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전남사건 재구성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지난 2008년, 수원 소속이었던 이천수는 임의 탈퇴 처분을 받아 국내 무대에서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그에게 손을 내어 준 구단이 바로 전남이다. 이천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만연해 있었던 시기였지만 당시 박항서 전남감독을 비롯한 구단은 이천수를 영입하며 ‘축구천재’ 의 방황을 끝냈다.
하지만 이천수의 전남 생활은 개막전과 동시에 엇나가고 있었다. 개막전에서 이천수는 심판을 모독하는 행동으로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욕설 세리모니를 하는 등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끊임없이 물의를 일으켰다.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라든지 ‘데드볼 스페셜 리스트’라는 사실은 변함없었지만 너무 많은 ‘구설수’ 때문에 그를 ‘실력’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결국 이천수는 2009년 6월, 구단과도 마찰음을 내면서 ‘항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이천수는 소속 구단을 무단으로 이탈했다. 더불어 ‘이면계약 논란’을 일으키며 사우디아라비아 리그로의 이적을 감행했다.
당시 전남의 입장은 “수많은 물의에도 불구하고 구단과 코칭스태프들이 이천수를 받아줬지만 결국 그는 ‘배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쟁점이 된 부분도 이천수가 경기출전여부를 놓고 벌인 코칭스태프들에 대한 하극상과 무단이탈 그리고 이면 계약이었다.
반면 이천수는 “이면 계약에 대한 부분은 잘못을 인정 한다”면서도 “이미 사장님과 박항서 감독님도 아는 부분 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또 선수 계약 건에 관해서는 “에이전트와 구단의 문제다. 선수에게 비난이 오는 것은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입장을 내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문제가 됐던 ‘하극상 논란’에 대해서도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출전을 거부했었고 반발을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입장을 고수 했다.
이 문제를 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2009년 7월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전남으로 임대계약 기간 중인 이천수 선수가 무단이탈과 훈련불참을 감행해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했다”며 “임의탈퇴 중인 이천수가 다시 국내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소속 구단인 전남 드래곤즈가 동의(임의탈퇴 복귀요청)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때문에 이천수가 K-리그로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는 전남구단이 그를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주거나 남은 임대기간(전남의 권리 유효기간)을 전남 선수로 활동한 후에야 가능하다
현재 이천수는 여러 방법을 통해 사과와 반성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복귀를 희망하는 이천수의 움직임에도 전남은 이를 받아주지 않고 있어 양측은 평행선만 달리고 있는 상태다.
이천수의 사죄 ⋯ 전남 “진정성 보여라” 일관
올해 초 이천수가 일본 구단과 계약이 만료된 후 자신의 과거를 사죄한 것에 대해 전남구단은 “이천수가 언론을 통해 사과의 뜻을 전하고 K리그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이에 대해 전남은 임의탈퇴 선수 공시를 철회할 의사가 없다. 이천수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없고 유사 사례의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바 유사 사례의 재발 방지를 위해 제대로 된 선례를 남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임의탈퇴 철회에 관한 논의는 이천수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여 국내 프로축구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고 이들로부터 용서를 받은 후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이천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시 이런 전남의 차가운 반응과 비슷하게 대부분의 여론도 이천수를 향한 비난을 거두지 않았다. 규정과 원칙을 어기고 자신의 선배와 팬들마저 저버렸다는 비난의 이유도 여전히 유효했다.
이후 이천수가 보인 사죄의 행보는 더욱 구체적으로 변모했다. 해외 구단으로 이적하는 길이 열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K리그에 남겠다. 사죄하고 싶다’는 이유로 한국에 남았다.
한국에 남은 이천수는 반복적으로 언론을 통해 전남과 K리그에 반성과 사죄의 뜻을 전했고 전남 홈페이지에는 ‘전남 드래곤즈 구단과 전남 팬들께 드리는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전남구장을 찾아 관중들에게 직접 머리를 숙이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와 같은 이천수의 사죄에 ‘이천수를 용서해주자’는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도 ‘전남이 관용을 베풀어야 할 시기’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전담 구단 관계자는 여전히 “진정성이 특별히 다른 뜻이 있겠나? 말 그대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며 “복귀 가능성을 논의 하는 자체가 이르다”고 일축했다.
이어 “정확한 부분을 모르시는 분들이 이천수에 대해 옹호적인 것 같다”며 “잘 아시는 분들은 아직 이천수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전남의 성적이 부진하기 때문에 이천수를 영입해야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천수는 1년이나 쉬는 관계로 몸도 아직 만들어 지지 않았다”며 “당장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런 논의를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도대체 이천수와 전남의 문제는 어떻게 해석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이천수와 전남의 입장차이
이천수가 과거 전남 구단과 K리그에 남긴 과오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천수의 임의 탈퇴는 계약서나 경기력이 아니라 ‘신의’ 문제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천수의 복귀에는 그의 ‘사과’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더불어 전남의 ‘관용’이 필요한 문제가 됐다. 행정절인 절차는 사실상 며칠이면 충분히 해결가능하다.
이천수는 전남에게 ‘임의탈퇴’를 시킬 명분을 제공했다. 그렇다면 ‘임의탈퇴’를 해제 시켜줄 명분도 이천수가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구단이 ‘이천수가 진정으로 사죄하기 전에는 복귀를 시킬 수 없다’고 명시했다는 것은 ‘진정으로 사죄한다면 복귀가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구단의 입장이 이렇듯 완고하다면 이천수가 보였던 그간의 사과는 구단이 입장을 바꿀 만큼 분명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사죄의 시작은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언론을 통한 모습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구단에서 내걸었던 조건 중에서도 ‘팬에 대한 사과’만 일부 이루어졌다. 이러한 행동마저 ‘순서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천수는 구단 관계자나 연맹 관계자와 특별한 회동이 없었다. 용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구단이 ‘진정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다. 이처럼 이천수가 용서를 구하기 위해 찾아가야 하는 곳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단체에는 규정이 있다. 그 규정을 몇 번이나 무너트린 이천수는 구단에서 “재발 방지 차원으로 선례를 남기겠다”고 한 만큼 관계를 회복한 후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구단이 입장을 바꾼다면 규정과 관행을 비롯해 한국 축구의 기강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더욱이 구단에서 사과방법이나 조건을 알려주기만을 기다리는 이천수의 자세도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뿐이다.
이처럼 이천수가 구단에서 말하는 방식에 따라 진심어린 사과를 전한다면 구단의 ‘관용’을 베풀 수도 있다. 물론 이천수가 아무리 사과를 해도 전남이 받기 싫다면 그만이다.
때문에 전남도 이천수의 선수생명을 아예 끊어 놓을 목적이 아니라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때는 전남이 처음 이천수를 데려올 당시 밝혔던 대승적 차원을 통해 논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천수의 축구재능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가 가진 영향력은 K리그와 한국축구에 도움이 된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남의 용서를 바라는 이가 생기고 해당 사건이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천수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전남의 팬들 역시 이천수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한편 전남의 유니폼을 입은 그의 플레이를 보고 싶어 하고 있다.
이천수가 전남구장을 찾았을 당시 그의 싸인을 요청하는 팬들, 힘내라는 의미의 ‘파이팅’을 외치던 팬들이 그 증거다.
10년 넘게 전남구단의 팬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전남 유니폼을 입고 배신감을 안겼으니 전남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 하는 모습으로 보답 받고 싶다. 그것이 팬들이 받을 수 있는 사과다”라고 말했다.
전남이 때가 되면 이천수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 중 이보다 큰 것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천수라는 이름 자체가 전남이 이천수와 구단을 ‘한국 축구’라는 관점 속에 놓고 봐야 할 이유다.
선수가 구단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실력과 성실함이며 팬들에게 사죄하는 방법은 그라운드에서 즐거움을 주는 것뿐이다. 또 자신의 실력과 성실함을 입증하는 것은 이천수 본인 밖에 없고 그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은 구단이 유일하다.
결국 양자의 이해와 반성이 순서에 맞게 맞물렸을 때 해당 사건이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이천수는 가까운 길을 놔둔 채 너무 멀리 돌아왔다. 자신의 재능을 축구가 아닌 다른 이유로 스스로를 너무 많이 방치시켰다.
한명의 축구선수로서도 K리그라는 큰 틀에서도 ‘이천수 사건’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이 돼야 할 부분이며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