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뒤엎은 안철수 ‘현상’ 의사-벤처기업인-교수-대선주자

낮엔 의사, 밤엔 백신 제작자로 7년
김규리 기자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한주 정가와 ‘골목 정치(일명 포장마차 정치)’를 뜨겁게 달군 ‘화두’였다. 현직 교수인 그가 지난 2007년 대선 이후 계속된 ‘박근혜 대세론’을 단 6일 만에 흔들었다. 그는 철옹성 같던 ‘박근혜 대세론’을 4년 만에 꺾고 서울시장 출마설에 이어 대권주자로 부상하며 ‘대권불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린 시절 독서만 좋아하던 외톨이에서 의대 최연소 학과장으로, 의사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 제작자로, 벤처기업인에서 카이스트·서울대 교수로, 그리고 정치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로 변화를 거듭한 그의 길을 [일요서울]이 짚어봤다.
안 원장의 저서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에서 나온 그의 어린 시절은 외톨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밖에도 잘 나가지 않고 혼자 지냈다. 성적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특별히 잘하는 게 있는 학생도 아니었다. 피만 봐도 무서워한 그는 의사보다 과학자를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유일하게 좋아한 것이 독서다. 2009년 출연한 MBC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그의 ‘독서사랑’은 초등학생 시절 도서관의 거의 모든 책을 독파할 정도였다고 한다. 교과서보다는 과학책이나 소설책을 좋아한 그는 “당시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읽어야 직성이 풀렸고 내용만 읽는 것이 아니라 발행월일 페이지 수까지 읽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고 3때 본격적으로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의학 석사, 박사과정을 마친 뒤 27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단국대학교 의대 최연소 학과장을 맡기도 했다.
백신 제작자부터
벤처기업인까지
그는 서울대 의대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처음으로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자신의 컴퓨터에 감염된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를 밤을 새워 분석한 끝에 ‘백신’이라는 이름의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치료에 성공했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이후 바이러스 치료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안 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무료로 배포했다.
그렇게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7년간 생활하게 됐다. 그는 당시 다른 사람에게 받은 만큼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가 군대를 갈 때쯤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유행했다. 그는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해 혼자 밤을 새워 백신을 만들어 배포했다. 입대 전날까지도 백신연구에 몰두해 가족에게 입대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인생에 갈림길을 맞게 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매년 증가해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결국 그는 14년간의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백신 제작에 인생을 걸었다. 이후 1995년에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게 된다.
연구소 설립 이후에도 개인에게는 무료로 백신을 배포하고 기업에만 사용료를 받아 운영했다. 하지만 당시 벤처 기업은 경영이 힘든 상황이었고 연구소 역시 적자를 이어갔지만 그는 꾸준히 경영을 이끌어갔다. 마침내 1999년에 연구소는 흑자로 전환되고 매출이 급증해 연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는 2005년 당시 경영 사정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그는 혼자서 이룬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해 직원들에게 무료로 주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발견하면서 그의 인생은 달려졌고 IT산업에 일조한 인물이 됐다. ‘한국의 빌게이츠’로 불리며 젊은층이 벤치마킹하고 싶은 CEO로 부상했다. 바이러스 치료 성공으로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7년간 무료로 배포한 점은 국민들에게 ‘공적 헌신’으로 평가됐다.
이후 그는 사업가의 이름을 버리고 학업의 길로 접어든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벤처 비즈니스 과정을 밟고 한국에 돌아와 카이스트 석좌교수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을 맡았다.
‘안풍’으로
대선주자까지 이어지나
정치권에서는 현재 그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는 것은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 등의 이유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의 정치 행보는 정치콘서트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안 원장은 정치콘서트로 대중과 소통하며 젊은층의 롤모델로 우뚝 섰고, 인지도와 대중성을 높여가며 기존 정치에 대한 갈증을 풀어줬다. 실제 청춘 콘서트에 열광하는 30~40대 젊은층이 ‘안풍’을 주도하고 있다. 안 원장은 3년째 월 1회씩 대담 강연을 해왔다. 지난 5월부터는 주 3회로 늘리고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하며 국민과의 소통을 이어왔다. 청춘콘서트는 ‘시골의사’로 알려진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원장과 방송인 김제동,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하는 전국 순회강연이다.
정치권에서 그의 이름은 끊임없이 거론돼 왔고 언론에도 자주 노출됐다. 그는 2010년 6월부터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제2기 민간위원직을 수행했고 국무총리 후보에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동안 그는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영입하고 싶은 인물로 꼽히며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안 원장이 차기대선에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 최고위원은 사무총장 시절부터 안 원장의 영입에 누구보다 앞장서왔다. 원 최고위원은 안 원장의 대선출마 전망에 대해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국민의 민심 폭발은 (나무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안철수 교수 정도의 공적인 헌신을 해온 분이라면 한나라당에서 진작에 모셨어야 하고 또 그런 분들이 마음껏 소신과 능력을 펼 수 있는 한나라당의 풍토를 만들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밝혔다.
안 원장은 지난 6일 박원순 변호사와 후보단일화를 이루며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대권주자로서 정치권 안팎의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이 확고해질 것이라고 정치전문가들은 말한다. 그의 대선출마가 확실시될 경우 기성 정치권에서 해소하지 못한 새로운 정치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규리 기자] oymoon@ilyoseoul.co.kr
김규리 기자 oymoo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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