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꾼들 농간에 멀쩡한 국익사업 매도돼”

검찰의 석유공사 및 에너지 개발 업체들에 대한 비리 수사가 정치권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선 이번 검찰 수사가 참여정부 등 구 정권에 대한 사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박용석 검사장)는 지난달 28일 `러시아 오일 게이트의 핵심인물이었던 전대월씨가 대표로 있는 KCO에너지의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 서초구 KCO에너지 본사 등에 수사관을 보내 회계장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전씨가 러시아 유전을 개발한다는 명분으로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고의로 사업성을 부풀려 자금을 끌어 모았는지, 이 과정에서 주가를 조작했는지 등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일 뿐 수사의 진짜 의도는 따로 있을 것이라는 단정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전씨의 비자금 조성의혹과 주가조작 의혹은 수년전부터 제기돼 왔던 것으로 검찰이 지금에서야 칼을 겨누는 이유가 분명치 않아 온갖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전씨는 2005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정부, 여당 실세 등의 개입 의혹이 제기돼 특별검사 수사로까지 이어졌던 `오일 게이트' 사건 당시 철도공사와 함께 유전개발 사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검찰 수사는 단순히 개인비리 추궁차원이 아닌 다른 의도가 담겨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전씨는 2006년 8월 러시아 사할린의 석유가스업체인 `톰가즈네프티'의 지분 74%를 확보해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작년 5월에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인 명성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와 대표이사가 된 뒤 회사명을 KCO에너지로 바꿨다.
전씨가 명성의 대표로 취임하자 주가는 잇따라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6배나 치솟았다. 주가가 급등하자 주식시장에선 ‘검증되지 않은 위험주’라는 경고가 나돌기도 했지만 투자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그러나 KCO에너지는 이렇다할만한 수익실적 없이 수년째 적자를 기록, 주식은 현재 자본잠식상태에까지 이르렀다. 또 최근에는 유상증자 보호예수 물량이 풀리고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되면서 신뢰도가 급속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KCO에너지의 이같은 모습은 공교롭게도 앞서 ‘위험주 경고’와 함께 등장한 예상 시나리오와 거의 유사해 투자자들은 애를 태우고 있다.
검찰수사의 본의는?
또 전씨의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이 실체 없는 주가띄우기 작전이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지금에서야 KCO에너지를 수사하는 것일까.
최근 검찰의 강원랜드, 프라임그룹, KTF 관련업체 등 기업 압수수색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이나 구 여권 실세를 겨냥한 사정수사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구 여권은 “전형적 공안정국 조성기도"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덮기 위한 물타기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구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전대월 오일게이트는 이미 특검을 통해 충분히 수사가 이뤄진 사항인데 검찰이 전대월 개인 비리 수사 형식을 빌려 다시 수사하는 것은 현 정권의 실책을 가리려는 저급한 정치행위”라고 비난했다.
구 정권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검찰 수사는 5가지다. 이 중 두 가지가 오일게이트 관련자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전씨에 대한 수사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 중인 강원랜드 비리의혹은 이 의원을 겨냥한 수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강원랜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 의원 지역구에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 3일에는 고한ㆍ사북ㆍ남면 지역 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 사무실이 이 의원과 강원랜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의원은 오일게이트 사건 당시 전씨를 도와 철도청이 유전사업에 나서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에 전씨가 대표로 있는 KCO에너지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 의원 수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전씨 “나는 억울하다”
전씨는 최근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사업은 무리 없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며 “외국을 자주 드나들고 있기 때문에 언론에 내 사업에 대해 제대로 밝힐 시간이 없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또 전씨는 “일부에선 내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데 대부분 근거 없는 루머들이다”며 “해외 유전개발사업은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고 조만간 그 결과가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일게이트와 관련된 이들의 설명이 서로 다르고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부분도 있어 전씨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현재 사업만으로 비춰볼 때 최근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KCO에너지의 유전개발사업은 순항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2일 KCO에너지는 “유전전문 평가기관 스푸롤(Sproul)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최근 당사가 대주주로 있는 러시아 사할린의 라마논스카야 광구에서 3억2800만 배럴의 추정매장량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라마논스카야 광구의 지하구역 지진파 탐사작업은 2006년 말 끝났다. 이번에 예비평가분석보고서를 통해 매장량을 재확인한 것이다.
전씨는 “국제 원유가를 배럴당 120달러로 환산시 생산가능 매장량에 따른 라마논스카야 광구의 경제적 가치는 4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낙관적 지표에도 불구하고 KCO에너지의 주가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 주식시장에 KCO에너지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는데다 검찰조사가 불안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씨는 검찰 수사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전씨는 “검찰 수사에 대해선 지금 답할 여건이 아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따로 입장을 밝히겠다”면서 “오일게이트로 사람들이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정직하게 사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 부분(검찰수사)은 때가 되면 내가 이야기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의 최근 수사를 두고 참여정부에서 상당 부분 확보됐던 ‘검찰 독립'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일련의 수사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구 정권 사정 욕심에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어떤 결과를 염두하고 수사를 하는 게 아니다. 뭔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수사를 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드러날 것이고 깨끗하다면 결백함이 입증될 것이다. 검찰 수사를 두고 정치권에서 비난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죄가 없다면 문제될 게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일게이트 특검이 밝혀낸 사실
오일게이트 사건 당시 특검팀은 이 의원이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에게 축전을 보낸 것이나, 이 의원 사무실에 있던 산업자원부 문건을 허문석씨가 가지고 있었던 점, 전대월씨가 2004년 총선 직전 강원랜드에서 도박용 칩을 현금으로 교환하며 1억8000만원의 비자금을 형성한 점 등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는 사건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검팀은 코리아크루드오일 지분 가운데 이 의원의 지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혹만 제기했고 전씨의 비자금 중 1억원의 용처는 규명하지도 못했다. 검찰수사를 조금도 발전시키지 못했고, 사법처리 대상자를 추가시키는데도 실패했다. 특검은 수사 직후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결국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종결되고 말았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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