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 무너진 ‘천륜’
돈 앞에 무너진 ‘천륜’
  • 박혁진 
  • 입력 2007-08-23 16:01
  • 승인 2007.08.23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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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노린 패륜 아들의 살인행각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해 부모를 살해하고 누나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한 패륜아의 파렴치한 범행이 알려지면서 이를 접한 많은 시민들이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범인은 사건 당시 부모를 10여 차례나 흉기로 찌르고 누나 2명도 방에 몰아넣고 살해 일보 직전까지 가는 등 일가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잔인성을 보여 경찰 관계자들을 경악케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살해당한 아버지는 칼에 찔리는 순간에도 남은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유인해 낸 것으로 밝혀져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난 11일 새벽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이 참혹한 ‘패륜’ 살인극을 취재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 2년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이모씨(23)는 지난 달 21일 가족명의로 매달 납입료 3만원짜리 보험에 가입했다. 가족사망시 자신에게 1억 8000만원이 지급되는 생명보험이었다.

이씨는 ‘가정이 어려운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보험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보험가입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고 부모들은 이런 막내아들 이씨를 대견스럽게 여겼다. 그는 계약을 하며 부모와 누나 2명의 한달치 보험금(12만원)을 자신의 돈으로 납입했다.

이로부터 20여일이 지난, 이달 11일 새벽 3시 40분경 이씨의 집에 난데없이 복면을 쓴 괴한이 칩입했다. 괴한은 거실에서 자고 있던 이씨의 아버지(58)를 다짜고짜 흉기로 수 차례 찌른 후 안방에 있던 이씨의 어머니를 찔렀다.

이씨의 아버지는 칼에 찔리는 순간 자신을 찌른 괴한이 바로 아들임을 알아보고 “OO아 그만해”라며 이씨의 이름을 불렀다. 집에 침입해 흉기를 휘두를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이씨는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당황한 듯 거실로 나가 재차 아버지를 찔렀다.

이 때 비명소리에 깬 누나들이 방문을 열고 나왔고 이씨는 몸을 돌려 누나들을 작은방으로 밀어 넣으며 흉기를 휘둘렀다. 흉기에 찔려 신음하던 아버지는 또다시 “그만하라”고 외쳤고 이 소리를 들은 이씨는 다시 거실로 나가 아버지를 찔렀다. 이 사이 누나들은 방문을 걸어잠근 채 경찰에 신고했으며 이씨는 2층 베란다를 통해 도주했다. 사건 직후 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내와 함께 과다출혈로 숨졌다.

이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범행 이후 친구집으로 갔고 새벽 6시경 병원에 나타나 ‘친구집에 있다가 친척들의 연락을 받고 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일어나자 경찰에는 이웃들의 신고가 수차례 접수됐고 이들은 “이씨의 집에서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들려 신고를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건 이후 경찰은 ‘동생이 범인인 것 같다’는 이씨 누나들의 진술을 토대로 유력한 용의자로 이씨를 지목했고 그를 경찰서로 불러 조사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범행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다 경찰이 집근처에서 발견한 피 묻은 옷가지와 복면 등을 증거물로 제시하자 그제서야 범행사실 일체를 인정했다. 경찰은 이 씨에 대해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아버지가 누나들 살려내

경찰에서 이씨는 지난 2005년 8월 군을 전역하고 다니던 대학에 복학했으나, 어려운 사정으로 휴학한 후 아르바이트 등으로 용돈을 벌었지만 아버지로부터 직장을 구하지 않는다며 자주 꾸중을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아버지가 화물운송업을 하며 7000여 만원의 빚이 있는데다 자신이 주식투자 등으로 3000여 만원을 날리자 최근 다툼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압박이 계속되자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23년간 자신을 돌봐온 부모를 살해할 끔찍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씨는 자신의 어머니가 ‘살려달라’고 절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4차례나 칼로 찌른 것으로 알려져 경찰 관계자들을 더욱 경악케했다.

이번 사건에서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씨의 아버지가 여러 차례 칼에 찔려가면서도 딸들을 구하기 위해 이씨의 이름을 불러 그를 유인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씨를 유인해내지 않았다면 누나들조차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결국 이씨의 아버지가 누나들을 살려낸 셈이 된 것.

수 천 만원에 눈이 멀어 양부모를 살해하고 누나들 역시 살해 일보직전까지 갔던 이번 사건은 돈 앞에서 천륜마저 짓밟혀버린 현대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건이다.


#늘어나는 패륜사건, 사회는 ‘무덤덤’


지난 1994년 일어났던 ‘박한상 사건’은 한국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유산을 노려 안방에서 잠자는 부모를 살해한 뒤 증거인멸을 위해 방화까지 한 이 사건은 ‘돈 때문에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으며 이후 대표적인 ‘패륜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이러한 패륜사건이 최근에는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아버지가 친 딸을, 아들이 아버지를, 손자가 할머니를 살해하는 패륜 범죄가 올 상반기에만 60건이 넘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수원에서 일어난 사건도 보험금을 타내려고 한 달여전부터 사건을 계획적으로 꾸며왔다는 점에서 ‘박한상 사건’ 못지 않은 잔혹성을 보여줬으나 그 파장은 당시만 못하다. 그만큼 패륜사건에 무감각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박혁진  phj197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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