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 영수회담·해외순방…“무슨 일만 벌이면 묻힌다”

민주당, 반전 카드로 3+3 복지카드
영수회담 이후에도 지지율은 ‘요지부동’
전성무 기자 =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불운(不運)’은 어디까지일까. 4·27 재보궐선거 승리의 기쁨도 잠시. 민주당이 잇단 이슈선점 실패로 인해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손 대표는 지난해 10·4 전당대회를 통해 2년의 공백기를 깨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취임 일성은 한 달 뒤 터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해 증발해 버렸다. 손 대표는 최근 반값등록금 정책, 영수회담, 해외순방 등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탈환할 계획이었지만 일련의 대형 이슈로 인해 모두 묻혀버렸다.
민주당의 위기다. 민주당은 지난달 23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대학등록금 완화 방안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한 달 전 황우여 원내대표가 원내사령탑에 오르자마자 내던진 ‘반값등록금’ 발언은 그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쥐어줬다. 또 다시 주도권을 한나라당에 내준 셈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뼈아픈 실책이다. 민주당은 궁여지책으로 정부와 협의도 안 된 사안이라며 의미 축소시키기에 나서면서 며칠 뒤 있을 손 대표의 영수회담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영수회담
박근혜 전 대표에 밀려
그런데 민주당의 주장대로 이명박 대통령과 손 대표의 영수회담은 금방 이슈에서 멀어졌다. 지난달 27일 있었던 영수회담의 주제는 ‘민생현안’에 대한 공동대응 전략 모색이었다. 손 대표는 민심을 대변해야하는 제1야당의 대표로서 민심을 전했고, 이 대통령은 상당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두 사람은 등록금 인하와 대학구조조정의 병행추진에 공감했다. 또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저축은행 부실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발생한 저축은행 부실문제에 대해서는 향후 검찰수사와 국회 국정조사에서 철저히 책임소재가 밝혀질 수 있도록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손 대표는 회담에 임하면서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계속된 희망대장정, 타운홀미팅 등 민생탐방을 통해 만났던 국민들의 생생한 여론을 전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4·27 재보선 분당 출마를 통해 전해 들었던 중산층의 불만을 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한 민주당이 내년 총선, 대선에서 수권능력을 갖춘 정당으로서 비판만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과 책임감이 있는 정당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손 대표의 이런 의지는 의미가 퇴색됐다. 이미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먼저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다. ‘뒷북’ 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정치권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영수회담 이후 손 대표의 지지율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지난 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발표에 따르면, 손 대표는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11.6%(↑0.2%p)를 기록, 영수회담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에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이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꾸준히 상승해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지난달 3일 이 대통령과 단독회동 이후 3주 연속(29.9% → 30.7% → 32.0% → 33.2%) 지지율이 상승했다.
해외순방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손 대표는 그동안 이슈선점에 실패하고 대권 주자로서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대외 행보에 나섰다. 외교행보를 통해 여권 주자들과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손 대표는 지난달 27일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다음날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와 만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서명한 한일공동선언 정신을 살려야 한다”면서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를 갖고 미래지향적 선린우호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대표는 ‘식민지 지배는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졌다’는 내용이 담긴 지난해 8월 간 총리의 담화에 대해 “1998년 공동성명 이후 가장 진전되고 진정성이 있는 내용이었다”고 평가한 뒤 “일본 정부가 담화 발표로만 끝내지 않고 조선왕실의궤 반환 등 실천을 보여준 것은 양국 간 관계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보여준 침착함과 용기 있는 대응에 경의를 표하며 끈기와 단결로 이번 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 “강원 평창이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겨울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 한일 우호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원을 당부했다.
손 대표는 간 총리를 만나기에 앞서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민주당 대표대행, 요코미치 다카히로(橫路孝弘) 중의원 의장,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자민당 총재 등 주요 정치인과 잇달아 만났다. 이들과의 면담에서 손 대표는 “북한의 인권, 핵무기, 미사일 개발 등에 대해선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한 입장을 유지해 나가겠다”며 “북한의 3대 세습은 분명히 잘못된 것으로 21세기에는 있을 수 없는 체제”라고 비판했다.
손 대표는 일본 방문에 이어 지난 4일에는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민주당은 “이번 방중이 동북아 긴장 완화와 양국의 경제협력 증진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손 대표는 첫날인 4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후계자로인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면담하고, 5일 장즈윈 외교부 상무 부부장을 만났고, 충칭(重慶)에서는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를 면담한 뒤 한국 기업 시찰에 나섰다.
손 대표의 잇따른 이 같은 행보는 외연확대를 통한 차기 대권 주자 이미지를 굳건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손 대표의 이런 대외 행보에 대한 평가는 동계올림픽에 관한 언론보도와 지난 7일 남아공 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에 의해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손 대표의 주요 행보가 빈번히 다른 이슈에 묻히자 민주당은 무상 급식·보육·의료와 반값등록금(3+1)에 주거와 비정규직 대책을 포함한 ‘3+3’ 정책을 꺼내들고 나섰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가 민생현안을 해결하는 이른바 ‘좌 클릭’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슈 선점 경쟁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다. 이번에도 한나라당에 이슈를 선점당하면 민주당으로서는 내년 총선 전략을 짜는데 적잖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손 대표
전국모임 속속 출범 왜?
한편, 손 대표의 행보가 ‘주춤’ 하는 사이 그를 지지하는 모임이 출범하는 등 세결집 양상을 보여 정치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손 대표를 지지하는 전국 조직인 ‘통합연대’가 7일 등반대회 형식을 빌려 사실상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이 이끄는 쇄신연대가 지난 3일 ‘민주희망 2012’란 이름으로 2기 출범식을 가진 이후 손 대표의 지지세력도 본격적인 세결집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 내 차기 대권주자들 간 ‘물밑 대권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이날 대전 구룡산에서 열린 등반대회에는 손 대표의 최측근인 김부겸 의원과 양승조 전 대표비서실장, 오제세 의원을 비롯, 지역위원장, 대의원, 당원 등 손 대표를 지지하는 당내 인사 1500여명 참석했다.
등반대회에는 지난해 10·3 전당대회에서 손 대표 캠프의 좌장격이었던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도 참석했다.
통합연대는 애초 지난달 16일 창립대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6월 임시국회 회기 중인데다 사조직 구성을 경계하는 손 대표의 만류로 창립 일정을 순연했다.
통합연대 측 인사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당내 인사 줄세우기라는 우려 때문에 창립행사를 차일피일 미뤘으나 무한정 연기할 수 없어 등반대회로써 창립행사를 가진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이 지난 3일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에서 600여 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출범 5주년 행사를 한 데 이어 ‘통합연대’를 띄운 것은 차기 대권을 향한 손 대표 측의 본격적인 세확산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다.
통합연대는 현재 지역별 준비위 체제를 올해 말까지 24개 권역별 통합연대 체제로 확대 강화한 후 서울에서 전국 규모의 전진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또한 공동대표단 체제를 구축, 중량감 있는 인사를 사무총장으로 영입해 당 혁신과 야권 연대 및 통합을 위한 손 대표의 구상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알려졌다.
준비위원장인 김 의원은 등반대회 인사말에서 “통합연대가 민주당의 혁신과 야권통합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이뤄 당원들의 바람에 화답하자”고 말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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