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영입으로 PK노리는 野

“2KM(김두관, 김정길, 문재인)이 뜨면 부산경남도 사정권”
부산 18석 중 10석, 경남 17석 중 8석, 울산 6석 중 3석
조기성 기자 = 여의도 정가에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야권이 부산·경남(PK) 지역에서 10석은 무난히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와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등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인데다 지난 20년간 지역을 독점해온 한나라당에 대한 반(反) 한나라당 정서가 퍼져나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나라당이 2004년 탄핵 정국에서도 굳건히 지켰던 텃밭이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PK 중에서도 특히 부산은 ‘전통의 야도(野都)’였다. 1967년 제7대 총선부터 3당 합당 전인 1988년 13대 총선까지, 군부 정권 계열의 공화당·민정당은 부산에서 신민당·민주당 등 야당 경쟁자보다 많이 득표한 적이 없다(신군부 쿠데타 직후 야당이 무력화된 채 치러진 1981년 총선만 예외다). 지난 지방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역대 최대 득표율을 올린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부산 민심을 두고 “지금 부산에는 ‘3당 야합’ 이전 야도(野都) 시절 그 분위기가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12·13대 총선 때 부산에서 배지를 달았던 경력이 있는데, 그때 분위기가 연상될 만큼 ‘밭의 토양’이 바뀌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3당 합당 이후 PK 지역은 TK(대구·경북)와 함께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PK는 과반수가 훨씬 넘는 56.2%의 지지율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도 전체 41개(부산 18, 경남 17, 울산 6) 지역구 가운데 29개 지역에서 당선자를 냈고, 사실상 한나라당 성향의 무소속 후보 8명(이후 모두 한나라당에 입당)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90%에 해당하는 37개 지역을 휩쓸었다.
분위기는 지난 6·2 지방선거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6·2 지선의 뚜껑을 연 결과,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여유 있게 승리했던 한나라당은 PK 민심의 이반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나라당 후보였던 허남식 현 시장이 44.57%의 득표율을 올린 김정길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3선에 성공했지만 역대 부산시장 당선자 중 최저 득표율(55.4%)을 기록해 ‘반쪽짜리 승리’라는 오명을 들었다. 역대 부산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은 모두 6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했었다.
경남지사 선거에서는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를 누르고 승리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부산시장이나 경남도지사 선거 모두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 심지어 40대까지도 야당 후보들이 우세했다. 50대, 60대 이상의 연령층이 몰표를 주지 않았다면 부산시장 선거 결과도 낙관할 수 없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김정길 후보가 올린 44%의 득표율은 역대 야당 후보가 부산에서 올린 최고의 득표율이었다. 그 이전까지 부산 야권 후보의 최고 득표율은 199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얻은 36.7%의 기록이었다.
野, 거물급 영입 박차
영남출신 인사들 정기모임
지난 지방선거에서 가능성을 보인 이후 PK 지역이 다시 야도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19대 총선 출마예상자들의 PK 지역 출마 기피 현상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PK 공략을 위한 야권의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차기 총선에서 더 이상 PK 지역이 한나라당의 텃밭이 아님을 결과로써 보여주게 될 것”이라며 “부산 18석 중에 10석, 경남 17석 중 8석, 울산 6석 중 3석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길 전 장관은 “2KM(김두관, 김정길, 문재인)이 뜨면 부산경남도 야권이 파고들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야권연대의 견인차 구실을 하겠다는 의지를 줄곧 시사, 차기 총선에서의 역할을 기대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이사장은 부산·경남 지방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라며 “그 분이 만약 그 지역을 책임 맡아서 총선을 지휘해준다고 하면 상당히 많은 부산·경남·울산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민주당으로서는 바라는 바다. 또 그 분이 그렇게 나서주는 것이 우리 민주개혁 세력에 필요하다고 본다”고 내년 총선 때 PK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비중 있는 정치인의 부산 출마를 설득하면서 판을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김영춘 최고위원이 부산진갑에 출마를 선언했고, 김정길 전 장관은 영도구 출마를 검토 중이다. 부산 동인고 출신의 김형주 전 의원, 부산 데레사여고 출신의 전현희(비례대표) 의원,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한의사 김종삼씨, 부산 동성고에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과거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을 주도한 백태웅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 박재호 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등이 민주당의 연대 또는 영입 대상으로 거론된다.
친노(친노무현) 진영에서는 이미 뛰고 있는 인사들이 있다.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최인호 전 대통령국내언론비서관이 일찌감치 부산 사하갑으로 주소를 옮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부산 서구지역위원장(변호사)도 총선 출마가 확실시된다. 영남권 유일의 민주당 현역 재선 의원인 조경태 의원은 부산 사하을에서 3선에 도전한다. 지난해 4월 재·보선 때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근소한 차로 졌던 송인배 경남 양산지역위원장(전 대통령사회조정2비서관)도 설욕전을 준비 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를 접었던 전재수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 등 기존 전력의 복귀도 시당으로서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전 전 실장은 18대 총선에서 부산지역 야당후보로서는 가장 많은 득표(38.6%)를 기록했었다.
민주당 영남미래위원회 위원장인 김영춘 최고위원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현재 법률가, 교수, 기업인 등 수도권에서 활동 중인 PK 출신 인사들을 접촉 중”이라면서도 “총선까지 8개월이 남아 있는 시점에 직업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출마선언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최인호 부산시당위원장은 “느리지만 영입작업이 조금씩 속도를 내는 중”이라며 “이덕욱 변호사 등 당내 훌륭한 자원들과 외부인사를 적절히 조합해 최상의 라인업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의 영남지역 중진 정치인들 역시 내년 총선·대선에서의 역할론을 내세우며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고 있다.
경남 창녕 출신으로 17대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민주당 김태랑 전 의원은 “영남 출신의 야당 정치인들과 월 1회 정기적 모임을 갖고 각각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한나라당의 잘못으로 인한 반사이익이 아니라 민주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김혁규 김정길 윤원호 이근식 전 의원 등 10여 명이 참석하는 모임에서 김정길 전 장관의 대권 도전과 김두관(무소속) 경남지사 영입 및 대선 출마 등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춘 최고위원은 “PK 지역은 한나라당 지배정서가 워낙 강한 지역이지만, 더는 한나라당 일당 정치로는 좋은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고 있어 내년 총선에서 반한나라당 바람이 불 것”이라고 총선을 전망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지금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면 PK에서 쉽지 않다”는 ‘위기감’을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유기준 의원은 “오죽하면 부산저축은행 예금 및 후순위채권 전액을 보상하자는 법안에 서명했겠느냐”고 말했다. 박민식 의원은 “10석까지는 몰라도 PK에선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얻은 게 없다’는 상실감이 크다. 최근 악재가 겹치면서 지지자들이 관망층으로 넘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영달 전 의원, PK출마 -
정세균 ‘남부민주벨트론’ 주창
호남 출신인 장영달 전 민주당 의원이 “경남에서 진보개혁세력의 단일대오를 만드는 데 헌신하고자 한다”며 내년 총선에서 경남 지역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장 전 의원은 “함안·합천·의령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진보개혁의 새로운 교두보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장 전 의원의 출마 선언은 PK 지역에서도 “해볼 만하다”는 민주당의 내부 분위기를 방증한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이미 ‘남부민주벨트론’을 앞세워 바람몰이하고 있다.
부산·경남 및 광주·전남의 개혁적 민주시민들과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운동적 역량을 배가시켜 2012년 정권교체와 새롭게 들어설 민주정부의 안정적 세력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민주화 운동의 역사의식과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의식을 결합해 광주·전남과 부산·경남의 민주라인을 구축하겠다”며 “국민적인 반(反)이명박-한나라당 정서를 민주주의 의식으로 발전시키고 민주 세력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키겠다”고 밝혔다.
남부민주벨트를 통해 영호남의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남부지역의 민주시민과 진보개혁지식인 등의 정치세력을 결합한다는 구상이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지방선거 때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있었고, 민심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남부민주벨트를 잘 만들면 두 자리 수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 후보 고전
정가의 관심은 민주당의 PK 공략에 대한 희망 섞인 자신감이나 한나라당의 민심 이반에 대한 우려가 실제 어느 정도 현실화될 것이냐에 모아진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는 내년 총선에서 실제 한나라당 후보들이 고전을 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5월 PK 지역 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라는 응답이 29.3%로, ‘여당 후보를 지지하겠다’(27.4%)라는 응답을 앞질렀다. 특히 울산 지역에서 ‘야당 후보’ 지지 성향이 높게 나온 점이 눈에 띈다. 35.2%(야) 대 24.8%(여)로 오차 범위를 벗어나서 앞섰다.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는 오차 범위 내에서 근소하게 ‘야당 후보’가 앞섰다.
또한, 지난 5월 [리얼미터]가 실시한 PK지역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 35.0% vs 야권 42.6%로 야권단일화 후보가 7.6%p나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부산·경남이 대구·경북과 민심이 많이 달라 한나라당 쪽에서 수도권 못지 않게 어려운 쪽이 PK라는 이야기들이 있다”면서 “문재인 이사장이나 김두관 경남지사가 포진해 있는 야권에서도 PK를 정면돌파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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