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그 첫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한국을 뛰어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당당하게 선전하고 있는 '삼성'이다.
삼성경영학은 창업자인 호암의 경영철학에서 그 틀을 형성했다. 3대 이념인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가 그것이다. 삼성의 모든 경영 활동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가 사업보국의 이념이라면 인재제일과 합리추구는 그 이념을 실현하는 수단과 행위의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인재 육성을 통해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발전시켜 국가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호암과 삼성반도체
그래서 착안한 사업이 ‘제일제당’이었다. 수입대체산업으로 우리나라에서 근대 산업시설을 토대로 갖춘 최초의 회사였다. 1953년의 일이다. ‘제일’이라는 사명은 ‘제일의 기개를 갖고, 한국 경제의 제일주자로서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크게 기여하자’라는 취지에서 채택되었다. 공장 설비는 모든 비용을 합쳐서 약 18만 달러가 소요되었는데 기계의 조립·설치·시운전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였다.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단 한사람의 일본인도 우리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기술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국내 기술자들이 달려들어 그 일을 해냈다. 제일제당의 건설로 우리 국민은 우리 손으로 제조한 싼 값의 설탕을 맛보게 되었다.
삼성은 민간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설탕 생산(1953), 서독에서 모직플랜트를 민간 무역에 의해 수입(1954), 소모복지 생산(1955), 민간 차관 제1호로 한국비료 시설용 차관 4390만 달러의 도입(1965) 등을 실현했다. 그 이후 기술 혁신의 시대를 맞이해 진공관과 브라운관(1979)·야시경(1979) 생산에 이어서 제트 엔진의 조립(1981)·X선 필름(1983)·퍼스널 컴퓨터(1983)·8미리 VTR(1983)·마이콤(1983)·64K D램(1983)·제트 엔진 부품 생산(1983)·256K D램(1984)의 개발 등으로 언제나 업계의 선두 주자로 개척의 길을 달려 왔다.
사업의 요체가 시대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통찰하는 데 있다는 신념 아래 호암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세계 시장의 추이를 눈여겨보았고, 그 속에서 배양된 국제 감각으로 언제나 한 발 앞서가는 선견력을 발휘했다.
전후 폐허 혹에서 원조 물자에만 의존하고 있던 시절, 수입대체 산업으로 도전적 모험을 했던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의 설립을 통해 삼성은 현대적인 대기업으로 한발을 내디뎠고,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 참여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첨단 산업으로의 과감한 변신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그 면모를 드러냈다.
통찰력, 창의성을 통한 자기 변신의 노력은 호암이 50여 년간 최고 경영자로서 불후의 성가를 받을 수 있게 한 절대적 비법으로 보여진다. 호암이 삼성정신의 첫 머리에 놓고 있는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개척한다’라는 창조정신은 곧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면서 미지의 분야에서 과감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선도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한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은 새롭게 살아날 수 있게 된다. 재생재흥에의 혁신적 기풍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호암의 당부는 기업가의 프론티어 정신과 직결된다.
그의 기업가로서의 프론티어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된 사례가 호암의 말년에 시작된 반도체사업이었다.
호암이 반도체사업에의 투자를 구체적으로 결심한 것은 고희를 맞은 1980년이었다. 당시 일본을 방문 중이던 호암은 전후 일본 경제부흥계획의 입안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나바 슈조 박사를 만나 그로부터 “앞으로의 산업은 반도체가 좌우한다. 경박단소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들은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 후 1982년 미국에 갔을 때 그곳의 산업 시설을 두루 돌아보고 “반도체 진출은 늦을수록 뒤쳐진다”라는 생각이 굳어져 현지에서 본사에 전화를 걸어 사업 착수를 지시하면서 본격화된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사업에 대한 호암의 집념은 시기적으로 이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그 집념은 한 나라 최고 기업인으로서 가졌던 그의 굳은 소신이기도 했다.
이건희 시대의 개막
1987년 삼성그룹의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글로벌 경영환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첫째는 1990년대부터 촉발된 소련체제의 붕괴, 동유럽 공산체제의 몰락, 중국의 개방으로 인한 경영환경의 급변이었다. 이로 인한 글로벌화가 국가의 최대 아젠다가 되었으며, 그동안 글로벌화에 내면적으로 역량을 키워온 삼성은 웅비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두 번째, 세계는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전환하고 있었다. 삼성전자 등 디지털시대의 선봉에 선 기업들이 디지털화의 선두에서 삼성그룹을 이끌었고, 이는 한국정부의 IT정책과도 맞아 떨어졌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이러한 경영환경에서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정책·기업의 역량·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이 21세기를 선도하는 창조적 기업의 탄생을 이끌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경영학은 인간존중, 기술 중시·자율경영의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 그는 선대의 삼성경영학을 창업이념으로 규정하고, 삼성그룹의 기본 이념을 견지하는 한편 새로운 삼성경영학을 강조했다.
삼성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1988년 3월 20일 창립 5주년을 맞이해 제2의 삼성경영학을 선포하였다. 제2의 삼성경영학으로서 당초 아홉 가지 항목(위기의식·인식의 전환·업의 개념·전략적 기회경영·기술 중시의 경영·인간존중의 경영·구매의 예술화·자율경영의 실천·그룹공동체 의식)이 선포되었으나 이들 중 실천되어야 하는 핵심 덕목으로 ‘자율경영’·‘기술 중시’·‘인간존중’의 세 가지 항목이 선택되어 1993년 3월 창립 55주년에 삼성경영학으로 정식 채택되었다.
전 세계에서 영입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삼성의 싱크탱크는 그 자체로도 한국의 싱크탱크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에 대한 노력은 세계최초의 기업을 육성해 고용을 확대하고, 저렴하고 우수한 제품을 전 세계에 공급해 전 지구적인 산업 부흥에 이바지 하는데 삼성의 존립의무가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 고무되어 왔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경영학에서 경영자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을 선대에 이어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경영자는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눈과 국제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또 인재를 키워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만한 일을 맡기고 생활을 안정시켜주며 희망을 주어야 한다. 또한 경영자는 인류와 국가·사회에 유익한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기업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벌어들인 돈은 어떤 형태로든 국민에게 다시 환원시켜 사회와 회사를 공존경영케 할 책임과 사명을 져야 한다.”
이건희 회장 재임 시 삼성경영학은 큰 위기에 직면했다. 바로 1997년의 IMF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위기관리 능력으로 삼성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두 차례의 위기 후 삼성의 기업실적이 괄목할 만큼 신장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건희 회장은 ‘위기경영론’의 창안자로 알려져 있다. 1988년의 회장취임 이래 거의 5년마다 독특한 위기론을 제시하면서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그는 1993년 “바꾸자(처와 자식을 빼고 모두 바꾸자)”, 1998년 “버리자(IMF 위기극복을 위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과감히 버리자)”, 그리고 2002년에는 “찾아라(5~10년 후 무엇을 먹고 살 수 있는가를 찾아보자)”라고 강조하면서 급변하는 사회·경제 환경에 대응했다. 2000년에는 신 위기론을 제시했다.
이건희 회장이 주장하는 아젠다는 삼성그룹의 본사는 물론 각 계열사의 사장(간부)을 통해 전 직원에게 전달된다. 이건희 회장은 경영에는 거의 간섭하지 않고 사장단을 중심으로 책임경영제를 실시하고 있다.
유교를 토대로 한 가족주의적 회사공동체인 삼성의 경영사상은 ‘삼성가족’을 형성하고, 삼성가족의 구성원은 삼성맨(Samsung Man)으로서 그룹 발전의 초석이 되어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한국의 전통사상과 서구의 합리사상을 접목한 한국형 회사공동체로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는 기업집단이며, 그것은 국적이 없거나 국적이 애매한 글로벌기업인 다국적 기업과는 차이가 있다.
<정리=박수진 기자>
<출처=비즈니스맵, 왜 삼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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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