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방파 전 두목 김태촌씨에 대한 1심 재판이 9월경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그 결과에 따라 김씨의 마지막 인생여정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가 무혐의 등으로 다시 자유의 몸이 될 경우 향후 행보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씨는 수년전부터 권력과 주먹의 검은 커넥션을 폭로하겠다며 여러 차례에 걸쳐 공언해 왔다.
특히 뉴송도호텔 습격사건과 관련, 박모 전 검사의 혈서와 녹취록을 세상에 공개해 일반인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권력층의 ‘비열한 거리’를 청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김씨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 혈서와 녹취록의 공개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이 때문에 현재 ‘혈서와 녹취록은 없다’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뒤흔들 ‘물건’으로 알려졌던 비망록도 그 존재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과연 김씨는 실제로 ‘엑스칼리버’를 쥐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언제쯤 그것을 뽑아 권력의 비리를 단죄하려는 것일까. 이에 김씨가 가지고 있다는 혈서와 녹취록의 존재 여부를 집중 추적해 보았다.
김씨는 2001년 4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진주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면서 보안과장에게 금품을 주고 전화 담배 등 각종 편의를 제공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됐다. 이후 올 2월에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씨는 권씨에게 협박성 전화를 한 사실이 드러나 추가 기소됐다.
하지만 김씨는 지병인 심근경색 등 당뇨 합병증세 때문에 지난해 12월경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풀려나 진주에 위치한 00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살얼음판 위에 선 건강
최근까지 00병원을 찾아 김씨를 자주 만나온 삼중 스님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씨의 건강상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삼중 스님은 “김씨의 병은 낫는 병이 아니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인 그런 병이기 때문에 예전보다 건강이 좋아질 수는 없다”며 “아직 재판이 시작되진 않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 그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지나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00병원 관계자도 김씨의 건강에 대해 “안정을 취해 현재 환자(김태촌)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편”이라면서도 “당뇨 합병증세는 특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현재 우려할만한 것은 심근경색증 정도인데 이것역시 아직까지 목숨을 위협할 단계는 아니지만 주의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는 체력이 많이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사소한 질환이 곧바로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씨, 폭로 의지 의문
삼중 스님은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김씨가 가지고 있다는 혈서와 녹취록에 다들 관심이 많은 모양이지만 지금 그런 것을 내놔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며 “나는 김씨에게 그런 것들을 공개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판단은 김씨가 할 몫이겠지만 공개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도저히 그런 것을 공개할 때가 아니라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그러나 삼중 스님은 혈서나 녹취록을 보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나도 이야기만 들었지 그런 것을 보지는 못했다”며 “그런 것에 나는 전혀 관심 없다. 다만 김씨가 불필요한 행위로 인해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또 김씨와 한때 매우 가까웠던 A씨는 혈서와 녹취록에 대해 극도로 언급을 꺼리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A씨는 김씨의 혈서와 녹취록에 대해 “왜 지금 그런 것을 물어보나. 그것은 함부로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다”며 “내 입으로 그것이 있다 없다 이야기할 입장이 못 된다”고 대화를 피했다.
이에 또 다른 김씨의 측근 인사인 B씨와 접촉해 혈서와 녹취록의 존재 여부를 물어 보았다.
B씨는 “참으로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며 뜸을 들인 후 “사실 내가 아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혈서와 녹취록을 김씨가 수차례 공개하려 했지만 주위에서 만류한 것으로 안다. 그것의 공개여부를 결정짓는 이면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검사측 “‘물건들’ 실존 가능성 낮아”
B씨가 전하는 내용대로라면 ‘물건’은 실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김씨가 이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일부에선 말들이 무성하다. 그중 본인이 언론을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사회정의를 바로세우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벌써 공개됐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변죽만 울릴 뿐 직접적으로 제시된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는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고 있다.
이에 김씨의 한 측근은 “혈서와 녹취록 등은 때가되면 공개될 것이다. 그것이 김씨의 의지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김씨는 지금 때가 때이니 만큼 상황을 두고 보는 게 좋겠다는 주위의 말을 수용하고 공개를 미루고 있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조폭 검사의 대부로 통하는 심재륜 전 고검장은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심 전 고검장은 “나는 박 전 검사는 절대 그런 일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라며 “김씨는 혈서니 녹음테이프니 운운하며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진작 꺼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그 사람 입장에서 그런 게 있다면 못 꺼내놓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심 전 고검장은 “박 전 검사는 사실 김씨에게 정말 많은 친절을 베푼 사람이다”라며 “그런 사람에게 김씨가 저렇게 하는 것은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행위다”고 혀를 찼다.
심 전 고검장에 따르면 박 전 검사는 당시 사건에 휘말려 의혹의 눈초리 때문에 법조계에서 제대로 활동도 못하고 망가지다시피 한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이다.
박 전 검사 침묵 이유
이에 박 전 검사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박 전 검사의 사무실은 서초동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현재 폐업상태였다.
그를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그분(박 전검사)은 사무실에 안나오신지 오래됐다”며 “현재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인사는 “지금까지 김씨가 언론을 통해 그분을 언급하는 것을 많이 봐 왔는데, 그분이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직 못 들어 봤다”며 “다른 사람들 이야기로는 절대 그런 일 없다는 게 그분의 입장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전 검사는 김씨의 언론 인터뷰 등에 대해 아직 공식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거나 반박한 적은 없다. 때문에 김씨의 말을 사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박 전 검사는 왜 김씨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박 전 검사는 모든 것을 더 이상 들추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주변인들의 설명만 있을 뿐이다.
김씨가 모 월간지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그동안 박 전 검사는 간접적으로 김씨의 측근들을 통해 수 천 만원의 돈을 전달하며 김씨에게 용서를 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대해서도 박 전 검사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한편 김씨는 현재 재판이 마무리되고 병상에서 일어나게 되면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혈서와 녹취록을 공개함과 더불어 우리나라 권력층의 추한 이면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밝히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그에 대한 재판 결과와 향후 그가 내놓을 보따리가 과연 무엇인지 관심이 쏠라고 있다.
#권상우 사건 무혐의 가능성
김태촌씨가 영화배우 권상우씨를 상대로 협박한 이른바 ‘피바다 사건’에 대해서는 혐의를 벗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7일 재판부는 창원지법 진주지원(재판장 안창환 부장판사) 법정에서 열린 김태촌씨 심리공판에서 검찰이 증거물로 제출한 권상우씨와 김태촌씨 통화내용에 ‘피바다’ 등 협박성 발언은 들어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이날 공판에 참석한 법원 관계자는 통화내용을 들어본 결과 김씨가 통화중 권씨에게 평범한 어조로 묻는 내용만 있을 뿐 협박은 없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동안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권씨와의 통화에서 ‘피바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고,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뉴송도호텔 사건이란
뉴송도호텔 습격 사건은 86년 7월 26일 인천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당시 김태촌씨가 수하 조직원들과 함께 호텔을 습격해 호텔 사장 황익수씨를 살해하려한 것을 말한다.
황씨는 조직원들의 흉기에 중상을 입었지만 병원으로 실려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상처가 회복된 뒤에는 경찰에 모든 사실을 신고했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이 사건은 박 전 검사가 채무관계였던 황씨로부터 빚을 받아내기 위해 꾸민 것으로 박 전 검사는 김씨에게 혈서를 써주며 일을 처리해 주면 뒤처리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김씨는 당초 약속한 대로 자신과 부하들이 모든 죄를 뒤집어썼지만 박 전 검사는 뒤를 봐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김씨에게 모든 죄를 떠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혈서와 녹취록이 공개되지 않아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윤지환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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