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이모(47)씨가 마침내 경찰에 붙잡혔다. 이씨는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 앞에서 잠복중인 경찰에 지난달 27일 오전 11시 경 체포됐다. 평택경찰서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달 16일부터 경기도 평택과 안성에서 남녀 2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하고 중부고속도로 등지에서 차량을 강탈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가 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가 첫 살인 이후 도피생활을 하면서 닥치는 대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감안, 그의 추가 범행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계속 조사 중이라고 밝혔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씨가 자신의 범행에 대해 모든 것을 솔직히 자백하고 있어 거짓말의 여지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씨에 대해 “살인범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순한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씨는 왜 연쇄살인마로 돌변했던 것일까. 경찰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이씨의 실체를 추적해 보았다.
“조사 결과 범인은 온순한 사람, 주변 대인관계도 원만”
범인 이씨, 전과 7범이지만 강력범죄와는 거리 먼 인물
경찰은 이씨 검거에 앞서 비공개 수사를 벌여오다 그의 유서가 발견되자 추가 범행 가능성과 자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경기경찰청은 지난달 26일 현상금 500만원에 이씨를 공개수배 했고 이어 하루 만에 그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이씨가 처음 범행을 저지른 것은 지난달 16일부터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연쇄살인의 시작은 ‘돈’
경찰조사에서 이씨는 충북 진천군 진천읍 여대생 양모(22)씨를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은 것이 첫 범행이라고 자백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의 범행동기는 ‘돈’이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양씨를 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씨의 자백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다분하지만 그가 왜 하필 그 장소에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선 따로 밝혀진 바 없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씨의 두 번째 살인은 같은 달 23일 오후 8시 40분경 평택시 서정동 송탄여성회관 주차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이씨는 댄스 강습을 마치고 귀가하려던 이영숙(가명.39.여)씨와 주차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이영숙씨가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가격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이영숙씨를 살해한 뒤 인근 장안동 농로 옆 논에 유기하는 잔혹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나는 이영숙씨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폭행으로 부상을 입긴 했지만 분명 살아있는 이영숙씨를 논두렁 부근에 내버려두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주장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맞아서 머리뼈가 함몰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을 이영숙씨를 농로에 내버려둔 것은 살인이나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이영숙씨의 부상 정도로 볼 때 이미 살아날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유기됐다. 그러므로 이는 곧 살인이다”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정확한 살인 이유에 대해 “아마 이영숙씨가 이씨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 것 같다”며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느낀 이씨가 분을 참지 못해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친김에 시작된 이씨의 살인질주는 계속됐다. 그는 이어 오후 9시 50분께 숨진 이영숙씨의 흰색 뉴EF쏘나타를 몰고 안성휴게소 뒤편 도로를 지나다 길 가에 차를 세워두고 있던 정모(32)씨와 차량 진입 문제로 또다시 말다툼을 벌였다.
두 번째 살인으로 이미 살기가 오를 대로 오른 이씨는 이번에도 야구방망이를 꺼내들고 기습적으로 정씨에게 달려들었고 갑작스런 그 공격을 미처 막아내지 못한 정씨는 결국 대로변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씨는 또 다음날인 24일 새벽 2시 40분경 충북 진천군 중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앞서 가던 카렌스 승용차와 접촉사고를 냈다. 이번에도 이씨는 야구방망이를 꺼내들고 진모(27)씨 등 카렌스 탑승자 2명을 폭행해 중상을 입힌 뒤 이들의 차량을 빼앗아 타고 도주한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씨는 카렌스를 몰고 경북 안동.봉화로 도주한 뒤 이곳에서 차량번호판을 교체하고 다시 경기도 안성으로 상경했다. 이어 고삼저수지 주변에서 카렌스를 불태우고 다시 이스타나 밴을 훔쳐 타고 충남 신탄진과 대전으로 달아났다. 다시 이곳에서 밴을 버린 그는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 전라도 구례.남원.전주 등지로 도피행각을 벌인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또 이씨는 이날 아침 전주에서 기차를 타고 천안까지 온 뒤 전철로 갈아타고 평택역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고 경찰에 자백했다. 그러나 이씨가 왜 이 같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온순한 사람”
이씨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은 그에 대해 “매우 온순한 사람인 것 같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라며 “비록 전과자이긴 하지만 그는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주변에 가까운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이 왜 연쇄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우리도 의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진천 여대생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충북 진천경찰서는 "지난달 16일 진천에서 피살된 여대생 양씨의 손톱 밑, 몸 등에서 타인의 피부조직과 타액이 채취됐다“며 ”이것에서 확인된 DNA를 이씨의 것과 비교해보니 거의 완벽히 일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씨를 검거한 평택경찰서는 이씨가 양씨를 성폭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평택경찰서 관계자는 “양씨의 몸에서 발견된 타액이란 정액이 아니라 침이나 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씨의 정액은 채취된 바 없다”며 “이씨는 지금까지 범행에서 성폭행은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전과 7범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마약류 관련이 2건이고 나머지는 절도 등으로 강도, 강간, 폭행과 같은 강력범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윤지환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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