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이우림 시집 《상형문자로 걷다》
[신간안내] 이우림 시집 《상형문자로 걷다》
  • 김선영 기자
  • 입력 2012-11-13 14:45
  • 승인 2012.11.13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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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늬를 반추하다

시는 우리가 인식하는 자연대상물에서 너무도 멀리 와 있다. 시인 자신의 감수성, 상처, 감각의 외상들은 언어의 일상성에서 숨겨진 감각을 쉬지 않고 건드릴 때, 그 속에 내재된 무수한 이미지들을 시인 자신이 증식시키기도 한다. 그 언어의 확실성 안에서 시인의 세계관과 포스트모던의 혁명도 가져올 수 있다. 사실 시인들이 현실적 시어 찾기에 많은 고민을 하지만 독자의 세계는 시인들이 인정할 수 없는 너무 먼 곳에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시에는 시인의 중심이 있듯 언어로 틀을 짠 시인의 시적 자아는 결국 독자 안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참된 언어의 조탁이란 무의식적이고 선험적인 경험에서 보이지 않는 본질을 응시해야 한다. 자연의 광대무변한 세계는 우리의 삶 속에서 존재의 뒤틀림과 낯설게 하기로 시인의 시적 자아에서 시니피에로 발화(시니피앙)하는 것이다. 

  이우림의 시 「끈」은 소의 생을 빌려 인간의 생을 치환시키고 있다. 시가 탄생하는 우여곡절의 무수한 뒤틀림은 시인이 가지는 운명이며 새롭고 낯선 세계에 대한 감각적 체험의 세계를 읽어내기에 충분하다. ‘끈’의 행간 사이사이 시인은 마치 선문답을 하듯 예측을 허물고 있다.

황소 한 마리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골수를 다 뽑아먹고도
부족한 것일까 저
멈출 수 없는 되새김질의 습관은
제 긴 혀를 노끈처럼 씹고 있다
갈기갈기 찢긴 혀가 찾는 것은
먼 기억의 여물
언 땅 쪼개고 나오는 씨앗의 탯줄이다
섶을 푼다
아, 자궁이 움찔하도록 젖을 빨아라
동아줄 같은 질긴 기억의 숨이 옆으로 눕는다
껌벅껌벅. 밭갈이 저만치 두고
눈 큰 암소 곁에서 말뚝만
들이받던 뿔숨이
정지된 시간과 합류한다
질기고 질긴 인연
쇠심줄보다 더 질긴 기억의 유산들은
코뚜레를 영정으로 앉힌다
끝까지 등골을 다 빨아먹고 가는
저 황소 한 마리
-「끈」 전문

  시는 논리적 언술이 아니다. 상식의 거부는 새로운 의미의 도출이며 선험적 감각으로 삶의 비밀을 풀어낸다. “하늘”과 “골수” 사이의 필연적 관계성은 “먼 기억의 여물”에서 “질긴 기억의 숨”으로 시의 전개를 펼치고 있다. “소”는 걸림이 없는 시인의 자아이며 무한한 자유에로의 갈망이다. “자궁”은 “정지된 시간”과의 합류를 통해서 “영정”으로 매듭지어진다.

저자 이우림  펴낸곳 문학의전당

김선영 기자 ah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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