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서울시장 선거 총력 지원

김규리 기자 = 야권 통합경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내지 못한 데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하루 만에 사퇴 의사를 철회했다. 이로써 당 지도체제의 위기는 일단 면했지만 손 대표의 리더십과 민주당의 위기를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손 대표는 남은 임기 동안 서울시장 선거 승리와 야권 통합을 위해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오는 12월에 열릴 전당대회가 통합 전대로 치러질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불임정당’이라는 그늘 속에 서울시장 선거 승리의 중심이 돼 제1야당으로서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학규 “야권 통합과 당의 혁신에 매진하겠다” “서울시장 선거는 통합 과정의 일환”
지난 4일 손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자 당 중진들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까지 이를 만류하기 위해 나섰다. 당은 짧은 시간에 패닉 상태가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선거 지원에 총력을 기울일 틈도 없이 이런 상황을 겪게 됐고, 이로써 차기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졌다.
손학규, 하루 만에 사퇴 철회
작년 전당대회 차점자인 정동영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해야 한다는 주장과 현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김진표 원내대표 중심의 비상대책위 체제로 가야 한다는 입장 등 여러 가지 의견으로 당 내부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손 대표는 경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사퇴 의사를 철회했다.
손 대표는 지난 5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중대한 과오에 대한 책임을 안고 가되,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의 승리를 이끌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퇴 의사를 번복했다.
그는 사퇴 철회 이유와 관련해 “당 대표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당의 고문, 중진, 선배 당원, 의원들이 사임을 극구 만류했다”며 “남은 임기 동안 야권 통합과 당의 혁신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65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의원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손 대표의 대표직 사퇴 철회를 결의했다. 김진표 원내대표와 정장선 사무총장 등 주요 중진들은 경기 분당의 손 대표 자택을 찾아 의원총회 결과를 보고하고 사퇴 철회를 촉구했다. 박원순 후보도 당혹스러워하며 공개적으로 “손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로써 일단 당내 혼란은 일단 수습된 분위기지만 야권 통합경선 패배로 당내 손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쏟아져 나오는 시점에 사퇴 의사 표명을 번복한 것은 당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손 대표가 사퇴를 강행했을 경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한 손 대표의 책임론은 더욱 불거졌을 것으로 보인다.
‘리더십 위기’ 극복할까
한편, 일각에선 손 대표의 사퇴 번복을 투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제기돼 당내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천정배 후보를 지원했던 당 비주류 의원들은 손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고,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당내 혼란만 키웠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손 대표의 사퇴 번복과 관련, 경선 패배의 책임보다는 대표직 자리를 걸고 정치적인 행세를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당 한 의원은 “손 대표는 누가 물러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며 “제1야당 대표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손 대표는 지난 4월 분당 보궐선거 승리 후 지지율 10%를 넘기며 당내 유력한 대선 주자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그런 손 대표가 경선 패배와 대표직 사퇴 논란을 겪으면서 향후 당 대표와 차기 대선주자 입지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주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선거를 승리로 이끌지 못할 경우 선거를 지휘한 손 대표가 입을 리더십의 상처는 불가피하다. 손 대표는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당내 입지를 굳히려 하지만, 선거에서 실패할 경우 그를 향한 책임론의 강도는 당 안팎에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손 대표는 지난해 10월 3일 전당대회 승리로 당 대표직에 오른 이후 1년 만에 리더십의 위기에 몰렸다.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시민후보의 부상에 맞물려 당내에서 지도력이 훼손되고 입지가 위축된 형국이다. 여기에 야권통합에서 제1야당의 입지까지 좁아져 ‘후보 없는 제1야당’이라는 인식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물론 그동안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혀왔던 손 대표는 경선 패배에 대한 책임과는 무관하게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오는 12월에 열리는 전당대회를 놓고 통합 전대를 치를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당내 혼란만 키웠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박원순 승리 위해 적극 지원
한편, 손 대표가 사퇴 번복에 따른 비판을 감내하면서 ‘당의 혁신’을 주장한 것은 박 후보의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돕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범야권 단일 후보인 박 후보 입당을 권유해왔지만 지난 6일 손 대표는 박 후보와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 입당 여부를 떠나 총력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손 대표는 이날 국회 당대표실을 방문한 박 후보에게 “박 후보에게 한 가지 자유를 드리려고 한다”며 “박 후보가 더 큰 민주당의 후보라 생각하고 입당 문제에 대해 해방 시켜주겠다”고 말했다. 이는 야권 통합경선 이후 민주당 입당 문제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던 박 후보에게 당 차원에서 입당 권유를 포기한 셈이다.
그는 이어 “야권 단일후보는 대통합의 정신에 입각해서 이뤄지는 것이니만큼 민주당에 당적을 갖건 안 갖건 민주당의 후보”라고 말했다. 여기에 “서울시장 선거 자체가 통합 과정의 일환이고 야권 통합은 더 큰 민주당을 만드는 것”이라며 통합을 강조했다. 손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박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박 후보는 “정말 해방된 느낌이다”라며 “통합과 변화, 혁신이라는 것은 우리 시대 정치정당에 있어 가장 큰 화두”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중심이 돼 이 변화와 통합, 혁신을 이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 후보는 손 대표가 사퇴를 철회한 것과 관련해 고마움을 표시했고 손 대표는 “선거 승리와 민주당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손 대표는 이날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위한 민주당의 역할을 거듭 강조하며 박 후보와 범야권 공동선거대책위원회 구성 문제를 협의키로 했다.
당내 변화 불가피
한편, 민주당은 야권 통합경선에서 박 후보에 패배하기 이전에도 6·2 지방선거의 경기지사, 4·27 재보선의 경남 김해에 이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후보를 내지 못한 상황이다.
60년 정통 야당을 자부하던 민주당이 무소속 후보에게 패배한 이후, 당내에서도 민주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석현 의원은 이번 경선 패배와 관련, “민주당은 확실히 패배했다”며 “네 탓, 내 탓 공방으로 허송세월 보내지 말고 시대흐름에 맞게 변화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제창 의원은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여론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현실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며 “87년 체제의 기득권을 버리고 당 구조를 모조리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서 야권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도 나오는 상황이다. 손 대표가 추진하려 했던 민주당 중심의 야권 대통합은 경선 패배 이후 사실상 시민사회진영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민주당 비주류인 한 의원은 “그동안 추진해온 야권 대통합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외부에는 문재인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전 총리 등 야권 단일정당을 추진하는 ‘혁신과 통합’ 세력이 존재하고, 이들이 현재 야권 대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혁신과 통합은 민주당에 기득권을 버릴 것을 요구하며 야권 단일화를 추진해왔다.
아울러 민주당의 위기는 서울시장 선거 이후에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게 되면 시민사회진영의 역할이 거세지고 민주당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위기와 관련해 당내 ‘제2의 열린우리당 창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민주당이 내년 대선 1년 전인 오는 12월 18일 이전에 신임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열어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시장 선거와 야권 통합으로 제1야당의 입지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김규리 기자] oymoon@ilyoseoul.co.kr
김규리 기자 oymoo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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