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당당한 경쟁’이 꼬리 내린 시대
‘정정당당한 경쟁’이 꼬리 내린 시대
  • 고재구 회장
  • 입력 2012-10-31 13:19
  • 승인 2012.10.31 13:19
  • 호수 96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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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談合)이란 말은 다른 사업자와 서로 짜고 물건의 가격이나 생산량 등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제3의 업체에 대해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거나, 이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담합은 시장경제 질서를 방해하는 행위이므로 주요 경제 사범으로 몰린다.

이런 불법 담합행위가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버젓이 일어났고, 또 행해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세계역사에 없는 ‘정치담합’을 통해 국회에 진출한 통합진보당의 의석수가 13석이다. 총선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의 후보경선과 관련된 부정행위는 국회의원 후보로서의 기본자질을 의심할 정도로 죄질이 불량한 것이었다.

일부 당선자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기보다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일부라는 의구심을 줬다. 대의민주주의는 행정 비용을 절감케 하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강점 때문이다. 전문성 있는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리함으로써 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후보들은 어떤 명분에서든 유권자 표심을 왜곡하는 짓거리를 해서는 안 된다. 정치공급자인 후보들이 상대적 강점을 내세워 정치수요자인 유권자들의 선택을 호소하다 보면 ‘네거티브’ 시비를 빚을 수는 있다.

공급자들은 경쟁자보다 좀 더 차별적인 상품을 통해 수요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므로 경쟁상품의 약점을 까발리기 마련이다. 경제시장에서는 수요자들이 여러 상품들을 비교하면서 가장 기호에 맞는 만족스러운 상품을 고르기 때문에 공급자들은 일정부문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게 된다. 반면 정치시장에선 다수 수요자들의 선택만이 정치시장에서 화려하게 살아남을 뿐, 소수의 선택은 버려진다. 살벌한 승자 독식의 법칙이다.

그런데 정치시장에서 정치 공급자들간 담합으로 정상 경쟁이 차단되는 심각한 정치왜곡 현상이 4.11총선 과정에 일어났고, 이 여세를 몰아 12월 대선까지 후보담합을 전제한 참담스러운 일이 전개됐다. 선거승리에만 골몰하여 서로 다른 뿌리임에 불구하고 출발부터 단일화를 기정사실화 한 각축이 치열하다. 정치수요자들이 정치상품으로 나온 다양한 후보자들을 비교 선택할 권리를 원천 봉쇄하는 정치담합이 정권교체를 위한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정치행위로 둔갑했다.

경제시장에서 기업 간의 담합행위는 수요자들이 높은 가격을 부담하는 폐단으로 기업이 부당하게 배를 불리게 되므로 적발되면 부당이득금을 추징당하고 형사처벌 당한다. 국민을 속이고 손해 보였다는 죗값이다. 그럼 정치담합의 폐해는 어떤가, 나라의 대들보까지 송두리째 뒤흔들릴 위험이 있다. 그래도 제어할 수단은 없다. 서로 조건 없이 경쟁하다가 역부족으로 선거 막바지 타 후보 지지선언하고 사퇴하는 방식을 ‘담합’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정치를 정의할 때 성공하는 것만을 일컫지 않음은 패배도 정치공학이기 때문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러번 대선에 실패하면서 우리 정치를 발전시킨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실패하면서도 큰 정치의 틀을 만들어 가야 나중을 기약한다. 정치담합이 정치개혁의 출발로 인식 받고 두 후보의 단일화를 정당화 하는 논리가 한국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정정당당한 경쟁’이 꼬리를 내리는 이상한 시대에 우리가 서있다.

고재구 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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