없던 아주 오랜 옛날 그 시절, 놀 거라고는 놀음이나 연애질 밖에 없었으니….” 고수의 맛깔스러운 가락으로 시작되는 이번 공연은 노는 걸 유난히도 좋아하는 신라 최고의 미녀 선화 공주와 연애고수 서동의 첫 만남부터 관객들의 흥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그 시대의 클럽에서 셔플(shuffle)댄스를 추며 서로에게 작업을 거는 두 사람의 모습이 공연 시작 10분도 채 되지 않아 관객들을 자지러뜨리기 때문. 또 이들을 이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종 순이·남이의 코믹한 대사와 화려한 댄스 실력에 관객들은 저절로 몸을 들썩인다. 이처럼 연극 ‘밀당의 탄생’은 퓨전 사극답게 구와 신의 적절한 조화를 꾀한 작품이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하곤 배우들이 한복을 입은 채 셔플 댄스를 추는가 하면 공연 내내 ‘카톡’, ‘더치페이’ 등 현대사회 단어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사극’이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관객들에게 깨알 같은 웃음을 전하는 ‘밀당의 탄생’만의 매력이다.

연극 ‘밀당의 탄생’ 속 선화 공주는 한 마디로 ‘강남 스타일’의 표본이다. 선화 공주야 말로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기 때문. 그녀는 정혼을 약속한 해명왕자 앞에선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마냥 행동하다가도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반전을 지닌 매력적인 여성이다. 공주 신분을 감춘 채 클럽을 찾은 남자들과 헌팅을 하기도 하고 신데렐라마냥 꽃신을 한 짝씩 벗어던지기도 한다. 서동 도령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의 속을 훤히 꾀고 있는 듯한 그의 화려한 밀당 기술은 선화 공주는 물론 관객들 까지 넋을 놓게 만든다. 선화 공주의 정혼남으로 등장하는 해명도령 역시 이번 공연의 웃음 포인트다. 능력 좋고 외모까지 완벽한 그 시대 최고의 ‘킹카’로 등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 그는 21세기 기준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외모에 꽁한 성격까지 지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이밖에도 밀당의 진수를 보여주는 선화·서동과 달리 시종 남이와 순이의 지고지순한 사랑도 눈길을 끈다. 이처럼 연극 ‘밀당의 탄생’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뮤지컬 ‘더 콘보이쇼 - ATOM’에서 호흡을 맞췄던 강인영과 육현욱의 화려한 탭댄스 실력과 판소리를 배운 경험 덕에 맛깔 나는 고수 역을 완벽히 소화해내는 장지영은 ‘밀당의 탄생’ 속 또 하나의 볼거리다. 이밖에도 에녹의 능청스러움과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영주의 열연이 극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는 평이다. 대학로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연 코믹연애사극 ‘밀당의 탄생’은 내년 2월 11일까지 PMC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유수정 기자 crystal0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