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젊은 대표 당선, 민주당에 충격파

[조기성 기자] =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40대 수도권 당 대표’가 탄생할지 여부에 민주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대 출마후보자 7인 중 나경원,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 3인이 40대에 수도권이 지역구인 후보들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나경원, 원희룡 후보가 당 대표에 근접해 있는 상황이다. 특히 친이계 대표주자격인 원희룡 의원이 ‘한나라당號’ 수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에 민주당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젊은 수도권 대표 탄생으로 인해 ‘세대교체’라는 매력적인 카드를 한나라당에 빼앗겨 차기 총선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세대교체 바람, 한나라당이 선점한다
수도권 젊은 대표로 총선 승리까지
민주당은 차기 당 대표로 ‘박지원 대세론’이 형성돼 있었다. 한나라당 전대 초반 판세에서 홍준표 의원이 1강을 형성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에서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역할론이 더 힘을 받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홍 후보는 18대 국회 초반에 당의 원내대표를 역임하면서 ‘홍반장’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대야 협상 국면에서 강단의 리더십을 보여줘 민주당으로서는 강력한 카운터파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차기 대표는 박지원이 적임이라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지난 1년간 민주당 원내 사령탑을 맡아 뛰어난 정무감각과 노련함을 바탕으로 4·27 재보궐선거 승리를 비롯해 민주당이 지지도에서 2년 만에 처음으로 한나라당을 앞지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퇴임 이후 서울 여의도 한식당에서 열린 고별 만찬에서는 유행가를 패러디한 “당대표는 아무나 하나, 민주당에는 박지원뿐이야”라는 노래까지 나올 정도였다.
박 전 원내대표는 지난 6월 17일 전남 담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제가 하던 연속극 주인공을 마치고 다음 연속극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당권 도전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고민 깊어지는 민주당
하지만, 한나라당이 수도권 젊은 대표를 선택할 경우 오는 11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젊은 수도권 대표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홍준표 후보가 최연장자로 57세인 반면, 민주당은 박지원 전 원내대표(69), 정대철 상임고문(67), 김태랑 전 의원(68), 박주선 최고위원(63) 등 상당수 당권 도전자들이 60대다. 40대는 이인영 최고위원 정도뿐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40대 당 대표에 맞서 60대 당 대표로 내년 총선에서 흥행을 일으킬 수 있겠느냐는 고민에 빠진 것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선거는 구도의 싸움인데 여당이 강하게 꿈틀거리는 반면 야당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나라당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상황에서 우리 당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큰코다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
‘40대 수도권 대표론’ 부상
이에 따라 민주당에서도 ‘수도권 40대 대표론’ 필요성이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에서 40대 젊은 사람이 당의 얼굴로 뽑히면 우리 당을 지지하는 젊은 층의 표 이탈이 예상되는 점이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지지층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486그룹 등 ‘4말5초(40대 후반ㆍ 50대 초반)’ 연령대에서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도 “한나라당에 수도권 젊은 대표, 민주당에 호남 출신 구시대 대표가 우리가 바라는 시나리오”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살아남기 위해선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차기엔 ‘수도권 40대 당 대표’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40대이자 수도권 출신인 이인영 후보가 중진들을 제치고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따라 전대 주자로 거론되는 이인영 최고위원과 김부겸 의원, 최재성 의원, 장성민 전 의원 등 비교적 젊은 층에 속하는 후보들이 약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에 젊은 그룹이 포진할 경우 민주당에도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야의 총선 전략,
수도권 젊은 대표
한나라당의 ‘젊은 대표’ 선출이 임박함에 따라 민주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쇄신 바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의 경우 2004년 탄핵 직후 총선 때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에 내부에서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지난 1996년 15대 총선의 충격을 떠올리는 인사도 적지 않다. 15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승리’는 일찌감치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총선 1년 전인 1995년 6·27지방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고, 지방선거 직후부터 여권은 줄줄이 터져 나오는 대형 악재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 여권은 1995년 8월 1일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의 측근인 서석재 총무처 장관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4000억 원대 비자금 보유설을 제기해 연말까지 내내 비자금 정국에 끌려 다니다 이듬해엔 YS 측근인 장학로 대통령부속실장의 수뢰 사건이 터져 한층 궁지에 몰렸다. 이런 정치 상황을 발판으로 총선 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김대중(DJ) 총재는 ‘100석 확보’를 공언했다.
그러나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개혁과 세대교체’라는 콘셉트 아래 과감한 외부 수혈과 철저히 인물 경쟁력에 바탕을 둔 공천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1996년 초 YS와 대립했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좌파 정당인 민중당에 몸담고 있던 이재오(현 특임장관) 김문수(경기지사), 소장파 법조인 안상수 홍준표(의원), 인기 앵커 맹형규(행정안전부 장관)를 발탁했다. 기업인 출신의 전국구 의원인 이명박 의원도 서울 종로에 투입했다.
신한국당은 수도권 압승을 발판으로 131석으로 제1당 자리를 확고히 지켰다. 여당이 수도권에서 승리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유권자들이 야당이 내건 ‘집권당 견제’보다 여당이 선도한 ‘세대교체’에 더 마음이 끌린 결과였다.
15대 총선을 지켜봤던 한 중진 의원은 “당시엔 지금보다 훨씬 여권에 악재가 많았지만 여당의 개혁 공천에 총선 1년 전 야당의 지방선거 압승에 대한 역견제 심리가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야당이 참패했다”며 “민주당은 지난해 6·2지방선거 승리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민주당이 조기전대에서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키면 (총선에서) 이 대통령을 심판하는 회고선거가 될 것이고, 그 분위기가 대선까지 치고 올라갈 것”이라면서도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이슈를 선점하기 전에 먼저 칠 것이다.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위기의식 수준을 감안하면 먼저 치고 나갈 가능성이 많다”고 진단했다.
[조기성 기자] kscho@dailypot.co.kr
조기성 기자 kscho@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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