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귀국은 당파를 떠나 얼마나 오랫동안 정치권에 몸담았느냐를 기준으로 입장이 달라지는 희한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통의 경우,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정당에 따라 입장 정리를 하지만 이번 일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정치권에 오랫동안 몸담은 중진급 이상은 그의 귀국에 대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반면, 이제 갓 정치에 입문한 초선의원들은 내심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말을 되짚어보면 대우그룹이 몰락하던 당시에 어떤 상황에 있었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가 다르다는 말. 세간에는 김 전 회장이 DJ시절 그룹이 침몰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에 숱한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여기에 깊이 관여된 사람은 ‘반대’를, 또 관여되지 않은 사람은 ‘찬성’ 의사 표현을 하고 있는 것. 그런데 문제는 이들 중진급 의원 중 몇 몇은 이미 ‘대권주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김 전 회장의 귀국을 두고 ‘잠 못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가에서는 열린우리당의 C의원, L의원, K의원을 대표적인 ‘반대 세력’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의 H 의원의 심기도 요즘 통 불편해졌다는 것이 정계 관계자의 설명. 그런가하면 이른바 ‘친노세력’으로분류되는 열우당의 L의원, S의원, K의원 등은 내심 환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이 귀국한 후에 쏟아낼 ‘X파일’에 본인들의 이름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설령 그들이 지난 90년 당시 정치에 입문하지 않아서 리스트에서 빠졌다고 하더라도, ‘이름이 빠졌다’는 것 자체가 깨끗한 이미지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 특히 열우당의 몇 몇 초선의원들 사이에서는 김 전 회장의 귀국을 잘 활용하자는 얘기도 솔솔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요즘처럼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의 귀국이 여러모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실제로 나온다”고 말했다.
정치권과는 달리, 재계의 발걸음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재계에서는 김 전 회장의 귀국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다. S그룹의 한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귀국과 관련해 그룹 차원에서 코멘트할 입장은 아니지 않느냐”며 “개인적인 생각 이외에는 말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H그룹의 한 관계자도 “귀국과 관련해 입 조심하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전경련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전경련 경제정책위원회와 금융조세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전경련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김 전 회장에 대해 논의하지는 않겠지만,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김 전 회장의 귀국과 관련해 속내를 많이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지만,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인 듯하다.
특히 과거 김 전 회장과 동고동락한 대우출신 임원들은 노골적으로 그의 귀국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직 대우그룹 출신 임원들의 모임인 ‘대우인’은 김 전 회장 돕기에 팔을 걷어붙인 모습. 대다수의 다른 재벌그룹 총수들도 그의 귀국에 대해 내심 환영의 기색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몇 몇 재계 인사들의 경우, 김 전 회장과 얽히고설킨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어 그의 귀국이 문제의 해법이 되지 않을까 주목하고 있다. 반갑지는 않은 얼굴이지만, 어쩔 수 없이 환영해야하는 아이러니한 형국인 셈이다. 관가에서는 어떨까. 사실 관가에서는 그의 귀국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비율이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의 경우는 현재 국내의 경기가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 전 회장의 귀국 자체가 아니라, 그의 귀국 이후에 불어 닥칠 폭풍이 국내 경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 만일 김 전 회장의 귀국이 정치권 파장으로 번질 경우, 국내 경기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반대’ 의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과의 ‘악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전 재경부 장관 K씨와 L씨가 대표적. 이들은 현재 관가에 몸담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 90년대 후반 정부의 요직에 앉아 대우그룹의 침몰 과정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만일 김 전 회장의 ‘X파일’이 열릴 경우, 이들의 명예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의 귀국을 둘러싸고, 내심 찬성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각각인 것이다.
# 돈과 권력에 울고 웃은 정경유착 상징
전현직 대통령과 김우중 애증관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이 임박함에 따라 전현직 대통령과 김 전 회장간의 애증관계가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김 전 회장은 특히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 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향후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회장과 YS의 첫 인연은 악연으로 시작됐다. 92년 대선 당시 신당창당 및 타 후보 공개 지지선언 등으로 YS의 심기를 건드렸던 김 전 회장은 YS가 당선되자 급히 김 전 대통령을 찾는다. 당시 김 전 회장은 YS에게 건네줄 수십억원대의 비자금을 챙겼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YS의 노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YS를 만나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김 전 회장에게 YS는 “1분안에 돌아가지 않으면 대우그룹을 해체시키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발길을 돌렸다는 후문이다. 김 전 회장은 이후 YS의 차남 현철씨의 장인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으나 여의치 않자, 당시 YS의 핵심 참모였던 김모 변호사를 찾게 된다. 김 변호사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YS와 관계를 복원한 김 전 회장은 YS시절 대우그룹을 국내 4대그룹으로 성장시키는 등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김 전 회장과 DJ는 좋은 인연과 악연을 모두 경험했다. 김 전 회장과 DJ의 직접적 인연은 80년대 후반 DJ가 평민당 총재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DJ가 대우 공장 준공 행사 등에 참석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가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97년 대선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은밀히 DJ를 지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
DJ 정부시절 김 전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된 것 역시 ‘청와대의 의중’이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김 전회장과 DJ는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러한 밀월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김우중식’ 외환위기 극복책의 문제점과 대우그룹의 어려운 자금사정 및 구조조정 지연문제를 지적하는 보고서가 수없이 DJ에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99년 5월 당시 천용택 국정원장은 ‘김우중 회장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고 보고했고, 이후 DJ는 김 전회장의 여러 차례 독대 요청을 거절했다. 결국 대우그룹은 해체 수순에 돌입했고, 김 전회장은 99년 말 해외로 출국해 지금까지 ‘국제미아’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 전 회장의 인연도 초미의 관심사다. 노 대통령과 김 전 회장은 87년 대우조선사건 때 노 대통령이 노동자였던 이석규씨의 사인 규명 작업을 하다가 구속,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던 악연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이런 악연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대우 사태와 관련해 김 전 회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자주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1월 대우조선을 직접 방문하는 등 대우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정혜연,홍성철 chy@ilyoseoul.co.kr,anderia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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