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戰 패배 수모…무엇이 문제인가?
이란戰 패배 수모…무엇이 문제인가?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2-10-22 14:30
  • 승인 2012.10.22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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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희 감독 <사진=뉴시스>

대한민국의 축구는 없다

한국축구대표팀이 결국 테헤란의 모래바람을 극복하지 못했다.

최강희 감독의 한국축구대표팀은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간) 이란의 테헤란에 위치한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열렸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4차전 이란전’에서 0-1로 패배했다.

선수 1명이 퇴장 당한 이란에게 수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결국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이로써 한국은 월드컵 최종예선 첫 패배를 기록했다. 2승1무1패로 승점 7점에 머문 한국은 역시 2승1무1패를 기록한 이란과 승점도 같아졌다. 다만 골득실(한국 +5, 이란 +1)에 앞서 조 1위 자리만 간신히 지켜낼 수 있었다.

한국축구대표팀은 이란 전을 마지막으로 올해 최종예선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이제 내년 3월부터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행보를 재개한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남아있는 최종예선을 전망하며 언론을 통해 선수기용부터 전술 문제까지 한국축구대표팀의 문제점을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분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단조로운 공격 패턴’과 ‘잘못된 선수 활용법’이 지적됐다.

과연 이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의 축구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전술문제는 결과론적인 지적밖에 되지 못한다. 선수들의 문제도 컨디션, 잔디 상태 등 변명의 여지가 수두룩하다.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대한민국의 축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축구대표팀의 유니폼과 선수들의 얼굴만 가렸다면 ‘한국이 축구를 하고 있다’고 말해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축구는 어떤 것이었나?

모든 국가와 인종은 저마다 특성을 갖고 있다. 축구에서도 그 특성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은 특유의 선천적 탄력으로 경기를 지배한다. 유럽은 우월한 신체적 조건과 선진 축구 시스템을 기반으로 완벽한 전술을 내놓고 있다.

더욱 가까운 예를 들어 한국이 월드컵 최종예선마다 만나는 중동 국가들은 체구가 작은 것을 활용해 대부분 개인기와 스피드에 의존하는 경기를 구사한다.

반면 이번 상대였던 이란은 여타 중동 국가와는 달리 타고난 신체 조건을 앞세워 선 굵은 축구를 추구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한국 축구를 괴롭힐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축구’는 어떤 것이었나? 대한민국 축구 사상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었던 히딩크의 한국 축구대표팀부터 살펴보면 비교적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은 ‘체력’, ‘압박’, ‘올라운드 플레이어’ 그리고 ‘투혼’으로 대변됐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기술력은 히딩크도 부임하자마자 “기술적인 것은 보완할 곳이 없다”고 평했을 만큼 뛰어났다.

올림픽 사상 최초 메달 획득에 성공했던 홍명보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잘 나타났다.

대표팀이 올림픽 3‧4위전에서 일본전에게 승리를 거둔 직후 외신들은 한국 축구에 대해 “일본은 한국의 골문을 위협하지 못했다”며 “한국의 무서운 압박에 일본 패스 축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해외파를 비롯한 선수들의 기술은 더욱 향상돼 있었고 TV를 시청하는 국민들에게까지 투혼이 느껴질 정도였다.

문제는 최근 한국축구대표팀의 경기를 살펴보면 이 중 어느 것 하나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볼을 가진 선수를 순식간에 2~3명이 에워싸던 한국 특유의 압박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 막판에는 체력이 전부 소모된 듯 보이는 경기가 자주 나타났다.

빠른 발을 이용하는 공격수들의 움직임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다양했던 공격 패턴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당연히 ‘올라운드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상대 기를 죽이던 ‘투혼’조차 느낄 수 없었다.

한국은 아무런 ‘강점’도 없이 경기를 치르고 있던 것이다. 다만 해외파 선수들에게 거는 기대와 ‘우리는 월드컵 4강 진출국이다’라는 자신감만 엿보였다.

현 시대 축구 최강자인 스페인에게는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오가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 짧은 패스 위주의 스타일)’식 패스 축구가 있고, 국제 대회만 나오면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독일에게는 막강한 ‘조직력’이 있다.

하물며 일개 클럽들도 자신들만의 강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점점 자신만의 색을 잃어가고 있다.

▲ 지난 7월 20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런던 인근 스티브니지 라멕스 스타디움에서 한국 축구 올림픽대표팀과 세네갈 대표팀과의 평가전이 열린 가운데 박종우 선수가 동료와 함께 상대를 압박해 볼을 뺏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제점과 해결책

한국 축구는 왜 한국 축구만의 강점을 잃어버렸는지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 우선 그 문제의 시작은 너무 잦은 감독교체에 있다.

히딩크도, 홍명보도 단기간에 강력한 대표팀을 만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 대표팀은 김호곤 당시 감독대행부터 최강희 현 감독까지 총 9명이나 수장을 거쳤다.

대부분 1년 남짓한 재임 기간이었다. 그것마저 여론과 축구협회의 결정에 따라 선수를 구성하고 전술을 입히는 데 다 써버린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히딩크식 축구를 입은 대표팀의 다음 감독직은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맡은 바 있었다. 이후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백 등이 거쳐 갔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히딩크가 만들어놓은 대표팀에 나만의 강점을 보태겠다”고 선언했었고 조광래 감독은 ‘스페인식 패스축구’를 모방해 ‘만화축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만약 이들의 강점들이 대표팀에 모두 흡수됐다면 스페인은 명함도 못 내밀 강팀이 돼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왔다. 한국은 이도저도 아닌 팀이 돼버렸다.

비록 허정무 감독이 지난 2010년 월드컵에서 원정 최초 16강 진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비난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한국축구대표팀을 맡은 감독들마다 가지고 있는 전략과 강점을 입힐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지 않았고 그 시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아울러 원래 한국 축구의 색과 강점은 모두 벗겨 내고 자신만의 팀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대표팀을 흔들었다. 한국만의 기본적인 축구가 구축되지 않았는데 문제점 몇 가지를 고친다고 강력해 질 수는 없었다.   

결국 대표팀은 대한민국 축구만의 강점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이 4강에 한 번 올랐다고 해서 축구 선진국이 아니다. 여전히 발전을 이뤄 가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 축구의 정체기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그 기반에 장기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성인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유스 팀 등의 팀들이 따라갈 수 있는 어느 정도 통일된 ‘한국’ 축구만의 철학이 그 시작점이다.

감독 교체를 할 때마다 대표팀의 축구도 바뀌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한국을 대표하는 팀들은 이런 플레이를 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이것이 경쟁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대한축구협회가 나서야 한다. 이러한 철학을 축구 정책으로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 유소년 축구 시스템 구축과 함께 ‘한국적 축구 스타일’을 주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성인 대표팀에서 절정을 맞이할 수 있도록 유도 하는 것이 축구협회가 할 일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축구가 배워할 점은 스페인식 패스축구가 아니다. 원조를 따라해 봐야 원조를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스페인 축구협회가 나라 전체의 축구를 어떻게 관리하는 지를 본받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월드컵 신화’를 보기를 희망한다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대표팀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을 모두 잃어버리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어야 할 시점이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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