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상대적으로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웠던 이광재씨는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일들이 드러나면서 낙마 일보 직전에 몰렸다.대통령의 측근들에게는 많은 권력이 주어지지만 그 만큼 비리의 유혹에 노출된다. 문제는 대통령 측근들의 이런 추문들이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대통령의 권위를 실추시키면서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개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원수의 국정운영에까지 결정적인 타격을 입혀 왔던 대통령 측근들의 전횡을 살펴 본다.청와대 비서실 정원은 현재 모두 498명이지만 이들이 모두 대통령의 ‘측근’은 아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권에서 함께 일하다 데려 온 사람은 전체 청와대 비서실 직원의 3분의 1 정도도 채 안된다. 나머지는 행정부처 등에서 파견됐거나 오래 전부터 청와대에서 일해 온 ‘토박이’들이다. 따라서 청와대 사람 모두를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분류할 수는 없다.
출신성분따라 역할 달라
청와대 사람들 가운데서도 출신 성분이 있는 셈인데,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사이에 반목이 없을 수 없다. 관료 출신들은 정치권에서 들어 온 참모들을 ‘컨텐츠’가 모자란다고 아래로 본다. 반면, 정치권에서 입성한 이들은 관료 출신들을 개혁성 없는 수구세력 정도로 취급한다. 어쨌든 청와대에도 대통령의 측근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지만 이광재 의원처럼 청와대 밖의 정치권 등에서 활동하면서 정권 유지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측근들이 많다.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진짜 대통령 측근의 상당수는 정치권에서 정권을 보호하고 지원사격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수 있는 최소한의 측근들은 청와대에 근무한다.대통령 측근들이 권력을 나눠 가지다 보니 그들 간의 파워게임도 없을 수 없다. 국민의 정부 시절, 가신 그룹을 대표하는 한화갑씨, 정권쟁취를 위해 영입한 박지원씨, 정권을 잡은 뒤 발탁한 김중권씨가 3각 관계를 형성해 서로 치고받는 다툼을 벌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대통령의 측근들은 정권의 후계자를 낙점하는 과정에서 항상 치열한 이전투구를 벌여 왔다. 그 게임에서 성공한 측근들은 대를 이어 권력을 누리지만 실패한 측근들은 흔적도 없이 권력에서 사라진다.
2인자 명암 엇갈려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 모두 측근들 때문에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 심지어 측근들에 의해 목숨을 잃기도 하고, 탄핵을 당한 경우도 있다. 물론, 그만큼 측근들을 신뢰하고 많은 일을 맡긴 결과다.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박정희의 사람들’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8년 동안 권좌에 있으면서 많은 측근들을 거느렸지만 결코 ‘2인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누군가 2인자로 부상하려 하면 가차없이 내려앉히고 다른 사람을 중용하는 이른바 ‘분할통치(divide and rule)’에 매우 능했다.그런 까닭에 김종필은 ‘자의반 타의반’ 외유를 떠나야 했고, 김형욱은 해외에서 실종됐다. 당시 권세를 누렸던 이후락·박종규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2인자에는 오르지 못했다. 1979년 10·26 현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쓰러진 것은 분할통치의 반작용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간 2인자 다툼의 결정판이 10·26 궁정동 총격 사건이란 해석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최측근은 단연 장세동씨다. 신군부의 주축이었던 대령 출신 그룹이 있었지만 전 대통령이 절대 신뢰한 인물은 장세동씨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5공화국에서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거쳤고, 지난 2002년 대선에는 직접 출마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출마를 말렸지만 나이가 드니 내 말도 안듣더라”고 탄식했는데, 이 말은 곧 그 이전의 두 사람 관계를 짐작케 한다.장세동씨 외에 5공 시절 전두환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는 허화평·허문도씨 등 ‘2허’, 박세직·박희도·박준병씨 등 ‘3박’ 등이 있었는데 대부분 12·12의 공신인 군 출신이었다.물론, 전두환 대통령의 최고 핵심 측근은 후계자였던 노태우씨였지만, 결국은 최측근에게 권력을 넘겨 준 후 백담사로 ‘귀양’을 가는 아픔을 겪었다.
박철언,‘리틀 프레지던트’별칭
노태우 대통령은 처고종사촌인 박철언씨에게 절대적인 힘을 줬다. ‘소(小)통령’이란 말이 YS 때의 김현철, DJ 때의 박지원, 지금의 문재인씨에게 간혹 쓰이고 있지만 그 원조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박철언씨였다. 당시 정치권에서 박철언씨의 별칭은 ‘LP’였는데, 그것은 ‘Little President’의 약칭이었다.박철언씨는 지금 회고록을 쓰고 있다.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이란 가제를 붙인 이 책은 올 7월쯤 출간될 예정이다. 이 회고록엔 1990년대 초반 YS에게 비자금을 전달한 이야기, 3당 합당 비사 등 대통령의 최측근만이 알 수 있는 권부 중심의 생생한 증언들이 담길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정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도 ‘측근정치’를 매우 잘 했던 지도자였다. 차남 현철씨 뿐만 아니라 이른바 ‘상도동계’로 불리는 측근들을 청와대와 행정부, 여당에 골고루 포진시켜 친정체제를 구축, 나라를 이끌었다.특히 문민정부 초기 청와대에 입성한 YS의 측근들은 그야말로 ‘점령군’ 그 자체였다. 김혁규·김무성씨 등 젊은 측근들은 청와대의 민정·사정 라인에 포진해 토호비리를 색출한다며 지방에 나가 지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당시 지방의 공무원과 유지들은 이들을 ‘암행어사’로 부르며 무서워 했다.YS의 측근들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원종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상도동 출신인 그는 YS가 일선 정치권에 있을 때 주로 대 언론 창구를 담당했다. 말하자면 당을 출입하는 기자들과 매일 술먹어 주고, 때로는 고스톱을 함께 치면서 일부러 잃어주는 게 주요 일과였다. 그렇기 때문에 연배가 한참 낮은 기자들에게도 비위를 맞추기 위해 몸을 낮추기 예사였다.
김현철, 소통령으로 군림
그러나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그의 위상은 180도 달라졌다.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지금과 달리 하루에 두번 비서동을 찾아 자유롭게 취재활동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정무수석실에선 매일 아침 10시쯤 출입기자들과의 티 타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원종 수석은 과거 기자들에게 슬슬 기던 일을 복수라도 하듯 매우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 출입기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당 신문사 경영진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 조치를 시켜버린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바람에 기자들도 그를 두려워 했다.그는 아침 티 타임을 매우 유용하게 활용했다.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고급 정보’를 슬쩍 흘려 기자들이 사내 정보보고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대게는 청와대의 방향을 언론에 암시하는 식이었다. 현대그룹 내부에서 ‘왕자의 난’이 벌어졌을 때 그는 기자들이 모인 자리서 정몽헌씨는 깎아내리고 정몽구씨를 추켜세웠다. 기자들은 이 사실을 신문사 고위층에 보고했고, 이후 여론의 흐름은 MK(정몽구)쪽으로 흘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원종 수석과 정몽구씨는 경복고 동문으로 절친한 사이였다.
박지원, 영원한 DJ맨
DJ 시절 대통령의 최측근은 단연 박지원씨였다. DJ가 야당 총재이던 때부터 극진히 보필한 그는 DJ에게서만 임명장을 6번 받았다고 자랑삼아 이야기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야당 시절 대변인 임명장부터 시작해 청와대에서 공보수석, 정책기획수석, 특보, 비서실장 등을 거쳤던 것이다.그는 국민의 정부 임기 말 한 사석에서 지인들이 “DJ의 임기가 끝나면 반드시 사단이 있을테니 터전이 있는 미국으로 미리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고 건의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원한 DJ의 비서실장이다. 자기가 모시는 사람과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비서실장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느냐.” 결국 그는 대북송금 사건 등에 연루돼 구속되는 사단을 당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대통령의 최측근이 한 사람 있었다. 바로 박금옥씨다.
49세의 미혼 여성인 그는 DJ가 야당 생활을 할 때부터 비서실에 근무했고, 집권 후에는 청와대 안 살림을 담당하는 총무비서관을 5년 임기 내내 맡았다. 지금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대를 이어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한 인물도 없지 않다. 지금은 작고한 김윤환 전 의원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전두환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고, 노태우 대통령 때는 정무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YS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해 여당의 실세 대표가 됐다.열린우리당의 문희상 비서실장은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되지만 국민의 정부에서는 DJ의 측근으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노측근 ‘우광재 좌희정’대표적
노무현 대통령은 측근들 때문에 대통령직까지 날릴 뻔 했다. 지난 해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측근비리’였던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지난 해 1월부터 3개월 동안 양길승·이광재·최도술씨 등 측근들이 김진흥 특검팀의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당했다. 당시 측근들의 불법자금 수수와 토지 위장거래 등이 수사 대상이었다.최근 석가탄신일 특사 대상에 포함돼 논란을 일으킨 강금원씨는 노 대통령과 막말을 주고받는 사이로, ‘측근들의 군기 반장’ 역할을 하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일부 언론에서 문재인씨를 참여정부의 ‘소통령’으로 지칭하지만 여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강씨를 ‘사설 부통령’이라고 부른다.또 한 사람의 참여정부 실세 측근은 청와대 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이다. 그는 과거 노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곁에서 묵묵히 도왔다.
노 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고 선거 빚에 쪼들리자 자신이 대구에서 운영하던 횟집을 팔아 봉투째로 건네기도 했다 한다. 이런 인연으로 노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상의하는 인물은 이강철 수석밖에 없다는 말도 있다. 다만 측근들에게 “담배 한 대 달라”며 맞담배를 피운다는 노무현 대통령이지만 그 측근들의 전횡을 단속하는 데는 소홀한 것 같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의 정부 때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참여정부에선 많이 생겼다고 한다. 가령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수석비서관들이 눈을 감고 잔다든지 하는 일 따위다. 아무리 야당 생활을 하면서 고생한 측근들이라 해도 기강해이나 권한남용까지 눈감아 주면 결국 그 부담은 정권으로 돌아갈 것이다.
유제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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