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열의 광고비평 시리즈] 발칙한 상상력 부추기는 현대오토콤 블랙박스 광고
[김재열의 광고비평 시리즈] 발칙한 상상력 부추기는 현대오토콤 블랙박스 광고
  •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대표
  • 입력 2012-10-15 14:21
  • 승인 2012.10.15 14:21
  • 호수 963
  • 4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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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觀淫症) 심리 이용하는 ‘몰래카메라’ 이미지 걱정스러워

나무꾼과 선녀의 사랑은 산 속 개울에서 멱을 감는 선녀를 나무꾼이 몰래 엿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우리는 이 나무꾼을 음란한 사람으로 보질 않지만 동양화 속의 단오절 창포물에 몸을 씻는 아낙들을 사내들이 몰래 엿보는 모습은 성적 충동을 은근히 유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런데 요즘의 ‘엿보다'라는 은밀함은 아예 부정적인 뜻으로 낙인찍혀 있다. 사람에겐 무언가를 엿보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성(性)과 관련돼 충동적 욕구가 일어나면 이를 관음증(觀淫症)이라한다. 글자 그대로 ‘음란한 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증세'다.

▲ 먼로의 '통풍구 드레스' 모습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통풍구 드레스’ 하나로 먼로는 일약 세계적 섹시스타가 됐다. 작년 7월 미국 시카고 ‘파이어니어 코트(Pioneer Court)’에 먼로 동상이 세워졌다. 단번에 관광명소가 되며 몰려든 남성들이 치마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거나 동상 다리에 기대 선정적 포즈를 취한다. 몇 년 전 롯데칠성 음료 ‘아일락' 광고도 모델 고아라의 짧은 치마 속이 소재다. 카피가 ‘보일락 말락 아일락'이다. 치마가 바람에 날려 속이 보이려는 순간 대형 ‘아일락’ 병 뒤에 숨으며 관음증을 자극했다.

요즘 주로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 방영되고 있는 현대오토콤의 블랙박스 광고도 이러한 관음증을 유발하려는 듯싶다. ‘내 차안의 변호사’를 주제로 한 CM Song은 ‘블랙박스 달아/오리발도 안 통해/우기기도 안 통해/본다본다 다 본다/블랙박스 다 본다/내 차안의 변호사/블랙박스 다 본다’이다. 세상일은 모르기 때문에 자사의 ‘다본다’ 제품은 위험한 일을 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짧은 치마 차림의 젊은 여성 모델이 춤을 추며 시작되는 이 광고는 인기 TV프로그램이었던 ‘솔로몬의 선택’ 패널인 김병준 변호사가 등장해 여성 모델을 태우고 은근한 미소를 띤 채 자동차를 몬다. 그리고 이 여성 모델이 자동차에서 내릴 때의 초미니 스커트의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과 동시에 한편에선 서너 명의 사내들이 흐뭇하게 웃는다. 

여성의 발랄한 댄스와 경쾌한 음악이 고객들의 눈과 귀를 다소 붙잡고 있긴 하지만 이 광고는 우선 ‘내 차 안의 변호사’라는 주제부터가 삐꺽거리는 듯하다. 블랙박스는 운전 중 차량 주변 상황을 녹화하는 영상 기록 장치다. 아찔한 자동차 사고나 특히 최근 어두운 주차장이나 으슥한 골목길에서 일부러 사고를 내는 범죄가 많아지고 있어 여성 운전자들의 설치가 늘고 있다. 블랙박스의 기록은 차량사고 분쟁이나 각종 범죄 등의 증거물이다. 변호사는 단지 이 같은 사건 등의 소송을 대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증거물의 대상은 아니며 이런 일엔 변호사가 그다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광고가 블랙박스를 변호사의 역할과 일치시키고 있는 것은 고객 설득과정에서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는 것이다.

▲ 현대오토콤의 블랙박스 tv광고 장면
이보다도 이 광고가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것은 광고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 본다’는 CM과 함께 짧은 스커트의 여성 모델을 내세워 블랙박스가 마치 여성 치마 속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몰래카메라인양 광고소비자들의 관음증을 유발하고 있는 점이다. TV 오락프로그램에서 자주 활용되는 몰래카메라는 감시기능과 엿보기 심리를 적절하게 결합하고 수위를 조절한 것이지만 최근 들어 일반인들 특히 여성들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적 섹시 아이콘인 샤론스톤이 출연한 영화 ‘슬리버’는 인간의 내면적 욕구를 묘사한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뉴욕 한복판에 위치한 건물 안에서 모든 입주자들의 사생활이 감시당하고 있다. 빌딩을 개조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이들을 엿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건물주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의 나체를 본 충격으로 인해 발기불능이 돼 버렸다. 그는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의 나체나 성행위 장면을 엿보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결국 이 영화는 평론가들의 혹평과 함께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영화 속에 벌어지는 상황이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최근 한 젊은 중학교 교사가 학교는 물론 지하철 등지에서 240명이 넘는 여성의 치마 밑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죄로 붙잡혔다. 피해자들은 주로 여학생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동료 여선생님들이었다. 유사한 일이 2010년에는 1054건으로 2004년보다 5배가량 증가했다는 경찰청 통계다. 몰래카메라의 정도가 지나침을 여실히 증명한다.

1950년대 영국 사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했던 감독 마이클 파웰의 관음증을 주제로 한 영화 ‘저주의 카메라’ 광고 포스터는 열쇠 구멍 사이로 흥분과 긴장으로 가득한 눈을 커다랗게 확대해서 보여준다.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 중 하나임을 역설하지만 이 눈은 혐오스럽다.

11세기경 잉글랜드 중부지방 코벤트리 영주의 농노들에 대한 지나친 징세에 대해 반기를 든 사람은 그의 젊은 부인이었다. 그녀는 세금을 낮출 것을 요구했지만 남편은 ‘너의 그 사랑이 진심이라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세금 감면 하겠다'라고 빈정댔다. 실현 가능성이 없었지만 그녀는 어느 날 전라로 영지를 돌게 된다. 이 소문을 접한 농노들은 감동해 그녀가 영지를 돌 때 누구도 그 알몸을 보지 않기로 하고 집집마다 커튼을 내려서 그녀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호기심을 참지 못했던 양복재단사 톰(Tom)이 커튼을 들추고 몰래 훔쳐보았다. 그래서 유럽에선 관음증을 피핑톰(Peeping Tom)이라 하여 훔쳐보기(Peeping)의 대명사로 칭한다. 그런데 그의 눈은 멀어버렸다.

관음증은 인간의 욕망과 윤리적 금기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유혹이다. 이렇게 성의 현실은 달가운 것도 아니지만 달콤할 것 같기에 남성들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아무리 그래도 광고가 관음증의 사회를 부추겨선 안 된다. 자칫하면 값싸고 추한 이미지로 전락할 수도 있고 여성의 성을 상품화 시킨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 미풍양속을 해치는 주범으로 낙인찍힐 수 있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대표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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