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원전 납품비리는 빙산의 일각 ‘한국판 체르노빌’ 대재앙의 서막”
“영광원전 납품비리는 빙산의 일각 ‘한국판 체르노빌’ 대재앙의 서막”
  • 고동석 기자
  • 입력 2012-11-12 15:31
  • 승인 2012.11.12 15:31
  • 호수 967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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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위조품질검사서 짝퉁부품 납품 영광원전 5‧6호기 가동중단 사태

▲ 납품비리로 5,6호기가 가동 중단된 전남 영광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 제어봉까지 균열된 것으로 밝혀진 3호기까지 중단돼 원전 사상 최악의 가동중단 사태를 맞았다.<뉴시스>
[일요서울|고동석 기자] 이명박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부각됐던 원전수출국이라는 위상이 잇단 한국수력원자력()의납품비리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5일 위조 부품이 사용된 영광5,6호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외부 제보로 드러난 원전 납품 비리는 2003년부터 올해까지 10년 동안 영광 5, 6호기 등 국내 원자력 발전소에 공급된 237개 품목, 7682개 제품의 품질검증서를 위조해 짝퉁 부품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잦은 고장과 마약에 찌든 근무태만은 물론, 끝도 보이지 않는 복마전을 연상케 하는 원전 납품비리는 뿌리 깊은 부정부패가 어디까지 뻗쳐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까지 흘러나오고있다.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원전은 가공할 핵폭탄을 껴안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일각에선 다음 차례의 원전 사고는 우리나라가 될 것이고 연쇄적으로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원자력은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영역이다 보니 원전 건설에서 운영, 안전사고에 이르기까지 내부 관계자들의 폐쇄성과 비밀주의로 오랜 기간 철저하게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원자력 마피아로 부패의 카르텔을 형성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유지해온 원전 비리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한국판 체르노빌의 대재앙은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로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와 경고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잦은 고장을 일으키던 국내 원전들은 언제부턴가 시한폭탄으로 돌변했다. 품질검증서까지 위조한 납품비리로 지난 10년 동안 엉터리 부품이 장착돼 원전이 가동돼 왔는데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납품비리로 불만을 품은 외부 또 다른 원전 부품업자의 제보가 있기 전까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영광원전 5호기 잦은 고장에도 정상가동 

영광원전은 지난달 2일 고장으로 발전이 중지됐다가 정비를 받아 11일만인 지난달 13일 다시 정상 가동됐다. 그러나 이틀 뒤인 15일 오전 1050분에 변압기에 이상이 발생해 출력을 87%로 낮춰 운행했다. 영광원전 측은 전기승압과정(22kv-345kv) 중 변압기 내부의 절연유가 기체화되면서 유중가스 농가도 증가해 출력 감발상태에서 정밀검사를 실시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고장 원인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영광 5·6호기는 짝퉁 부품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지난 11년간 무려 18차례나 고장이 발생해 운행 안전에 의문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원전 측은 이를 무시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규정한 ‘0등급에 해당하는 경미한 사고로 예방 차원에서 정밀 검사를 실시한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특히 영광원전 5호기는 전국 21기의 원전 중 고장 발생 빈도가 다른 것보다 유달리 많았다. 결국 납품비리가 터지고 나서야 잦은 고장의 원인이 품질검증을 제대로 받지 않았던 짝퉁 부품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납품비리로 문제가 된 부품은 퓨즈, 스위치, 다이오드 등 일반 산업용으로도 많이 쓰이는 품목들이다. 수시로 교체하는 소모품이지만 높은 안전등급을 요구하는 설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품질검증서는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납품업체들은 10년 동안 60건의 품질검증서를 허위로 꾸며 위조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사건이 터지기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알고도 눈을 감았던 것인지, 아니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직무를 유기했는지 아직까지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잦은 고장 속에 짝퉁 부품으로 돌아갔던 영광원전 5,6호기가 지난 10년 동안 멀쩡했던 것이 천운이라며 원전 산업 내부의 비밀주의로 방사능 누출사고 있었다고 해도 쉬쉬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비판했다. 

원전 직원 비리 연루가능성 증폭 

짝퉁 부품이 납품된 과정에 한수원 내부 직원이 개입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증폭이 되고 있다. 온갖 비리 백화점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줬던 한수원 임직원들의 납품비리가 적발된 지 불과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납품 비리로 원전이 가동 중단되는 사태를 맞아 뿌리 깊은 원전 패밀리들의 폐쇄성이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광주지검 특수부(부장검사 김석우)는 위조 품질검증서를 근거로 납품업체 관계자들을 소환해 부품 납품 경위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환대상은 해외 12개 품질검증기관 중 1곳의 품질검증서를 위조한 8개 납품업체들이다. 검찰은 이들 업체 중 대부분이 광주와 전남 지역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수원 본사 직원이나 영광원전 내부 관계자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는지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5월 원전 납품비리를 수사했던 울산지검 특수부는 한수원 본사 처장급 2명을 비롯, 관련자 47명을 무더기 기소한 바 있다. 이중 지방 원전에서 근무했던 직원은 16명이었다. 원전 현장직원들 사이에서 납품 비리는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구조적인 비리였다.

이 납품비리를 적발하게 된 것은 한수원 내부 직원이나 납품 업체 관계자가 딴마음을 품고 제보한 것이 아니라 지난해 9월 모 은행 주차장에서 거액의 현금을 음료수 박스에 담아 포장하는 것을 목격한 한 시민이 동영상을 찍어 고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사건 이후 한수원은 비리 제로를 선언하겠다며 자체적으로 감시단을 발족하고, 부패방지 강화를 위해 윤리경영지도사 제도를 운영하겠다며 갖은 노력을 다 쏟는 것처럼 보였다.

한수원 김균섭 사장은 지난 710일 내부 비리와 관련, “경영쇄신안을 마련하고 뼈를 깎는 자세로 청렴경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강도 높은 청렴 노력을 전개해 비리를 완전히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정당국에서 발표한 직원들의 납품비리 사건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며 회사 경영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경영쇄신안을 마련하게 됐다고 굳은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또다시 영광원전 납품비리가 새롭게 들춰지고 검찰이 품질검증서를 위조되는 과정에 내부 직원의 공모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한수원과 지역 원전 전체로 수사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현재 전문가 자문을 통해 위조된 검증서에 기록돼 있는 237개 품목 7682개 제품의 품질 평가를 받을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한수원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고 전달받은 자료를 토대로 납품업체와 영광원전 관계자들이 서로 관여됐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수원도 자체적으로 관련 직원들을 상대로 고의로 해외 품질검증 기관에 인증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추궁하고 있다. 만약 고의가 아니더라도 품질검증서에 실린 문제의 부품을 구매한 직원들에 대해선 업무 과실 등의 사유로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 위조 품질검사서로 짝퉁 부품이 들어간 원전들과 위치<그래픽=뉴시스>
대규모 반핵시위, 원전안전위 사후약방문

 지난 10월초부터 영광원전 5·6호기의 잦은 고장에 불안해 하던 지역 주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 원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납품비리로 드러난 이후 지역주민의 항의성 반발은 급기야 원전폐쇄를 요구하는 반핵 시위로 확산될 태세다.

지난 7일 전남 영광군의회에 따르면 군의회와 영광 지역 각읍·면 번영위원회, 청년회, 종교단체 등 80여개 단체 2000여 명이 가칭 영광원전 범국민대책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달 15일 영광원전 앞에서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광군의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국제적 수준의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영광원전 1~6호기를 모두 가동 중단해야 한다원자력은 모든 부품이 핏줄같이 얽혀져 전기를 생산하는 생명체를 이루고 있기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군의회는 또 온도스위치와 압력조절기 등 검증 받지 못한 제품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발전정지를 넘어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수준까지 발생할 수 있다“10년 동안 속고 살아왔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이제는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원전당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예정된 시위를 앞두고 범국민대책추진위원회는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자세여서 원전 납품비리 파장은 전국 원전 지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략 140개 환경·반핵 단체들이 연대할 것으로 알려진 이번 시위는 지난 2005년 원전 주변지역 지원법 제정 당시 영광에서 열렸던 최대 규모 시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영광원전 5·6호기 가동중단 사태를 맞아 원전 안전대책 수립과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다 전남 영광군과 경주시, 기장군, 울주군, 울진군 등 5개 자치단체공무원 협의회도 공동 성명을 통해 원전의 안전성 관리에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와 함께 전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부품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위원장 강창순)는 같은 날 심의·의결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민관 합동조사단' 구성이 확정하고 이번 사건에 대해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대책위와 반핵단체들은 동절기 전력 수급 위기를 내세워 원전 재가동하기 위한 수순 밟기에 불과하다며 단순 조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영광 원전 전면 폐쇄를 거듭 주장하며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반핵단체 관계자는 원자력 마피아라는 부패의 카르텔을 눈감고 방치해온 원자력 안전위원회가 뒤늦게 사후약방문 식의 땜질식 처방으로 이번 사태를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전국 원전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와 부품 구매계약, 하청업체 관리시스템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순차적으로 탈원전을 향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않을 경우 전국적인 원전폐쇄 시위를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영광 원전의 납품비리 사태는 빙산에 일각에 불과하며 불투명한 원전 운영과 부패한 원자력 마피아들이 존재하는 한 한국판 체르노빌이라는 최악의 핵 대재앙은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kds@ilyoseoul.co.kr

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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