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국서의 여섯 번째 햄릿, ‘햄릿6 - 삼양동 국화 옆에서’
기국서의 여섯 번째 햄릿, ‘햄릿6 - 삼양동 국화 옆에서’
  • 이창환 기자
  • 입력 2012-10-22 17:36
  • 승인 2012.10.22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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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성폭행 희생자 등 시대 모순 담아...한국의 문제작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서울시창작공간 남산예술센터에서 2012 시즌 마지막 작품으로 한국현대연극의 문제작 <햄릿6 : 삼양동 국화 옆에서>를 11월 6일부터 11월 25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햄릿6 - 삼양동 국화 옆에서는 기국서 연출이 22년 동안 선보이는 역사 깊은 작품이다.
 
<햄릿6>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엇이 청산되지 않은 과거이냐‘를 묻는 게 아니고, 그로 인해 오늘날 병폐를 가져온 사회의 모순들, 권력의 추악함을 들춰낸다. 연극의 언어는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성 징후에 시달리는 햄릿을 통해 쌍용자동차 문제를, 냉동고에서 신음하는 망령들의 독백을 들으며 용산참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시체유기를 하는 기관원들의 대화에서는 장준하의 의문사를, 망령들의 독백 속에서는 현대 사회에 약자라는 이유로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이 중첩된다.
 
기국서 연출은 다시 햄릿을 떠올렸을 때 부제를 ‘어둡고 우울하고 축축한 동화’라고 붙여보았다고 한다. 관객들은 눈앞에 마치 어린 시절 살았던 혹은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것 같은 오래된 풍경을 보게 된다. 인물들은 서로의 관계보다는 처해진 상황에서의 언어의 힘으로 드라마를 지탱한다. 이 작품은 연극의 리얼리티, 드라마의 개연성을 가지기 보다는 장면마다 이어지는 햄릿의 사색이 중심이 된다. 각 장면은 꿈(유령), 사랑, 폭력, 연극, 어머니, 철학과의 만남으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건이 환각처럼 나타나는 형식이다.
 
그러나 햄릿이라는 캐릭터가 온갖 고민과 문제들을 떠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입 열지 않았던 것, 함부로 풍자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연출은 그 자물쇠를 모두 풀어버린다.형식 또한 영화적인 요소를 걷어내면서도 매우 빠른 리듬을 가진다. 그것은 스토리텔링에 의존하기보다 햄릿의 의식(인식)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언어의 무게감보다는 리듬감을, 사회적 이슈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통렬한 시선을 보여준다.
 
햄릿6 : 삼양동 국화 옆에서, 2012년 대한민국의 금지된 자물쇠를 풀다
 
기국서 연출은 1981년 <기국서의 햄릿>(국립극장 소극장)을 시작으로 1990년 <햄릿5>(문예회관 대극장 /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까지 9년 여간 햄릿 시리즈 다섯 편을 연달아 무대에 올리며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실험극의 대표 연출가이자 연극계의 이단아로 불렸다. 2008년 이후 <햄릿6 : 삼양동 국화 옆에서>를 들고오기 전까지는 대학로에 발을 들여놓지도, 공연을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기국서 연출은 최근 흥행 영화 <도둑들>에서 홍콩 조직의 보스 웨이홍으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또 하나 1984년 <관객모독> 당시에는 그의 이름과 극단 76을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기국서 연출의 새로운 연극연출 양식의 실험은 극단 76출신의 연출가 박근형, 김낙형으로 이어지는 극사실주의의 한 획을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여전히 대학로에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무대언어를 가진 연출가로 손꼽히고 있다.
 
이번 <햄릿6>는 과거 <햄릿> 시리즈가 ‘대본검열’이라는 압박 속에서도 통렬한 시대정신으로 무장했듯이 2012년 대한민국 정치사회 모순을 직시하고 과거보다 더욱 날선 칼날을 들이댄다. ‘삼양동 국화 옆에서’라는 부제는 이 극의 배경으로서 삼각산 자락 아래 미아동 근처에 자리 잡은 삼양동 오래된 골목길의 ‘국화’라는 낡고 오래된 카페를 의미한다. 이 부제가 상징하듯 <햄릿6>는 지금 여기 있지 않으나 언젠가 존재했던 익숙한 풍경을 끌어온다.
 
기국서 연출이 20여년 만에 무대로 다시 불러내는 햄릿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무자비한 노조탄압작전으로 물고문을 받다 죽어 정신분열이 된 햄릿의 원혼이다. 햄릿을 괴롭히는 망령들은 용산참사의 희생자들, 성폭행 피해자들, 쌍용자동차 파업의 자살자들이다. 그런 햄릿을 위해 몸을 팔면서도 헌신하고 사랑하는 오필리어, 연극 연출가로 그들을 위해 즉흥극을 보여주는 호레이쇼 등 셰익스피어의 원작은 기국서 연출에 의해 해체되고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
 
최근작 <뻘>, <목란언니>, <1동 28번지, 차숙이네>등 다양한 작품에서 그 누구도 대체 할 수 없는 캐릭터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배우 윤상화가 6대 햄릿으로 캐스팅되었다. 기국서 연출의 <관객모독>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두 사람은 이번 공연에서 새로운 햄릿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또한 남산예술센터 2011년 자체제작 공연 <됴화만발>의 젊은 배우 안창환이 햄릿 역에 더블 캐스팅 되어 각기 다른 색깔의 햄릿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hojj@ilyoseoul.co.kr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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