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룹, 지분 정리되자 기다렸다는 듯 대결 구도
구씨vs허씨, 자존심 대결이냐 사업적 대결이냐
LG그룹(회장 구본무)에서 GS그룹(회장 허창수)이 분리된 지 7년 만에 두 그룹의 지분 정리가 완전히 끝났다. 두 그룹의 마지막 연결 지분이던 LG상사의 GS리테일 주식이 지난 2일 모두 처분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두 그룹이 겹치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신사협정’도 막을 내릴 전망이다. 이미 양측이 일부 사업 격돌을 준비 중이다. 승패를 떠나 구씨가와 허씨가의 자존심 대결이 될 것이란 전망이 이미 재계에 파다하다. 한 치 앞을 내달 볼 수 없는 두 그룹의 사업대전을 짚어본다.
LG상사는 지난 2일 장 개시 전 GS리테일 921만8240주(지분율 11.97%)를 시간외 대량 매매(블록딜)를 통해 전량 처분했다. 주당 처분 가격은 전일 종가보다 4.3% 할인된 3만1200원으로 2876억 원 규모다. 블록딜 주관은 바클레이즈가 맡았다.
LG상사가 보유한 GS리테일 주식은 2005년 LG그룹에서 GS그룹이 분리된 이래 LG계열사가 보유한 GS계열사의 마지막 지분이다.
계열 분리 당시 GS는 LG에서 유통부문 계열사였던 GS리테일(옛 LG유통) 지분 65.8%를 넘겨받았다. 하지만 가격 문제로 LG상사 보유 지분(31.97%)은 확보하지 못했다.
LG상사는 작년 12월 GS리테일이 상장될 때 보유 지분 중 1540만주(20%)를 처분한 데 이어 이번에 나머지를 팔았다.
이번 지분 정리를 끝으로 두 그룹은 사업적 파트너에서 공식적인 남남이 됐다. 이와 함께 5년 전 약속했던 신사협정도 마무리 됐다. 두 기업은 서로 협력하자는 취지에서 동종업계 진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사소한 사업적 다툼은 있었지만 그룹 차원에서 부딪침은 없었다. 대외적인 평가도 두 그룹은 계열분리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순탄하게 사업을 영위한다는 평이 높았다.
그러나 이젠 이런 평가도 의심의 눈빛으로 변모되고 있다.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한판승부는 물론 자칫 서로 물고 뜯는 과잉 대결이 펼쳐질 수 있다는 분위기다.
신사협정 깨진 징후 곳곳에서 ‘포착’
이미 경계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LG그룹은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업체인 서브원을 통해 GS그룹의 고유사업인 건설 분야 진출을 모색 중이고, GS그룹은 LG그룹 영역인 종합상사·2차전지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GS그룹이 리튬이온 2차전지 음극재에 이어 양극재 사업까지 확대 추진함에 따라 양측 대결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금융감독원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GS칼텍스는 지난해 12월 2차전지 양극재 업체인 대정이엠의 지분 14.5%를 추가 인수, 지분율을 종전 14.5%에서 29.0%로 끌어올렸다.
앞서 GS칼텍스는 2010년 12월 대정이엠의 최대주주 송기섭 대정화금 대표이사 등으로부터 대정이엠의 지분 14.5%를 인수했었다. 현재 대정이엠은 GS칼텍스 외에 송 대표가 22.7%, 대정화금이 24.3%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GS칼텍스는 이를 통해 향후 2차전지 양극재 분야의 기술과 생산시설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GS칼텍스는 그동안 2차전지 소재 가운데 음극재 분야에 대한 투자에만 주력해왔다. GS칼텍스는 이미 소프트카본형 음극재 개발에 성공, 현재 기술을 확보했으며 천연흑연형 음극재 개발도 추진 중이다.
2차전지는 통상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 등 4개의 소재로 이뤄져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기존에는 2차전지 음극재 사업만 하고 있었지만, 대정이엠에 대한 투자를 통해 양극재 사업과의 시너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하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이미 2차전지 양극재 기술 개발에 성공, 충북 오창 공장에서 생산 중이다. LG화학은 음극재 분야에서도 현재 파일럿 단계에 와있다. 전해액은 이미 양산 중이며 분리막 기술도 개발해 8월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건설분야도 마찬가지다. LG그룹이 아직은 구체적인 인수합병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지만 대우건설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 GS 측이 다각도로 주시하고 있다.
재계 안팎에선 최근 산업은행이 계열사인 대우건설을 매각하기로 함에 따라, LG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LG그룹은 LG디스플레이·LG화학 공장 등 그룹 내 공사 물량도 적지 않지만, 5년 전 GS그룹과 분리 당시 LG건설(현 GS건설)을 내준 뒤론 건설 계열사를 세우거나 인수하지 않아 왔다.
구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3차 민관합동회의 직후, 대우건설과 하이닉스를 인수할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혀 없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또 “주력 사업만 열심히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고 있다.
폭풍전야? 증시는 조용
증권가는 두 그룹의 대결이 아직은 미비할 것으로 분석한다. 증시는 양사 모두가 호재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물량 부담에 GS리테일 주가가 약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투자자들에게는 오히려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하게 보면 물량이 풀렸다는 점에서 GS리테일 주가는 조정받을 가능성이 커졌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란 평가다.
김경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일시적 주가하락 가능성은 생겼지만 중장기 투자전략 차원에서 GS리테일 주식을 시장가치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마지막 바겐세일이 될 수 있어 호재라고 판단된다”며 “시장 유통가능 물량이 기존 22.2%에서 34.2%로 늘어난다는 점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양측의 대결이 신사협정이 사실상 마무리된 시점에서 어떠한 대결구도를 형성해 나아갈 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