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현대증권 노동조합이 현대그룹 경영진에 대해 노조 탄압 등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현대증권 노조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그룹 차원에서 노조 파괴행위가 시도되고 있다”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해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 등 10명을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이날 민경윤 현대증권 노조위원장은 “윤경은 사장 등이 공모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것을 노조가 막자 노조해체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현대그룹 계열사 사장단 회의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은 지난 9월 26일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한 회의실에서 열린 현대그룹 경영진의 회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 회의에는 이백훈 현대그룹 전략기획1본부장, 이남용 전략기획2본부장, 김현겸 현대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 이계천 현대저축은행 사장, 강승태 현대자산운용 사장,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당시 부사장) 등 현대그룹 및 계열사 최고위 임원들이 참석했다.
노조가 공개한 회의 녹취록에서 참석자들은 “이거 죽여야 된다는 얘기지”, “이XX를, 기본적으로 민경윤이를 때려잡는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총대를 메겠다는 거거든, 내가 죽든지 지가 죽든지 아니면 같이 죽든지 나는 그것만 택하면 되니까, 이거는 내가 잡아 죽일 테니까”, “집에다가 압류를 100억~200억을 걸어 봐요. 예를 들어서 예(민 위원장)가 할 수 있는 게 뭐겠어” 등의 구체적인 계획이 거론됐다.
이에 대해 노조는 당시 회의에서 사장단이 노조파괴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를 나눴고 실행방안까지 나왔다고 주장했다.
실제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 중 일부 시행에 옮겨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신빙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당시 윤 사장은 노조가 제기한 구조조정설과 현대증권 해외매각에 대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명의로 해외매각과 구조조정은 절대로 없다는 메일을 전 직원에게 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현대그룹 측은 회의 다음날 현 회장 명의로 ‘현대증권 매각 없다’는 내용의 전자메일을 발송했다. 또 김신 당시 현대증권 사장을 취임 6개월 만에 경질했고 윤경은 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노무 라인을 정비했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이와 함께 사측이 지난 1일 사내 여론 몰이와 노조 파괴 전담부서인 ‘기업문화팀’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에 대해 현대증권 측은 “당시 회의는 시중에 떠돌던 현대증권 매각설 소문에 대한 대응책 마련과 현안 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노조탄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기업문화팀은 노사간 커뮤니케이션, 고충 처리를 위한 부서”라고 밝혔다.
노조 측의 고소에 대해 현대증권 측은 “그 동안 노조활동을 관대하게 보장해왔다”며 “경영진 고소 등 지나친 경영간섭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민 위원장은 윤 사장 등이 노조 파괴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관련 자료들을 추가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관해 민주노총은 8일 성명서를 통해 “(경영자들은) 멀쩡한 노조를 자극해 파업이나 농성을 유도한 후 수백억 원대의 소송을 걸로 노조 핵심간부들을 생존의 위기로 몰아 넣는 방식으로 노조를 와해시키려 했다”면서 “최근 발각된 노동 탄압 범죄모의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현대그룹 경영진 회의를 황두연 ISMG코리아 대표이사가 주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황 대표에 대해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또 이날 회의 장소도 ISMG코리아가 위치한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였다.
황 대표는 현재 현대그룹 경영에 관여할 만한 특별한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고 ISMG코리아 역시 지분40%를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벌(옛 현대유엔아이)이 보유하고 있을 뿐 연관성이 없다. 현대그룹 지배회사인 현대상선의 지난 6월말 반기보고서에도 ISMG코리아는 계열회사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와 관련 현대증권 노조는 “현대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황 대표)는 현대그룹과는 무관한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현정은 회장까지 조정하며 계열사 사장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해 황 대표의 실체가 이번 사태의 또다른 변수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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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