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불판’ 뒤집기 3 - 박근혜-정몽준, 운명적 라이벌

조기성 기자 =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박근혜와 정몽준은 당내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꼽힌다. 박근혜는 1952년생, 정몽준은 1951년생으로 한 살 차이지만 서울 장충초교 20회 동창이고 대학도 같은 70학번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의 딸, 정몽준은 재벌의 아들이다. 어찌 보면 잘 통할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대권후보경쟁에서 운명적 라이벌로 맞서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대세론을 형성하며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는 상황이다. 정 전 대표가 연일 박 전 대표를 겨냥해 공격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이유다.
‘박근혜 대항마’ 꿈꾸는 夢의 네거티브 공세 성공할까
“두 사람이 서로 치고 받고 하면 상대방(야권)이 좋아할 것”
정 전 대표가 ‘박근혜 때리기’에 나선 것은 여권 대권후보 중 부동의 1위인 박 전 대표의 ‘대항마’로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네거티브 공세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정 전 대표의 행보는 10·26 재보선을 앞둔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을 견제하는 동시에 내년 대권경쟁에서 자신의 입지를 어필할 수 있는 최적의 시점으로 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 전 대표는 지난 8월 중순, 사재를 출연해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는가 하면,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해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지지하는 등 대권 행보에 본격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가만히 있던 박 전 대표를 건드렸다. 최근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박근혜 대세론’과 관련해 “정치인들의 인기는 목욕탕의 수증기와 비슷하다”고 선공을 날렸다.
정 전 대표는 지난달 2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도 한 때 여론조사에서 1등을 여러 번 해 봤지만 (이는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박 전 대표는 여성이고 나는 씩씩한 남성”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상속 등이 박 전 대표에게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고 박 전 대통령의 후광효과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
정 전 대표는 지난 1일에 독도토론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6일에는 그의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 출판기념회를 갖고 박 전 대표와 얼굴을 붉혔던 비화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출판기념회에 앞서 지난 4일에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남북 축구경기 당시) 박 전 대표가 나를 보더니 화난 얼굴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했다”면서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을 외치자 박 전 대표는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다시 내게 항의했다”고 공개했다.
정 전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9년 9월, 당 대표 취임 이후 가졌던 박 전 대표와의 회동을 둘러싼 마찰과 한나라당 내 세종시 특위 구성 과정에서 겪었던 박 전 대표와의 진통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정 전 대표는 “화를 내는 박 전 대표의 전화 목소리가 하도 커서 같은 방에 있던 의원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바람에 민망했다”, “마치 ‘아랫사람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투로 들렸다”는 등 박 전 대표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남·북·러 가스관 사업이 진행되면 좋지만, 남북 관계가 변화한다고 성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밝혔다.
이는 박 전 대표가 지난 3일 “가스관 연결이 한반도 평화 정착과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정 전 대표는 ‘박근혜 흠집내기가 아니냐’는 시선을 의식한 듯 “박 전 대표를 비판하기보다는 (박 전 대표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정치인이므로 경험했던 사례를 최소한 말하는 게 도리고, 국민도 알면 참고가 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 전 대표는 지난 2일 박 전 대표의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에 대해 대필 의혹도 제기했다.
정 전 대표는 ‘대필’ 의혹을 제기한 배경에 대해서는 “박 전 대표와 남북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박근혜 측, 정면 반박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의 입장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정 전 대표가 주장한 내용(전술 핵 부분)은 기고문에 들어 있지 않다”며 “대필했다는 교수를 밝혀야 한다.
또 사실이 아니라면,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정 전 대표는 아직까지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자서전에서 언급했던 내용에 대해서도 “(남북 축구경기) 당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위치에 있지 않았는데 왜 항의를 했겠는가”라면서 “정부가 해결할 사안이었다.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정면 반박했다.
박 전 대표와 정 전 대표 간 신경전이 이어지자 보다 못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나섰다. 이 전 의장은 지난 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전 대표와 박 전 대표의 공방에 대해 묻는 질문에 “보기에 딱하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인데다가 같은 정당의 대표를 지낸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인신공격, 이전투구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만 안겨줄 뿐”이라며 “두 사람이 서로 치고 받고 하면 상대방(야권)이 좋아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일각에서 들리고 있는 ‘박 전 대표를 공격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 한다’는 분석에 대해 “이는 정 전 대표에게 여론상 불리할 것이다. 신중해야 한다”며 정 전 대표의 자중론을 주장했다.
그는 또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좀 더 의연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아량을 보여야 한다”며 “언행에 신중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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