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도청장치’ 파문 전방위 확산
‘내 귀에 도청장치’ 파문 전방위 확산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1-07-05 14:59
  • 승인 2011.07.05 14:59
  • 호수 896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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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 지지부진… “KBS에 대한 통신영장만 발부 받으면”
민주당 이윤석(왼쪽) 의원과 오훈변호사가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경찰서를 찾아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 불법도청과 관련해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 하고 있다.

[전성무 기자] = KBS 수신료 인상안을 놓고 벌어진 민주당 대표실 도청사건이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당사자인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진실공방에 이어 KBS도 도청을 주도한 의혹을 받으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경찰은 민주당이 수사를 의뢰해 옴에 따라 즉각 수사에 나섰지만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엮여 있어 수사대상자의 소환과 국회 현장조사 등의 주요 수사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여의도를 달구고 있는 민주당 대표실 도청사건을 따라가 봤다.

한선교 의원, 잇단 추궁에 ‘묵비권’
경찰, “한선교 의원 조만간 소환하겠다”


6월 국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터진 민주당 대표실 도청사건으로 인해 국회가 떠들썩하다. 한국형 ‘워터게이트(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한 비밀공작반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을 시도하다 발각돼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사건)’ 사건이라고도 불리며 당사자 간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발단은 이렇다. 지난 달 24일 오전 열린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은 “이 말씀은 처음부터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민주당) 어떤 최고위원이 한 말씀을 몇 줄만 읽어드리겠다. 이것은 틀림없는 발언록 녹취록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한 의원은 이어 “(그 최고위원은) ‘24일, 28일도 계속하고 내가 보기엔 28일은 민주당 사람 총집결해야한다. 시민사회단체, 언론노조위원장 단식농성 한다는데 꼭 KBS 문제는 아니고 미디어랩까지 포함해서 하려던 단식인가 본데 이 문제와 연결 잘하고 거기에 몸을 던지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당초 KBS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하겠다던 입장에서 하루 만에 합의를 깬 것에 대한 불만감에 그 배경을 폭로해 버린 것이다.

한 의원이 공개한 민주당 비공개 발언은 지난달 23일 비공개로 진행된 민주당 최고위-문방위원 연석회의에서 천정배 최고위원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진표 원내대표는 지난달 24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회의를 녹음하기는 했지만 녹취록을 작성하지도 않았는데 한선교 의원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회의 내용을 전했다”며 “이것은 직접 도청하거나 도청한 것을 가지고 한 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고 따라서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의원은 이후 “우리 방(의원실) 보좌진들도 민주당의 최고위 회의 내용이 간략하게 정리된 것을 가끔 들고 오기도 한다”며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한나라당의 회의 내용을 그런 식으로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며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한선교-KBS와
법적 다툼 예고


이런 가운데 이번 도청사건의 배후로 KBS가 의심된다는 내용의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자 사건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이어 KBS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도청사건의 배후로 KBS를 지목하고 있다. 민주당의 주장은 이렇다. 문제의 비공개 회의 초반에 KBS의 한 기자가 무선 마이크를 회의실에 몰래 설치해 놓고 회의장 밖에서 녹음을 진행, 회의가 끝난 뒤 회수해 갔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한 제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추정한 것이라고 민주당은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당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한데 이어 녹취록을 공개한 한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 1일 형사 고발했다.

민주당은 “통신비밀보호법은 도청을 한 사람 뿐만 아니라 도청한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사람도 동일한 형벌로 처벌하고 있다”며 “도청한 비공개 회의록을 공개한 한 의원과 함께 도청한 사람도 엄벌에 처해 달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고발장을 통해 사건 발생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3일 비공개 회의에는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당 문방위원, 필수당직자 3명 이외에 아무도 출입을 시키지 않았으며 당시 녹음했던 회의 녹음자료 역시 한 의원이 언론에 공개할 당시에도 민주당 당사 총무국 캐비닛에 보관 중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확인 결과 당시 회의 참석자 중 회의 내용을 메모해 한 의원에게 전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한 의원 스스로 밝힌 것처럼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누군가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비공개 대화 내용을 녹음해 한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도청 배후에 KBS가 있다는 의심을 사실상 굳힌 것이다.
이와 함께 민주당으로부터 도청 의심을 받고 있는 KBS 측도 법적 대응을 시사해 민주당은 한 의원과 더불어 KBS와도 법정 공방을 벌일 공산이 높아졌다.

도청 의혹 사건에 침묵을 지켜왔던 KBS는 지난달 30일 홍보실 명의의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 행위를 한 적은 없다”면서 “회사와 기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주장과 행위에 대해 즉각 법적 대응에 착수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특수성 때문에
‘임의수사’


바통을 넘겨받은 경찰은 지난달 27일(2명)부터 31일(1명)까지 순차적으로 민주당 전문위원 안모씨와 속기사 이주환 차장, 당대표 비서실 직원 김모씨 등 3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에 필요한 내용은 다 물어봤고 성실히 조사에 응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조만간 민주당 당대표실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일 방침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이번 수사를 국회의 특수성을 감안, 강제수사 형식이 아닌 임의수사로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이 국회 현장조사를 벌이기 위해선 민주당과 국회사무처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경찰은 현재 민주당과 국회사무처 양측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민주당의 동의 회신만 받았고, 국회사무처로부터는 아직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

경찰은 녹취록을 공개한 한 의원 측에게 당시 ‘녹취록’이라면서 읽었던 문건을 제출하라는 내용의 자료제출 요구서를 최근 발송했고, 한 의원에 대해서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안동현 서울 영등포경찰서 수사과장은 “출석이 곤란할 정도로 신병에 문제가 있지 않다면 무조건 소환할 방침”이라며 “출석요구서는 아직 보내지 않았고, 소환일정은 내부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KBS, 보도자료 내고 “우린 아니다”
KBS A 기자 사태 수습하려 ‘동분서주’

경찰 수사 지지부진
수사의지 ‘의문’


경찰은 수사에 나서긴 했지만 선뜻 내키지는 않는 분위기다. 사건의 주요 당사자인 한 의원은 녹취록 입수 배경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상태. 따라서 한 의원에게 녹취록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KBS가 이번 사건의 궁금증을 풀어줄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사건 당일 KBS의 A 기자는 비공개 회의가 있던 당대표실에 녹음장치를 설치했지만 파문이 확산되자 “호기심으로 해 본 것”이라며 사태 진화에 동분서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도청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KBS 측에서는 추후 경찰 소환조사가 있을 경우 ‘혼자 나가라’면서 A 기자에게 등을 떠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KBS나 소속 기자에 대한 조사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 민감 한 반응을 보였다.

언론사 기자들은 취재 내용을 내부 CMS나 인트라넷 시스템을 통해 문서로, 유선을 통해 구두로 상부 관리자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경찰이 법원으로부터 통신수사영장을 발부받아 KBS 국회 출입기자와 보고라인에 있는 관리자에 대한 통화내역을 조사한다면 사건의 중심에 의외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통상 도청 등 지능범죄 사건의 경우 통신수사에서 결정적 단서가 나오는 사례가 많다. 수사의 기본이며 순차적인 조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통신수사 착수 여부에 대해서는 “(통신수사) 진행여부는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통신수사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이후에 불거질 수 있는 통화 내용에 대한 논란을 경계하고 있다는 얘기다.

도청과 관련된 통화 내용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의 수사기록이 언론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수사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등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이 때문에 적당히 수사를 진행하다 송치하는 방법으로 사건을 검찰에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아왔다.

이번 사건에 정치권은 물론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경찰의 수사 의지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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