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을 앞두고 각 캠프 진영이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거나 무력화하는 것을 대표 공약으로 거론하는 것에 검찰 수뇌부로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존폐 논란의 중심에 있는 중수부는 검찰총장 직할부대로 고위공직자 비리와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된 부패 수사를 전담해온 핵심조직이다. 그렇다보니 검찰 권력의 중심 축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조직 전체의 자존심이 내걸린 사안으로 확대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검찰개혁안을 놓고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상설특검제를 꺼내들자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이 거센 반발을 쏟아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與 상설특검제는 검찰개혁 여론 무마용?
전직 대검 중수부장 출신인 안대희(57·사법연수원 7기)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이 지난 14일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상설특검제 도입과 연계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특별검사를 상시적으로 가동해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특별감찰관에게 현장조사와 계좌추적, 통신거래내역 조회 등 실질적인 조사권을 부여하고 탄핵이나 국회의 해임요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는 이상 임기 3년을 보장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았다. 안 위원장은 “국민들은 특검을 제도적으로 만들어놓는 정도를 원하는 것 같다”며 “상설 특검으로 가는 정도까지는 논의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상설특검의 권한이 강해지면 중수부 폐지 등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100건을 잘해도 1건을 잘 못 했다면 검찰 신뢰 차원에서 고칠 필요가 있다. 몇몇 사건은 내가 봐도 납득이 안된다”며 “경찰은 차관급이 1명인데 반해 검찰은 55명”이라고 검찰 수뇌부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러한 검찰개혁안의 밑바탕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 권력이 정권의 잣대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전임 중수부장의 의지가 깔려 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새누리당의 상설 특검제 도입방안에 대해 중수부를 허울뿐인 식물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수부장을 지낸 안 위원장이 박근혜 후보의 신뢰를 등에 없고 검찰개혁의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다는 점에서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50·17기. 검사장)은 지난 17일 ‘안대희 위원장 발언 관련 입장’이라는 대응 자료를 통해 “안 위원장께서 말씀하신 특별감찰관제와 소위 기구 특검의 상설특검제가 연계될 경우 공수처와 같이 제2의 검찰을 만드는 결과가 되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낭비적·비합리적 제도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상설특검제에 대해 조목조목 불합리한 점을 꼬집고 나섰다. 상설특검이라는 명목 하에 권력자들을 비호해 줄 가능성도 있고 로비 등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다 중수부를 명목상 조직으로 존치하는 것은 결국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친·인척이나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력화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최 부장은 “쇼킹하다”며 “검찰보고 문 닫으라는 거냐”고 거친 표현을 써가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100건을 잘해도 1건을 잘 못 했다면 고쳐야 한다’는 안 위원장의 발언을 곱씹으며 “검찰도 100가지를 다 잘했다고 할 수 없고, 그런 비판에 대해 알고 있다. 검찰도 내부적으로 개혁안을 고민·연구하고 있다”고 뒤받아 치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권의 검찰개혁안에 대해 현직 대검 중수부장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새누리당과 안 위원장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대검 관계자는 “중수부는 정관계 권력형 비리 수사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 지금 와서 대선 후보 진영에서 존치 문제를 거론하고 무력화 시도에 나서는 것은 검찰을 정치권 입맛대로 길들이기겠다는 것”이라며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도 정치권에서 자기 입맛대로 덧씌운 굴레일 뿐이고 검찰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체적인 개선 노력과 의지를 외면한 처사”라고 토로했다.

野 개혁안은 검찰권력 쪼개기가 초점
새누리당이 중수부 존치와 상설특검제로 검찰개혁안의 기본 축을 잡아가고 있다면 야권은 일관되게 폐지와 공수처 설치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경우 그간 검찰이 정권의 눈높이에 맞춰 기민하게 움직여온 정치검찰로 전락한 가장 큰 책임과 역할을 해온 것이 대검 중수부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문 후보는 중수부를 없애고 ‘고위공직자부패비리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이는 이명박 정권 내내 민주당 지도부가 공공연히 부르짖어왔던 중점 과제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선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기소권만 유지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에선 더 이상 검찰을 권력기구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검찰개혁은 큰 틀에서 보면 정권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중수부의 폐지는 문 후보와 당 지도부, 소속 의원들 대부분이 이견이 없는 사안”이라며 “문제는 공수처를 설치한 뒤에 제2의 검찰 권력으로 변질되는 것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에 계류돼 있고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에 차기 정부에서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결정될 추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대해선 “최재경 중수부장이 공수처 설치를 제2의 검찰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는데 검찰이 수사권까지 갖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경찰이 독자적인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검찰 권력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게 검찰개혁안의 주된 골격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안 후보 캠프 역시 공수처 설치가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개혁과 검찰개혁의 핵심 과제로 꼽고 있다. 안 후보는 이달 초 ‘정책비전’ 발표에서 대통령 친인척 및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를 전담할 공수처 설치를 공개적으로 제안하면서 검찰개혁 공약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검찰 뿐 아니라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며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됐다면 고위 공수처 신설 등 권력을 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공수처 신설 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에 검찰이 독점해온 사법경찰권 또는 수사권을 일부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재계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이를테면 공정위의 지난 삼성전자 조사 때 조직적인 방해로 압수수색권이 없어 출입구에서 공권력이 무너졌던 사례를 비쳐보면 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안 후보가) 경청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바라보는 검찰개혁안의 기본 방향은 무소불위의 사정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의 권한을 분산, 견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 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시민단체 인사는 “새누리당의 중수부 존치-특별감찰관제 공약은 검찰개혁이 아니라, 대선 기간 검찰을 겨냥한 개혁의 여론을 무마하고 그 예봉을 피해나가기 위한 꼼수”라며 “박 후보는 검찰개혁을 할 것처럼 분위기만 조성할 뿐 실질적인 검찰개혁 공약은 단 한 개도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 후보는 중수부장 출신의 안 위원장을 캠프와 새누리당 내 측근 비리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세운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다”며 “두고 볼 일이지만 특별감찰관제와 상설특검제는 검토하는 수준에서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역공, 대선후보들 측근비리 훑기
대선후보 간의 검찰개혁 공약경쟁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에 내심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검찰이 후보 측근 또는 캠프나 당내 소속 의원들의 비리 훑기로 정면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말들이 대검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또 다른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권력형 비리 중 불기소 처분된 사안들에 대해 다시 사실관계를 파헤쳐 혐의를 적용할 만한 사건들을 들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는 정우택 의원을 둘러싼 선거부정 사건은 검찰 주변에서 심심찮게 재수사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검찰은 지난 10일 4.11 총선 당시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았던 정 의원(충북 청주 상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은 2010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 의원이 지방의원 7~8명에게 정치자금을 뿌렸다고 폭로한 손인석 전 새누리당 청년위원장의 진술을 토대로 민주통합당이 고발한 것이다.
사건을 수사했던 청주지검은 의혹을 무혐의로 처분했지만 스스로 “정우택의 스폰서였다”며 실토한 손씨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구속된 손씨는 자술서에 “정 의원이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불법적인 선거자금을 살포했고 제주도에서 성상납을 받은 것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정 의원이 2007년 대만에서 성접대를 받았고, 미국에서 1000달러를 정 의원 가족에게 제공했다고 털어놓았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국감에 앞서 손씨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면서 정 의원이 연루된 각종 의혹에 대해 무혐의로 처분한 이유에 대해 집요하게 따져 물어보니 대선 불개입 때문이라고 둘러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검찰이 박근혜 후보에서 악영향을 줄 사안들은 철저히 눈감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특히 손씨는 <충청리뷰>를 통해 보도된 2010년 지방선거 때 불법 정치자금 수수 및 배포를 폭로한 대목에선 “정 지사는 길 위에서 돈을 주고 받았다. 차를 세워놓고 동승자를 모두 내리게 한 뒤 돈을 주거나 받을 사람만 태웠다”며 “(2010년) 5월19일 솔밭 공원 앞에서 차에 탄 사람은 충주지역 경제인 Y씨였다. 5월31일에는 ‘청주권 지방의회 후보들에게 나눠주라’며 1000만원을 직접 돌렸다”고 했다. 이 의혹은 어떻게 확대되느냐에 따라 박빙의 혼돈 속에 놓인 대선정국에서 충청권은 물론 전국적으로 표심 이동을 자극할 소재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친박 인사들의 비리들이 추가로 포착돼 확인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후문도, 그 수준이 핵폭탄급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검찰 주변에서 떠돈다.
대검 관계자는 “대선 후보들의 중수부 무력화 공약에 맞서 세간에 떠돌고 있는 정치권의 비리와 의혹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있다”며 “이번 대선만큼은 검찰이 개입했다는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 9월 이후 대선후보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홍사덕·송영선 사건 수사 진행 상황 브리핑은 가급적 자제하고, 내사 중인 정치권 비리나 정보수집 활동에 속도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캠프들이 검찰 흔들기를 본격화한다면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해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확인된 사안들 중에는 파괴력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미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것이지만 수면 위로 떠오르면 후보나 당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대선후보들이 공약사항으로 중수부 존폐를 거론하고 있다면 검찰 수뇌부는 중수부가 존재해야 될 이유를 국민들에게 가장 잘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어떤 식으로든 대선후보들과 검찰 권력은 검찰개혁 공약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서 있다. 검찰은 여차하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선판에 뒤흔들 놓을 기세로 정치권과의 격돌을 피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배수진을 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 캠프들이 검찰의 반대급부를 무릅쓰고 검찰개혁안을 내놓을지 지켜보는 것도 올 대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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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