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국 전 문경시장 자서전 3
신현국 전 문경시장 자서전 3
  • 신현국
  • 입력 2012-11-06 17:23
  • 승인 2012.11.06 17:23
  • 호수 966
  • 4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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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시련

▲ 신 : 다시 핸들을 돌려 그냥 목적지도 없이 2~3시간을 다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는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웠고,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고통스럽고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3개월간 은둔생활을 보내고 난 뒤 세상으로 나와 새로운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떨어진 게 상대방이 불법으로 돈을 많이 써서 떨어 졌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두가 제 탓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 L팀장 : 낙선이라는 아픔이 엄청 컸었지요. 선거에 떨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패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신 : 결국 상대방이 잘 했고, 제가 잘못한 것이지요. 돈을 쓰던, 조직을 가동하던 상대방이 잘 했고 제가 잘못하여 떨어진 것이지요. 제가 실패한 것은 공천 받았다고 자만한 것이지요. 한마디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선거에 떨어진 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흔히들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저도 당시 선거기간 중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이야기했고, 제가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떨어지고 난 뒤 복귀를 해보니 잘못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맞대결에서 1300표 차이로 졌으니 650표만 더 얻었으면 결과는 달라졌는데, 650표를 더 갖는 길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저의 집사람이 당시 초등학교(점촌초등학교) 교사였는데 선거를 앞두고 4개월 전에 그만 두고 선거를 돕겠다고 했는데, 집사람도 어렵게 구한 직장인데 그냥 그대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딸들도 휴직이라도 해서 아버지 선거를 돕겠다고 했는데 그럴 필요까지 없다고 했습니다. 650표를 더 얻는 길은 정말 무수히 많았습니다. 인생을 걸고 죽느냐 사느냐의 게임인데, 공천 받았으니, 여론이 많이 앞서고 있느니 무조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패인이었지요.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 L팀장 : 2002년 선거 패배 후, 어떻게 재기했나요.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텐데요…

▲ 신 : 선거 패배의 아픔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고통·주변 사람들의 아픔·퇴직금까지 다 탕진하고 빚까지 진 상태에서 경제적 어려움 등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무엇보다 큰 아픔은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저를 도왔다는 이유로 저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아픔은 더욱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지요. 저를 도와준 공무원들, 저와 가깝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되고 소위 말하는 한직으로 밀려났지요.

임시직·계약직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재계약에서 밀려나기도 했어요. 건설업을 하는 사람들은 공사계약의 수주가 잘 안되고 수의계약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심지어는 제가 잘 가는 식당들은 파리를 날렸습니다.

- L팀장 : 그래도 시장님 용케 4년을 잘 버티고 4년 뒤 선거인 2006년 선거에서 P 전 시장과의 리턴매치에서 성공을 거두었지요.

▲ 신 : 4년 동안 서울로 대구로 왔다 갔다 했고, 민간회사 CEO로 활동하면서 틈나는 대로 문경의 구석구석을 다시 다녔지요. 오라는 곳은 없었지만 논두렁 밭두렁 그리고 동창회·행사장을 찾아 다녔습니다. 서러움도 많이 받았어요. 2005년 실내수영장 준공식 때는 앞자리의 내빈석 자리가 비어있어서 앉았더니 담당 공무원이 와서 그 자리는 내빈자리이니 뒷자리로 옮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화가 나서 내빈이 오면 자리를 비켜 주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무조건 옮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내빈은 끝내 오지 않았지요.

4년 동안 문경 구석구석을 다녔지요. 동창회·체육대회를 빠지지 않고 참석했지요. 동창회·체육대회에 참석하여도 물론 저의 자리는 없었지요. 내빈소개도 받지 못했어요. 공무원들은 제가 나타나면 거북해 했습니다. 제가 나타나면 분위기가 썰렁했지요. 집사람이 한 번은 시내를 나갔는데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조차 피한다는 말을 했어요. 우리가 몹쓸 전염병에 걸린 환자 취급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지, 퇴직금까지 다 날리고 빚까지 졌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비굴하게 살아야 되느냐고 항변했어요. 내 돈 써가면서 사람대접 못 받는 이런 생활을 왜 해야 되느냐고 비토 했습니다. 몸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이도 훨씬 적은 후배들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창피를 당할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지요. 동창회 같은 행사장에 참석해도 괴로움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직들이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폼 잡으며 행사장을 움직일 때 눈치 보면서 이 구석 저 구석 행사장을 돌았지요. 짓궂게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이야기를 해도 대응은 커녕 그냥 웃어 넘겨야 합니다. 예의도 없이 주는 술잔도 무조건 주는 대로 받아 마셔야 했습니다. 동창회장을 한 바퀴 돌면 소주 2~3병은 먹게 됩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는데 다리는 힘이 빠져버리지요.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아니했지요. 다시 질 수는 없다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습니다. 2002년 선거 패배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잠이 깨었습니다. 술을 먹다가도 술이 취하지 않았습니다. 일요일 늦게까지 사람을 만나고 행사장 참석하고 술도 마셨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 4시에 출근을 위해 출발했지요. 그때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지 않았을 때라 이른 새벽 국도를 달려야 했어요. 잠이 다 깨지도 않아 비몽사몽간에 운전했습니다. 때로는 반은 졸면서 운전했지요. 졸음운전을 하다가 전봇대를 비껴 부딪친 적도 있었습니다. 겨울철에는 더욱 힘들었지요. 눈이 오는 날에는 제2소조령 부근의 미끄러운 내리막길에서 180도 회전하여 반대편 차선으로 쳐 박힌 적도 있었습니다.

4년 간 운전대를 잡고 달린 거리가 30만㎞가 넘었지요. 1년에 8만㎞이니 웬만한 운전기사의 주행거리 쯤 되었지요. 다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인고의 세월이었습니다.

2. 파파라치

- L팀장 : 2004년부터 2005년 말까지 근 1년 6개월 가까이 문경시청 직원으로부터 파파라치를 당했지요.

▲ 신 : 그렇습니다. 시청 총무과 자치행정계 담당이 팀장이 되어 1년 6개월 가까이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어요. 제가 당시 서울에서 CEO로 활동해 주로 주중에는 서울에 있었고, 주말이 되면 고향의 행사장에 참석했지요. 제가 행사장에 나타나면 저를 전담(?)하는 시청 직원이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행사장 참석할 때 사진도 찍고 경조사에 참석했을 때는 부조계를 확인했지요. 그래서 제가 부의금·축의금을 냈는지를 확인했어요. 어떤 때는 1명, 어떤 경우는 2명이 아예 저를 전담했지요.

- L팀장 : 2005년 11월께 지방선거를 6개월 가까이 앞두고 준비한 파파라치 행위를 종합해 제3자 이름으로 검찰에 고발 하였지요.

▲ 신 : 그렇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때 그들이 준비한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고발한 건수가 170여 건 정도 됐지요. 상주지청에서 문경 경찰서에 이첩해 170여 건의 관련자를 조사하는데 거의 3개월이 걸렸지요. 조사를 받은 사람만 500여 명이나 됐습니다. 경조사에서 부의금·축의금 등 기부행위를 했다는 내용, 출판기념회 때의 내용, 나머지는 지역의 초·중·고 동창회에 참석한 것, 벼 수매장에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일일이 사진에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여 제가 행사장에 참석하여 지지 부탁을 했는지, 명함을 주었는지 등등의 사전 선거운동 혐의에 대해 조사를 했지요. 그런데 3개월 간 조사결과는 기부행위 건은 혐의 없음으로 밝혀졌지요. 결국 130여 건의 초청받지 아니한 행사장 참석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검찰이 기소했지요.
1심 판결은 유죄였어요. 명함을 주지 않고 지지 부탁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초청받지 않은 동창회·체육대회에 반복해 연속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동창회·체육대회는 공개된 장소이고 누구나 참가해 서로 축하하는 장소입니다. 초청받지 않았다고 해서 참석하는 것이 선거법 위반이라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반복해서 연속적으로 참석하는 경우라고 했는데, 애매한 이야기입니다. A학교 동창회에 참석하고 뒤이어 B학교 동창회에 참석하는 것이 반복해서 연속적으로 참석하는 것인가요. 참으로 애매했습니다. 2심도 유죄였습니다. 상고하지 않았지요. 파파라치의 결과는 여기까지였습니다. 파파라치한 공무원에 대해 저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거에 이기는 것만이 파파라치에 대응하는 더 적극적이고 확실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신현국 ilyoseou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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