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실세 겨냥한 검찰의 ‘칼’
그러나 특검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검찰 수사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가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 이광재 의원 집과 사무실 압수수색, 측근 인사를 체포해 전대월씨에게 받은 돈이 선거자금으로 유입된 내용을 파악했다. 게다가 청와대 행정관을 전격 소환했고, 건교부 차관, 산자부 장관을 소환하고 일부 인사를 구속했다. 일사천리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현역의원인 이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 압수수색은 이번 수사에 대한 검찰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의원회관 사무실까지 검찰이 압수수색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 일이다. 게다가 그 당사자는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다. 객관적인 환경은 검찰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이같은 강수를 둔 것은 사실상 검찰 고위 수뇌부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검찰이 ‘정치적 쇼’를 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이 의원실에 들어와서 가져간 서류들은 통상적인 의원실 사무서류에 불과한 것으로 안다”며 “특별한 혐의가 포착돼서 가져갔다기 보다는 보여주기식 요식행위였다”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검찰은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 이명박 서울시장을 향한 사정의 칼날을 동시에 휘두르며 여권의 불만을 잠재우고 있다. 이 시장의 최대 사업이자 대권을 향한 승부수인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해 전격 수사에 착수, 이 시장의 최측근인 양윤제 행정2부시장을 전격 구속했다. 수사는 이미 청계천 복원사업 전면으로 범위가 넓혀졌고 이미 구속된 인사들을 포함, 한나라당 몇몇 의원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시장이 무척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당내에서도 검찰 수사가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어 특별한 대응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최근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디지털 특보였던 황인태 서울디지털대학교 부총장이 경찰수사망에 걸렸다.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24번인 황씨는 한나라당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인물로 학생들의 등록금 등 38억여원을 횡령, 유용하고 법인세 4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 사건이 검찰로 이첩될 경우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나라당의 핵심당직자는 “박 대표의 특보로 활동했던 황씨는 한나라당 연찬회에 참석, 디지털 정당화에 대한 강연을 했을 정도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던 인물”이라며 “자칫 그가 횡령한 돈이 당내에 유입됐을 경우 그 파장은 상당할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검찰, 정치권 향한 강한 경고의 메시지
검찰도 일단 경찰로부터 사건이 넘어오면 원점에서부터 전면 재조사할 예정으로 박 대표에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이 이처럼 거물급 정치인에 대해 강경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배경에는 현재의 검찰의 위기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검찰은 형사소송법 개정을 둘러싼 사법개혁추진위원회와의 갈등,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마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움직임 등 조직창건이래 가장 큰 시련기를 맞고 있다. 검찰 수뇌부를 향한 평검사들의 불만도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검찰이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비리수사에 정면승부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불법대선자금수사처럼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검찰권의 축소 움직임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 9일 열린 전국 특수부장 회의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검찰은 이날 ‘권력형 비리와 지역토착 비리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강한 수사의지를 밝혔다. 특히 김종빈 검찰총장은 훈시를 통해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성과가 있었지만 국민은 아직도 부정부패를 철저히 뿌리뽑기를 기대한다”며 “수사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부정부패를 유발하는 부정이익 환수도 철저히 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 총장의 발언은 검찰의 비리수사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검찰의 ‘칼’에 대한 견제 움직임도 있다. 청와대가 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반대해 평검사 회의를 열고 성명을 발표한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에 대해 위법성 여부를 법무부에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는 평검사들의 성명발표를 집단이기주의에서 비롯된 항명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를 통해 자신들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정면승부용으로 꺼내든 사정의 칼날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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